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유교의 나라답게,
우리나라 형법에는 살인죄 중 직계비속(자녀, 손자 등)이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을 살해할 경우 가중처벌하는 조항이 있고,
자식이 부모를 제대로 돌보지 않거나 심지어 부모에게 욕만 해도 “패륜아”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아름다운 문화가 있으며,
욕 중에 가장 상스러운 욕은 단연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욕’을 꼽는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당연히 패륜아일 수밖에 없다.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는데 사실 나는,
ABJ(아버지라고도 부르기 싫으니까, 이니셜로 대체한다)의 목에 칼을 들이댄 적이 있다. 정말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그날은 뭔가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늦여름이라 조금 덥기는 했지만 처서가 지난 터라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모두 끝나서 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개학을 기다리며 어린 두 동생들과 함께 얼마 남지 않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술에 잔뜩 취한 ABJ가 집에 왔고, 만취할 때면 으레 하는 신경질적인 재채기를 계속했으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큰소리로 지껄이면서 가족들을 성가시게 했다. 엄마는 보통때와 똑같이 만취하여 행패를 부리는 ABJ와 별것 아닌 일로 싸움을 시작했고 그리고 그 싸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ABJ가 집기를 던지는 절정에 이르렀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게 있었다면,
집기를 던지고 가구를 부신 후 안방 문을 쾅! 하고 닫고 들어가거나 현관문을 쾅! 하고 닫고 나가버렸어야 할 ABJ가 엄마 목에 칼을 들이대었다는 점이다. 식탁에서 과자를 먹고 있던 우리 삼 남매는 오랫동안 엄마와 ABJ의 싸움에 단련이 되어 있었음에도 그때는 정말로 놀라서 울지도 못했다.
덜 여문 삼 남매의, 특히나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막내의 반질반질한 눈을 보면서 ABJ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지금은 어쩌다 내가 칼을 들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부엌에 있는 칼 중 가장 큰 칼이 내 손에 들려 있었고 나는 그 칼을 ABJ의 목에 들이대고 있었다.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뜨거운 머리로 부엌칼을 쥐고, 누워있던 ABJ의 목에 들이대었음에도 ABJ는 의외로 미동도 않았다.
후려치거나 욕을 한 바가지 퍼붓거나 그래야 정상인데 그저 날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와 두 동생이 울면서 칼을 쥔 내 손을 붙잡았고, 칼을 잘못 잡았던지 부엌칼 날의 끝부분에 내 손바닥 바깥쪽이 찢어져 피가 흘렀다.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아픈지도 몰랐다.
숨을 씩씩 내뱉으면서, 찢겨진 손바닥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열이 올라 뜨거운 머리로 죽어! 죽어!라고 외쳤던 것 같다.
지금 죽이면 그동안 지옥 같았던 시간들이 이제는 끝날 것 같았는데 ‘언니 그만해!’라는 둘째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미동도 없는 ABJ의 모습에 어쩐지 나 스스로가 낯설어 칼을 내려놓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칼을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면서, 이미 오래전에 반쯤 부서진 식탁 의자에 앉아서 엄마가 내 찢겨진 손바닥에 빨간 약을 바르는 것을 우두커니 지켜봤다.
피는 멎었지만 보드라운 손바닥이 칼에 찢겨진 상처는 남았고 나는 무감하게 쳐다보다가 우는 동생들도, 엄마도 꼴 보기 싫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시간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고 그 전쟁 같은 밤도 흘렀갔다.
다음날 나는 아침에 일어나 여느 때와 같이 아침을 먹고 습관처럼 일요일 아침마다 방송하는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고 월요일에 있을 개학식에 들고 갈 방학숙제를 챙겼다.
그 밤 이후로 우리 집에서 내가 ABJ의 목에 칼을 들이대었던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내 손바닥에 남아 있는 흉터처럼 내가 감히 부모의 목에 칼을 들이댄 것은 사실이고 나는 분명 패륜아다.
패륜을 저지른 것은 분명한데, 그럼에도 계속 구차한 변명을 웅얼거리는 이유는 나는 그 밤의 내가 불쌍하고 안쓰럽고 아직도 그 밤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를 조금이나마 구하기 위해서다.
나는 이기적이기까지 한 패륜아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라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