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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 Sep 21. 2023

우리 책이 메인에 올라갔습니다

오직 '선택' 되어야만 오를 수 있는 그곳

15년의 커리어를 정리하고 커리어 2막을 위해

출판사에 입성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오후 느닷없이 매우 해맑은 얼굴로 대표님이 내려오셔서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사실 대표님은 마케팅에 관여를 안하고 있던터라 그렇게 만날 일이 많지 않을뿐더러 저렇게 해맑은 얼굴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팀장님, 축하합니다!"

"네? 대표님 제가 어떤 상황인 파악이 안되는데요. 무얼 축하한다는 말씀이세요?"

"이번에 우리 책이 메인에 올라갔습니다!" 


메인에 올랐다. 그것도 우리 책이. 이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한참을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


메이저 3개 서점(교보/예스/알라딘)에서는 매주 두번씩 메인도서 선서(책을 선정하는)회의를 한다.

교보문고는 [오늘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예스24는 [YES24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알라딘은 [편집장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번외로 인터파크는 [인터파크 추천]이라는 이름이다


이 메인도서 선서회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꽤나 명예로운 일로 간주된다. 각 서점 관계자들이 모여서 그 주에 독자들에게 추천할 '양서'를 자체적으로 뽑았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이 선서 회의에는 각 분야의 MD를 비롯해 팀장/지점장 등 각 유관부서 관계자들이 들어가는데, 각 분야에서 추천으로 올리는 후보 도서 중에서 회의를 통해 4~6권 내외의 도서를 선정한다. 


이렇게 선정되면 서점 내 도서정보 옆에 작게 [오늘의 선택] [YES24의 선택] [편집장의 선택] 딱지가 붙게 된다. 아래 화면 캡처 참고!

2023년 9월 21일 현재, 하루키의 신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옆에 '오늘의 선택' 딱지가 붙어있다


그리고 서점 홈페이지 웰컴페이지 가장 잘 보이는 중심에 책 표지가 노출이 된다. 선서 회의는 보통 일주일에 2번 진행 되기때문에 노출기간은 3.5일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서점에서 메인 도서로 선정되어 홈페이지에 노출이 되면 꽤 큰 광고효과를 누린다. 일반적으로 웰컴페이지의 저 정도 사이즈 광고를 1주일간 하려면 300만원 내외가 드는데, 광고를 하지 않고도 150만원 + @(3.5일 기준)효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광고보다 효과적이다. 1인 출판사처럼 규모가 마케팅 비용이 많이 않은 출판사에게는 상상이상의 큰 힘이 되기도 한다.


2023년 9월 21일 현재, 교보문고 [오늘의 선택] 도서들
2023년 9월 21일 현재, 예스24 [YES24의 선택] 도서들
2023년 9월 21일 현재, 알라딘 [편집장의 선택] 도서들


이 딱지가 붙은 책은 어찌됐든 서점에서 보장하는 양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책을 고를 때 이 타이틀이 참고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은 있으니 그 타이틀이 재미를 항상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생각해보라. 한 주에 각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책들이 나올지. 그리고 그 책들 중에 후보로 뽑히는 것조차 어려운데 결국엔 뽑혀서 파이널에 올라가 이 타이틀을 거머쥐는 모습을. 거의 이건 뭐 KBO 한국시리즈 7차전 까지 가서 우승하는 것만큼 정말 치열하고 어려운 일이다.


유명 저자의 책이라고 무조건 선정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유명 저자의 책이 아니라고 해서 선정이 안되는 것도 아니다. 타이밍도 매우 중요한데 같은 분야에서 경쟁하는 도서가 많이 출간되는 시기인 경우는 더욱 어렵기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서는 타 출판사의 출간시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소설 분야의 책을 준비하고 있는데 마침 그 시기에 무라카미 하루키,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민진, 최은영, 양귀자와 같은 국내외 거물급 작가의 작품이 나온다면 아무래도 우리 책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릴 수밖에 없을 게 뻔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신간이 나오면 마케터는 각 서점 담당MD에게 도서출간 소식을 알리는 '신간 미팅'이라는 것을 한다. 이 미팅에서 어떤 저자의 책이 어떤 내용으로 언제 출간 되는지 매력을 어필하는 시간인데, 다른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꼭 잊지 않고 MD에게 마지막에 꼭 부탁하는 것이 바로 이 메인도서다.


"MD님, 다음 주 목요일 메인회의에 후보로 꼭 검토 부탁드려요!"


물론 적극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말만하고 전혀 액션을 취해주지 않는 MD들이 대부분이긴한데, 그럼에도 이렇게 말 한마디 던져놓고 우리가 얼마나 이 책을 밀고있는지 어필하는 건 분명 중요한 포인트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고, 말 한마디에 메인 도서가 될 수도...


그래서 이렇게 서점 메인에 책이 올라가게 되면, 출판사 내부에서는 고무적인 일이기 때문에 심심치 않게 축하를 주고 받는다. 그래서 그날도 대표님이 일부러 초짜 출판사 마케팅팀장을 격려하러 내려오신 거였다. 그냥 당신 자리에서 혼자 환호하고 킥킥 웃으며 좋아해도 될 일을 말이다. 앞으로는 안내려오셔도 됩니다. 한번이면 충분해요 대표님! 뭐라고요? 또 내려오신다고요? 반사반사! 무지개 반사 태평양 반사!!


아무튼 출판사는 도서가 메인에 올라가면 즉시 SNS에 올려 "우리 책이 메인에 올라갔어요!"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는 메인에 오른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고 관심이 없다. SNS 담당자가 "꺄~~~~"이런 음성지원으로 그냥 어떤 것인가에 선정 되었다고 업되니, 인지상정의 마음으로 그냥 축하한다고 DM을 보내거나 댓글을 달 뿐.


이제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서점에서 '메인'이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본인이 팔로우 하고 있는 출판사의 SNS계정에서 이런 피드를 본다면 매우 격하게 "꺄~~~~" 소리지르며 축하해주면 출판사에게 매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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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출판업계와 관련된 책들은 대부분 편집자가 쓴 것들 뿐이다. 책이 온전히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있다. 편집자가 책을 기획/편집해서 책을 만드는 일이 전반부라면, 그 책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타겟과 메시지를 뽑아내고 다양한 채널과 소통하여 멋드러지게 소개하는 일이 후반부다. 그 모든 것이 합해져야 온전히 하나의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출판업계의 엔드 유저인 독자들은 그저 책의 물성과 내용을 결과값으로 받고 말겠지만, 사실 완성된 책 한권이 독자에게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독자들이 잘 몰랐던 출판마케팅 세계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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