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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 Sep 22. 2023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줄부터 서세요

15분 대기조의 서점MD 신간미팅

"보도자료 챙겼나요?"

"네, 팀장님!"

"보도자료 중요한 부분에 하이라이트도 넣었구요?

"네, 팀장님!"

"책 두 권도?"

"네, 팀장님!"

"굿즈 샘플도 넣었죠?"

"네!네! 다 챙겼다고요!! 팀장님!!"


신간이 나와 각 서점MD와 신간미팅이 예정되어 있으면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다. 15분 안에 우리가 오랜시간 준비한 신간에 대한 어필을 해야하기 때문에 괜한 실수가 없도록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전장에 나가는데 무기없이 나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예전에 신간미팅을 갔다가 중요한 보도자료를 담당자가 빼놓고 와서 뻘줌하게 무한 애드립 신공으로 위기를 벗어난 뒤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늘 저렇게 팀원들을 귀찮게 하는 팀장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기를.


각 서점의 신간미팅이 출판사에게 필수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이 업계는 여전히 회중시계처럼 아날로그틱하게 똑딱똑딱 돌아가기 때문에 얼굴도장 한 번 찍는 게 백번 메일 보내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신간이 나오면 책을 직접 들고 MD를 찾는다. 


15분이다. 한 출판사에게 주어진 매력어필 시간은. 그마저도 준비가 덜 되어서 중간에 정적이 흐르면 미팅이 일찍 종료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전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담당 MD가 그 많은 책 중에 우리 책을 기억할지 짱구를 굴린다. 'a MD는 여름휴가를 갔다왔으니 휴가 이야기를 좀 물어봐야겠군' b MD는 기다렸던 공연 티켓팅에 성공했는지 물어보면 되겠고' 'c MD는 이사한다고 했으니 그걸로 이야기해야지' 이렇게 각 서점 MD별로 맞춤 질문과 이야기를 준비하는 게 나만의 노하우다. 


신간미팅을 가서 왜 책 이야기는 안하고 노가리까고 있냐고? 아니, 생각을 좀 해보자. MD가 하루에 15분씩 6-8개 출판사와 연달아 미팅을 한다. 그럼 얼마나 지겹고 재미없겠는가. 앵무새처럼 비슷한 말을 할텐데. 똑같아 보이는 보도자료와 각 출판사가 준비한 각종 자화자한에 지치지 않을까? 서점 MD표정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는지 혹은 귓등으로 흘리고 있는지. 대부분의 MD는 출판사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추임새 정도 넣는걸로 끝이다. 신간미팅을 가서 책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MD들에게 잠시 쉴 수 있는 오아시스를 제공하기 위한 나만의 전략이다. 단언컨대 주어진 매력어필 시간 15분 중 5분 정도만 신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10분 정도를 개인이야기와 주변인들 이야기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짧고 굵게 핵심만 이야기 하고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보내두면, 미팅 자리에서 주저리주러리 다 읊는 것 보다 MD가 기억해줄 확률이 크다.

-


처음 신간미팅이라는 걸 갔던 날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담당 MD에게 전화를 걸어 "저 가도 돼요?" "오셈" "언제까지 갈까요?" "가만 있어보자...2시 30분 오케이?" "접수요!" 대충 이런 무미건조한 짧은 전화통화로 예약을 잡고 가는 시스템이었다. 나름 중요한 신간이라(물론, 출판사마다 안 중요한 신간이 어디 있겠는가) 미팅에서 이야기할 책 소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달달 외웠다. 저자가 해외에서 얼마나 인지도가 높고 어떤 상을 받았으며...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어떤 것인데 국내 독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전해질 수 있는지...그래서 어떤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는지까지. 


서점에 도착했다. 미팅하는 장소를 찾아 도착해서 MD에게 전화를 했다.


"MD님, 도착했습니다."

"출판사 이름 부를 때까지 밖에서 조그만 기다려 주세요."

"네?? 아...네..."


약속 시간 맞춰 왔는데 기다리라니...이건 또 뭔소리지 생각하던 찰나, 주위를 둘러보니 MD와 신간미팅을 위해 책과 보도자료 등을 들고 미팅룸 밖에서 서성이는 수많은 출판사 마케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여기는 이런 곳이구나. 호명하면 불려 들어가는 시스템이 어디서 낯익었다 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을 때 간호사 선생님이 부르면 진료보러 들어갈 때 느꼈던 지루한 기다림과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상황에서 느꼈던 분위기와 비슷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알았다. 출판사에게 주어진 미팅시간은 최대 15분 뿐이라는 것을. 내가 호명되었다. 드이어 내 차례다.


"안녕하세요."

"어떤 타이틀인가요?"

"누구누구 저자의 신간인데요. 아마존 분야 1위를 몇 주 동안 했고..."

"아, 네. 전작이 한국에 나왔던가요?

"아뇨, 이번이 한국에서는 처음입니다. 그래도 컨셉이 어쩌고 저쩌고 메시지가 블라블라..."

"네, 광고나 준비된 마케팅은 뭐 좀 있으세요?"

"서점광고는 일단 LMS 5천통 잡아놨고, 유튜브 채널은 어디어디, SNS 채널은 어디어디..."

"예약판매는 하시나요? 배본일은 언제죠?"

"예판은 10일 정도 할 생각이고 배본은 며칠에 하려고 합니다. 저희 전략도서라서 LMS나 앱푸쉬 같은 거 챙겨주시면 저희도 열심히 판매될 수 있도록 해볼게요."

"네, 일단 예판동안 판매동향 좀 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자료는 메일로 다시 한 번 보내두겠습니다."

"네, 주차권 필요하시나요?"


대략 이런 흐름으로 기계적인 첫 신간미팅을 끝냈다. 1시간을 달려 미팅을 왔는데 15분만 가능하다니. 생전 듣도보도 못한 시스템에 문화충격을 받았다. MD는 공장에서 인형 찍어내듯 출판사와 미팅을 하고 출판사는 그 짧은 시간에도 어떻게든 우리 책 살려보겠다고 몸부림치며 장기자랑하고. 그날의 첫 신간미팅은 정말 낯설고 이상한 풍경이었다.


사이좋게 모여 있으면 참 좋으련만 3개 서점은 멀리 떨어져 있다. 3개 서점의 15분 미팅을 위해서 동선을 잘 짜야한다.

-


얼마 전에 서점쪽 마케팅을 담당하는 팀원이 면담을 요청했다. 


"팀장님, 저 신간미팅 안가면 안되나요?"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아니...그게요. 자료를 만들라면 얼마든지 만들겠는데 신간미팅이 너무 힘들어요."

"아...뭔지 알겠다. 현타오죠?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들죠?"

"맞아요. MD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는데 혼자 벽 보고 떠드는 거 같아요."

"나도 처음에 똑같은 생각들었어요. 그래도 그들도 반복되는 그 미팅이 얼마나 힘들지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구요. 업무니깐 안 할 수는 없고, 당분간은 저랑 같이 신간미팅 가시죠. 제가 이야기할테니 옆에서 좀 익숙해질 때까지 보세요."


그 짧은 15분의 시간이 출판 마케터에게는 전쟁같은 시간이고, 인고의 시간이고, 현타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그 15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같이 수 개월을 준비해 만든 우리 책의 운명을 가를 거라고 생각하면 허투루 할 수도 없는 일이다. 

-


3년 동안 신간미팅 좀 해봤다고 이제 좀 여유가 생겼다. 개중에는 친분이 쌓여서 이런저런 부탁도 조금 편하게 할 수 있는 MD들도 생겼다. 


"아, 진짜 이러실거에요? 우리 책 신경써준다고 했잖아요~"

"저 진짜 나름 신경썼다고요 팀장님~"

"근데 왜이렇게 안 팔리냐고요...흑흑"

"연기 그만하시고 빨리 부탁할 거 말씀하세요."

"오케이. 이번에 우리가 기획전을 준비 중인데요..."


물론,  MD들도 나에게 부탁을 한다.


"팀장님, 잘 지내시죠?"

"아직도 회사 다니는 거 빼고는 잘 지내요. MD님도 잘 지내죠?"

"저는 잘 못 지내는데요...이번에 분야 여름 기획전 하나 하는데 들어와주시면 안되나요?"

"중요한거죠? 내용 보내주시면 빨리 보고 가급적 참여할게요."


사실 출판업계가 아직도 뜨문뜨문 낯설 때가 있지만, 그래도 이런 낯섬을 억누르는 건 그나마 가까운 관계자들과의 따뜻한 상생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늘 따뜻한 건 아니지만.


그나저나 조만간 MD와 신간미팅 하러 가야하는데...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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