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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북스 Jan 17. 2024

아빠, 이제 지구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요.

우주의 속삭임

#우주의속삭임


한 때 우주는 스크래치 페이퍼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색 캔버스. 하지만 그래서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곳. 긁는 순간 반짝이는 다양한 컬러의 향연. 상상력을 무한하게 팽창시킬 수 있는 공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주는 더 이상 그런 공간이 아닌 게 되었다. 우주를 떠올리면 이제 정형화된 어떤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머리 속을 맴돈다. 이미 출력되어 있는 그림처럼. 탈출해야 하는 곳, 정복의 대상, 대체 공간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우주는 지금도 끝없이 팽창하고 있다는데, 인간이 우주를 현실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속도와의 간극이 점차 줄어드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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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은 어린이 문학이 지금까지 만들어 온 흐름에 균열을 내는 변곡점 같다. 이것은 위에 이야기 했던 우주와 현실 세계의 줄어드는 간극에 대한 내 감정과 비슷하다. 서사와 여운이 길게 남았던 기존의 수상작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다섯 편의 단편이 서사는 간결하고 여백은 매우 크게 다가온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오랜 시간 애정해온 독자에게는(나 같은) 좀 복잡한 감정이 이는 수상작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드나들던 문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린 느낌이랄까. 분명한 것은 어른들을 한바탕 휩쓸었던 SF문학이 이제 본격적으로 어린이들의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다섯 작품을 읽는 동안 가장 좋았던 것은, 인간의 희망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절망과 무기력함이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는 보는 이에 따라 희망적으로 혹은 절망적으로 읽힐 수 있지 않을까.


나 만큼이나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최고로 애정하는 첫째가 어떻게 읽을지 너무 궁금하다. 이번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리고 나도 우주복권에 당첨되고 싶다.


소설이므로 줄거리는 생략한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애독자라면 안 읽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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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이제 지구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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