세상 모든 브랜드는 2 형식이다. 단 두 가지로 구성된다. 생각과 표현이다. 매력적인 브랜드는 옳은 생각을 제품으로 적절히 표현한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에 능하다. 몸집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재야의 고수들이다.
‘브랜드는 2 형식이다’에선 이 브랜드들을 2 형식으로 설명한다. 브랜드가 세상에 외치고 싶은 ‘무엇’을 ‘어떻게’ 상품에 녹여내는지 풀어낸다.
브랜드를 2 형식으로 파헤쳐보자.
옛 갈치는 서민생선이었다. 신선하지 않았다. 잡히자마자 죽어버리고 스스로를 부패시켜서다. 값싼 제품은 그만큼 품질도 나쁘게 마련이라는 뜻으로 비유됐다. 비슷한 속담으론 ‘싼 것이 비지떡’이 있다. 하지만 갈치 자반을 질 떨어지는 제품에 빗대는 것은 요즘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지떡은 두부 찌꺼기인 비지로 부처 만든 음식이니 맛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반면 요즘 갈치는 값도 싸고 신선한 상태로 잡혀 맛도 좋다.
‘브랜드는 2 형식이다’의 첫 주제는 생필품 브랜드 ‘빅(BIC)’이다. 빅은 갈치를 닮았다. 가성비가 뛰어나다. 100원짜리 동전 몇 개로 살 수 있는 제품들을 선보인다. 가장 비싼 상품도 1천 원 언저리다. 반전은 기능이다. 성능이 우수하다. 400원짜리 펜은 끝없이 적어 내려갈 수 있다. 소위 말하는 ‘펜 똥’, 볼펜 이물질도 안 나온다. 프랑스에선 이 펜을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빅’의 제품은 가격이 싸지만 성능은 훌륭한 상품으로 꼽힌다.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최고의 제품을 제공한다’는 그들의 철학이 담겼다. 그동안 나온 제품들은 수천 개에 이른다. 1953년 ‘소시에테 빅(Société Bic)’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이래 60년간 이룬 결과다. 문구류, 라이터, 면도기부터 선불카드로 사용하는 휴대폰도 내놨다. 모든 제품은 철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첫 볼펜은 유사 상품이 10달러 정도에 팔리던 시대에 고작 29센트로 출시됐다. 선불 휴대폰도 29유로 (약 4만 원)에 나왔다.
혹자는 빅을 사회주의적 맥락으로 읽기도 했다. 상품에 얽힌 계급의식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와 결부시킨 것이다.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는 1986년 이탈리아 주간지 <레스프레소, L'espresso>에서 빅을 사회주의에 빗댔다.
빅의 크리스털 볼펜은 의도적으로 평범하게 만들었지만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데다 변함없고 유기적이어서 아름답다. 모든 경제적·사회적 차별의 벽을 없애, 사회주의를 발현한 유일한 사례다.
디자인도 빅의 명성에 한몫했다. 베스트셀러 볼펜 ‘빅 크리스털’이 대표적이다. 이 펜은 몸통이 연필을 닮은 6 각형이다. 군더더기는 없다. 다만, 몸통 중간과 펜 뚜껑 끝에 난 구멍이 있을 뿐이다. 이 펜은 1950년대엔 저렴한 디자인이라 평가받았다. 당시엔 고급 만년필이 주류를 이뤄서다. 현재 이 펜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돼있다. 전시품 중 가장 저렴한 물건이다. 런던 문구 클럽(Stationery Club in London) 창설자이자 작가인 ‘제임스 워드’는 저서 <문구의 모험>에서 빅 크리스털을 이렇게 묘사했다.
난 뭔가 더 소박하면서도 상징적인 것을 원했다. 뭔가 결정적인 것. 엄청나게 단순한 것. 그것은 빅 크리스털 볼펜이었다.
빅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최고의 제품을 제공했다. 주력상품은 볼펜과 라이터다.
빅 볼펜의 대표 제품은 라운드 스틱, 오렌지 파인, 크리스털 등 세 종류다. 라운드 스틱은 원통형 몸통으로 나온다. 가볍고 손에 쥐기 편해 장기간 필기에 용이하다. 필기감이 부드러워 곡선이 많은 영어 필기체에 적합하다. 주로 영미권 소비자들이 선호한다. 오렌지 파인은 라운드 스틱보다 펜촉이 얇은 것이 특징이다. 빅 크리스털은 세 볼펜 중 가장 먼저 출시됐다. 제임스 워드의 말대로 대중은 이 펜은 소박하면서 상징적으로 받아들였다. 출시된 첫해에만 2500만 자루가 팔렸다. 현재 이 펜에는 한 해에만 100억 개 씩 생산된다.
빅 볼펜은 제품에 구멍 2개가 나있다. 몸통과 펜 뚜껑 끝자락에 뚫려있다. 몸통 중간 즈음에 나 있는 구멍은 기능을 높이기 위해 생겼다. 과거 펜은 잉크가 펜촉으로 적절히 나오지 않아 필기가 어려웠다. 빅은 펜 몸통에 구멍을 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구멍은 볼펜 안쪽과 바깥쪽의 공기 압력을 유지시켜줘 잉크를 잘 나오게 한다. 뚜껑의 구멍은 안전을 위해서 뚫렸다. 영국 규격협회가 제시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다. 이 기준은 80년대 후반 뚜껑을 잘못 삼켜 질식사한 아이 때문에 재정됐다. 구멍을 뚫어 뚜껑을 삼켜도 숨통을 트일 수 있도록 했다.
빅은 라이터에도 원칙에 충실했다. 빅 라이터는 볼펜처럼 저렴하게 출시됐지만 기능은 강력했다. 일반 라이터보다 수명이 두 배 이상 길다. 라이터의 핵심인 부싯돌과, 몸통 소재 덕이다. 라이터의 수명을 결정하는 부싯돌은 옥수와 석영이 주성분인 암석으로 제작된다. 이 암석은 일반 라이터에 사용되는 부식 돌에 비해 쉽게 마모되지 않는다. 몸통은 ‘데를린’이라는 소재로 만든다. 데를린은 미국 명품 라이터 회사 ‘S.T. 듀퐁’에서 판매하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일종이다. 이 소재는 강도가 우수하다. 강철보다 강하다. 성질 변화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화학적·물리적 환경변화에도 끄떡없다. 듀퐁사는 이 소재를 ‘금속의 도전자’라 불렀다.
제작방식도 철저하다. 라이터 분출구 성능은 디지털카메라 시스템으로 점검한다. 불꽃의 높이 등을 정확하게 측정하는데, 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은 모두 폐기한다. 품질검증엔 근무시간의 25% 이상이 투입된다. 50개 이상의 검수과정을 통과해야 시장에 나올 수 있다.
프랑스는 G20과 G8 정삼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에게 빅 볼펜인 ‘4-COLOR’를 선물했다. 자국의 상품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다. 빅의 가치는 저가 시장을 기반으로 이룬 경제적 성공을 넘어 좋은 제품을 보급했다는 것 자체에 있다. 자기 색이 명확해 어디에서나 어울리는 ‘Cheap & Chic’ 제품 중 제일이라 불릴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