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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범 Sep 08. 2017

라면

라면은 외로웠다.


희멀건 국물에 얹힌 낡은 고사리는 나약했다. 고사리는 말랐다. 약했다. 찐덕한 국물에 잠겼다. 그릇엔 고사리와 더불어 숙주, 마늘이 자리잡았다. 나약한 것들이었다.


힘빠진 것들의 축제에 나는 웃었다. 그들이 자아내는 춤사위에 나는 즐거웠다. 이기적이었다. 나는 그들보다 우월했다. 입안에서 나지막히 십히는 그들보다 나는 위대했다. 약한 것들에게서 이겼다. 황홀했다.


나는 약했다. 낮은 것들에 승리하는 슬픈 존재다. 약한 것들에 강한 어린 사람이다. 적이 누구인지 모른 채 젓가락을 쑤셔대는 남루한 존재다. 사실 상대를 안다. 거울을 보며 뼈저리게 깨닫는다. 상대를 이미 기억하고 있다.


젓가락은 엄한 곳을 향한다. 돈키호테마냥 무작정 달린다. 외로운 라면에 나는 이긴다. 낮은 것들을 짓밟는다. 어린 것들을 십고 삼킨다.


국물만 남은 라면은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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