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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젤리 Mar 01. 2023

직립, 위대한 도약

진화의 프로그래밍

직립(直立) 「명사」 꼿꼿하게 바로 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방을 나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기가 잠들었는지 확인하려고ㅡ전날 거실에서 재운 터라 홈캠을 미처 옮기지 못했다ㅡ방문을 열었는데 아기가 침대가드를 붙잡고 가만히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띠용?! 너 혼자 설 줄 알아??


우리 아기가 본격적으로 배밀이를 시작한 것은 8개월 무렵이었다. 대근육 발달이 빠른 편은 아니라 막연히 돌 때쯤 되면 걷겠거니 싶었다. 그랬는데 몇 주 전부터 내 몸을 올라타 넘기도 하고 소파에 세워주면 잘 버티길래 이 꼬마인간이 나름 성장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아기를 거실 베이비룸에 두고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분명히 누워있던 아기가 어느 순간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아기도 당황했는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ㅋㅋ 너도 이제 혼자 앉을 줄 아는구나! 그 후로 혼자 앉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더니(아기의 뿌듯한 표정은 덤)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혼자 설 수 있게 된 것인지 궁금해 아기를 지켜보았다. 물론 재우기도 해야 했고.


아기가 잡고 섰다가 넘어지는 과정


아기는 하찮은 손으로 침대 가드를 붙잡고 하찮은 다리를 이용해 힘을 주며 결국에는 서게 된 것이다. 이제 너도 중력을 거슬러 직립하는 진정한 의 세계로 왔구나. 놀랍고도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어떻게 하라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알아서 기고, 앉고, 잡고 서다니. 이런 일련의 과정이 태어날 때부터 뇌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다. 아기도 본인이 새로 획득한 기술이 재밌고 좋지 침대 가드 네 면을 모두 붙잡고 서느라 잘 생각이 1도 없어 보였다. 그래, 너도 이 순간을 만끽하렴. 가만히 지켜봤더니 아기는 벽을 붙잡고 서고 앉았다가(또는 넘어졌다가) 다시 붙잡고 서기를 한 시간가량 반복했다.


이제 그만 재워야겠다 싶어 눕혔더니, 려고 몸을 굴렸다가 벽에 닿기만 하면 기어오르려고 했다. 거의 스파이더맨인 줄. 수면교육 이후로 웬만해서는 아기를 안아서 재운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진정하고 자자. 앞으로 잡고 설 수 있는 날이 아주아주 많단다. 아기를 겨우 재우고 기쁨에 겨워 쓰는 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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