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뭐 어쩌라고
40년을 살면서 세상이 변했음을 가장 실감한 부분은 바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양육방식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점수로 매겨지는 자식의 성적이었고, 다른 사람의 평가로 가늠되는 자식의 출세였다.
부모 말 잘 들으면서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좋은 대학을 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자식을 키우는 것만이 부모의 가장 큰 덕목이자 목표이던 시절이 있었다.
부부싸움은 어느 집에나 있는 일이라서 신경 쓸만한 일이 아니었고, 가정환경이라는 항목에 보이지 않는 감정적인 부부관계나 가족관계는 고려사항이 아니었으며, 집이 자가인지 자동차는 몇 cc인지, 부모의 학력과 직업은 무엇인지가 가정환경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였다.
그래서 지방의 한 도시에서 크진 않지만 자가인 아파트에 살면서, 남들도 다 아는 회사에 다니는 ABJ 밑에서 크면서 늘 1등을 도맡아 하는 나는,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환경에서 완벽하게 자란 아이였다.
그래도 나는 그때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이 그리고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20살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읽었던, 유명한 심리학자들이 저술한 책들에 의하면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나 아이 자신의 정서 등을 결정하는 것은 부모 사이의 애정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이라고 한다. 살고 있는 집이 자가인지, 부모의 학력과 직업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그 책들을 읽고 나서야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과 달리 내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내 결함들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뚜렷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뒤늦게 부모탓을 할 생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결함들의 기원은 내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기상천외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문구들이 있다. 불우한 가정환경, 부모 등 친인척으로부터의 정서적, 물리적 학대, 방임, 원만하지 않은 인간관계가 이 끔찍한 범죄자들을 만들었다면서 말이다.
이런 말하면 아마 밤에 지나가다가 돌 맞겠지만, 똑같은 조건들 속에서 성장한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은 다 갖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적 기반을 갖지 못하면 ‘이 넓은 세상에 발가벗은 나 혼자’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그 누구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고 그 누구도 나를 지지해 주지 않는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설령 그것이 부모라고 할지라도 호시탐탐 나를 해할 생각밖에 없으니, 나는 어떻게든 나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 살아가게 된다.
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본능적으로 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을 찾았다. 아무리 어려도 인간으로서 방어본능은 살아있었으니까. 아니 눈앞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폭력의 현장에 계속 노출되면서 나도 모르게 방어본능이 강해졌다.
살아남으려면, 부모로부터 안전하게 나를 지키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했다.
나는 부모 말을 거스르지 않는, 화를 돋우지 않는 착한 아이였고 그들이 시키는 것은 뭐든지 했으며, 10분 전만 해도 집기를 던지고 엄마를 때리던 ABJ가 갑자기 다가와 ‘예쁜 우리딸’하며 입술을 부벼도 활짝 웃으며 얌전히 뺨을 내주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국민학교(내가 입학할 때만 해도 초등학교 대신 국민학교라고 불렀다)에 입학 후 처음으로 치른 월말고사에서 소위 올백을 맞았을 때 내 부모는 매우 기뻐했다. 어깨를 으쓱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자랑했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자 거의 처음으로 나에게 관심을 쏟았다.
사실 관심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다. 처음으로 학용품을 살 때 내 의견을 물은 것에 불과하니까.
그전에는 내가 사용하는 물건이나 내가 먹는 음식들을 선택할 때 내 취향이 반영된 적은 없었다. 내게 주어지는 음식, 옷, 학용품, 인형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물려받거나 또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선택해 가져온 것일 뿐 내 의사가 반영된 적은 없었다.
어린 나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내 마음대로 옷을 고른다거나 간식을 고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내 마음대로 고른 연필을 들고 집에 왔을 때, 내가 계속 공부를 잘한다면 내가 그들의 자랑이 된다면 나는 더욱더 많은 것을 내 마음대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습득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여전히 폭력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부모의 자랑스러운 자식이 된 이상 그들이 나를 조금 더 신경 쓰게 된 것은 확실했다.
그 차이는 나와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확연히 드러났으니까.
나는 공부를 매우 잘했다.
하고 싶어서 한 것이라기보다 그것이 아니면 나를 지킬 수 있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수로 매겨지는 성적은 나를 지키는 더욱더 강력한 방패가 되었다.
집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확연히 차이나는 힘을 갖는다. 지각을 해도, 청소당번을 빼먹어도 슬쩍 눈 감아주는 것은 물론 선생들의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도맡으면서 얻은 얄팍한 신임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담임선생으로부터 걸려온 나를 칭찬하는 전화가,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받는 시기와 부러움이 내 부모의 어깨를 으쓱하게 했으니까.
내가 다른 사람들과 싸워 이길 정도로 힘이 셌다면, 다른 사람을 때리고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신경줄이 굵은 아이였다면 나도 어쩌면은 신문을 장식하는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다른 아이보다 월등히 작았던 소심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었고 내게 주어진 것은 단지 공부뿐이었다.
그리고 오로지 하나 남은 선택지에 매달려 살아남은 나는 이상한, 결함이 많은 그러나 겉보기에는 멀쩡한 어른이 되었다.
겉보기에 멀쩡한 어른은 오해받기 쉽다. 풍족한 가정환경 속에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것처럼 보이니까.
그러나 그러한 얄팍한 오해로 시커멓게 썩은 속내를 감추려 안달복달하는 나는 어딘가 고장 나있다. 내가 나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할수록 내 안의 어딘가가 부서지고 무너진다. 그리고 꽁꽁 감쳐둔 시커먼 덩어리들은 더럽고 치사하게 내가 약해질 때마다, 내가 인생의 고비를 마주할 때마다 나를 깊이를 알 수 없는 땅끝으로 처박는다.
그리고 때로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는 한 줄에 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