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ABJ의 장례식을 상상해 본다.

조금은 이상한 상상

by 고장난시계

나는 가끔 ABJ의 마지막을, 그리고 그 장례식을 상상해 본다.

그 사람이 집에서, 누워서, 잠을 자다가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는 끝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나의 상상에서, ABJ는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무단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이거나,

음주 운전을 하고 가다가 사고가 나거나,

또는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어 다른 사람과 길에서 싸우다가 소주병에 머리를 가격 당해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ABJ의 삶의 마지막은 ‘사고사’일 가능성이 높다.
평생을 ABJ의 딸로 살아오며 모든 것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장담한다.

아, 술에 취해서 실족사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빼먹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가장 먼저 연락을 받는 것은 ABJ와 아직도 같이 살고 있는 엄마나 아니면 우리 삼 남매 중 유일하게 부모와 연락을 하고 있는 남동생일 테고, 남동생은 오래전에 부모와 연을 끊은 누나들에게 사고 소식을 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여기서 나의 고민이 시작된다.


나는 ABJ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인가,
말 것인가.


참석하게 된다면, 내가 과연 제정신일 수 있을까?

악독한 일가친척들과 ABJ와 똑같은 그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과연 정상적인 상주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상 속에서의 나는,

상복을 입고 ABJ의 영정을 똑바로 마주 보며 웃으며 춤을 춘다.

춤도 못 추는 주제에, 넘치는 기쁨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빈소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리고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감히 나에 대해 입을 놀리는 인사들이 있다면, 초를 밝히고 있는 촛대를 손에 그러쥐고 그들의 면상을 후려갈긴다.


곱게 차려진 제사상을 모두 뒤엎으면서.

보란 듯이 미친 듯이 깔깔 웃으면서.


내 상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입관과 발인에까지 이른다.

입관하기 전에 아무도 모르게 그 몸에 생채기를 내줄까, 수의는 제일 싼 것으로 입혀야지. 그런 데에 돈을 쓰는 것은 10원도 아깝다.

차라리 전재산을 기부하고 말지.

관도 제일 싼 것으로 사고, 매장은커녕 재빨리 화장해서 한 줌 재로 남으면 아무도 모르게 빼돌려서 변기에 쏟아붓고 물을 내려버려야지.


여기까지 상상만 해도 숨이 가빠오고 머리가 뜨거워진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가 그러질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화가 나면 눈물부터 차올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 있는 모습은,

아마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모든 귀찮은 연락도 무시한 채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낼 근사한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때 내가 울 것인지 웃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딱 하나는 분명하다.


나는 그 순간 정말 마음이 후련할 것 같다.
나의 치부가, 나의 잔혹한 과거가 조금이나마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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