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은 언제나 떼로 몰려다닌다(3)

딱 한 가지만 나쁘기만은 쉽지 않다(3)

by 고장난시계

명절이 되니 명절마다 겪었던 온갖 일들이 떠올라, 어금니가 뿌득 뿌득 갈리고 숨이 가빠온다.

괜한 짓을 저질렀나 싶지만, 그래도 이때가 아니면 나는 또 도망치고 말 거니까 지금 해야 한다.


고모 얘기를 해볼까.

나는 내게 하나밖에 없는 고모를 보면서 세상에 ‘인과응보’라는 것이 있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고모의 자식농사는 대차게 망했다.


아하하하하.


나보다 10살 많은 사촌 오빠는 고등학생 때 오토바이 사고로 다친 것을 핑계 삼아 현재까지 부모에게 기생하는 백수로 살고 있고,

8살 많은 사촌 언니는 허언증 있는 남자에게 시집갔다가 그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살해당한 후 혼자 아이 둘을 키우며 살고 있다.


뭐, 애초에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었다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겠지만,

설령 실수로 그런 선택을 했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그 지경에 이르지 않았겠지만 천성을 바꿀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누나들 밑에서 크느라 평소 형이 갖고 싶어 사촌 오빠를 유별나게 따랐던 내 막냇동생조차 벌써 태도를 바꾼 지 오래다.


마지막으로 사촌 오빠를 만나러 고모집에 놀러 갔을 때, 동생이 사촌오빠가 늦잠 자는 동안 기차 시간 때문에 그냥 고모 집을 나오자, 취직했으면서도 자신에게 돈을 주지 않고 갔다며 폭언을 퍼부었다니 정 떨어질만하다.


자기보다 16살이나 어린 사촌 동생에게 그것도 이제 막 취직한 사회 초년생에게 당당하게 돈을 요구하는 정신머리라니.

거기다 석 달째 감지 않은 머리와 제대로 씻지 않아 토악질이 나오는 냄새를 풍기는 모습에 한 더러움 하는 내 동생조차 기겁을 했다고 한다.

부디 오래오래 살면서 고모의 등골을 빼먹기를.


사촌 언니는 또 어떠한가.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공부와 담을 쌓고 자신의 치장에만 열중하는 위인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사촌 언니는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나에게,

“여자는 공부 잘해봤자 소용없다. 시집만 잘 가면 돼”

라는 망언을 입버릇처럼 말하길래 얼마나 시집을 잘 가는지 봤더니, 허세만 번드르르한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그것도 본인 입으로 한창 예쁜 20대가 훌쩍 지나 30대 초반이 지날 무렵 부랴부랴 서둘러서.


애초에 그렇게 예쁜 얼굴이 아니었던 데다, 노골적으로 남자에게 기생할 생각이 만만인 여자가 멀쩡한 곳에 시집을 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사촌 언니가 결혼한 남자는 결혼 전 얘기와 달리 내세울 만한 재산은커녕 처자식을 부양할 만한 능력조차 제대로 없었고,

사촌 언니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 사기에 가까운 허세를 늘어놓다 결국 그 허세에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이 대낮에 휘두른 칼에 찔려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 모든 불행은 분명 고모가 자초한 일이다.

할머니의 딸임이 분명한 고모는 할머니보다 더욱 악질인 사람이다.


고모의 전적을 나열해보자면,

사소하게는 반에서 1등을 도맡아 하던 내게, 그래서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의 진학을 꿈꾸던 내게, 국가고시를 준비하던 내게 ‘가시나 공부시켜서 우짤라고. 시집가면 다 쓸데없는 것을.‘이라고 면전에 쏘아붙이는 사람이었고, ABJ를 꼬드겨 ABJ의 회사에서 복지차원으로 나온 나와 내 여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갈취해 간 사람이었다. 덕분에 나와 내 여동생의 대학시절은 끝없는 알바와 공부밖에 없다.


그리고 크게는 아직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무렵 한밤중에 작은 아버지 내외와 함께 우리 집에 쳐들어와서 엄마의 머리채를 잡은 전적이 있고.


뭐 싸구려 중국도자기를 우리 집에 몇 십만 원에 팔아먹은 것 같은 일은 너무도 흔해서 세는 것이 무의미하다.


고모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ABJ에게 돈 달라는 얘기와 ‘기집애 공부시켜 봤자 다 쓸데없다’는 개똥철학뿐이었고,

하는 일이라고는 외벌이로 삼 남매를 키우느라 주머니 사정이 뻔한 우리 집에서 돈을 타가거나 아니면 엄마와 우리 자매를 손가락으로 부려먹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고모에게 자식들의 불행쯤은 본인의 업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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