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가지만 나쁘기만은 쉽지 않다(2)
벌써 몇 년 전에 부모와 절연했기에, 무려 10일간 계속되는 추석연휴라고 하더라도 나에게 특별한 계획이 있을 리가 없다.
그냥 일요일이 좀 오래 계속되는구나 할 뿐.
남들은 가족이나 친척들과 오순도순 보내는 명절에 혼자 지내는 것도 사실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반갑다.
이참에 그동안 못 읽었던 책도 읽고, 그동안 쌓아만 두었던 잡동사니들도 정리하고, 밖에서 사 먹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식재료로 음식도 만들어 나를 알뜰하게 챙기는 것이 좋다.
내가 집에서 탈출하기 전까지 명절은 늘 마음을 졸여야 하는 날이었다.
명절뿐이랴, 매년 있는 개학식, 방학식, 중간고사, 기말고사, 소풍 등등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마치 미리 계획이라도 세워놓은 듯 큰일이 벌어지는 탓에 나는 특별한 행사라도 생기면 늘 불안했다.
심지어 내가 고3 때 수학능력시험을 불과 이틀 앞두고 ABJ에게 너무 맞아 112에 신고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으니까.
그때 생긴 멍은 수능날까지도 빠지지 않아 나는 시퍼렇게 멍든 얼굴로 절뚝거리며 수능시험장에 들어갔다.
평소에는 부모의 눈치만 보면 되었다면, 명절은 큰집이라는 명목으로 온갖 친가 쪽 인사들이 우리 집에 모이는 탓에 그들 모두의 눈치를 봐야 했다.
사 남매의 장남인 ABJ는 11살 때 자신의 아버지(나에게는 할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홀어머니(나에게는 할머니)의 유사남편이자, 아들이었고,
하나밖에 없는 누나(나에게는 고모)와 둘 있는 남동생들(나에게는 작은 아버지들)에게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보면 ABJ의 불우한 성장배경 때문에 ‘그래도 동정할 부분이 있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이미 초등학생일 때 할머니가 빨리 죽기를 간절히 바랄 정도였고,
사촌 동생이 고작 20살의 나이에 재발한 백혈병으로 죽었을 때 ‘인과응보’라는 단어를 떠올릴 정도였으니까.
유명한 밈(meme) 중에 그런 것이 있다.
손주의 배고프다는 한 마디에 경찰이 도로를 봉쇄했음에도 그것을 뚫고 손주에게 밥을 해주러 돌진하는 할머니의 모습.
또는 손주의 배고프다는 칭얼거림은 할머니에게 ‘내새끼가 아사직전에 내뱉는 한마디’로 들린다는 짤.
내 할머니는 그런 존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오로지 자신 만이 중요했던 할머니에게 나와 내 여동생의 존재는 자신의 몫으로 돌아올 ABJ의 돈과 시간을 축내는 식충이에 지나지 않았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성가신 어린애에 지나지 않았으며,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지자 자신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는 싸가지 없는 것들이었다.
요리? 그 시대의 여자답지 않게 할머니는 요리는커녕 집안 살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엄마가 시집가서 본격적으로 할머니의 집을 돌보기 전까지 마루와 방바닥은 묵은 때가 쌓일 대로 쌓여 발바닥에 끈적끈적 달라붙었고,
밤마다 할머니집 천장에서는 온갖 쥐들이 달리기 경주를 벌였으며,
온 벽지는 뭔지 모를 것들이 눌어붙어 얼룩덜룩했다.
할머니보다 10살 많은,이웃에 살던 이모할머니가 환갑이 넘은 할머니의 팬티를 빨아주었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할 정도로 남들에게 기생하는데 이골이 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 ‘개인위생’이라느니 ‘자기절제’라는 개념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제대로 씻지도 않아서 환갑이 되기도 전에 이빨은 모두 상해버렸고 장남을 들들 볶아 큰돈을 들여 틀니를 했음에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반 쪼갠 사과를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먹으면서 끼니를 때웠다.
이가 부실해 제대로 먹지 못한다며 내내 구시렁거리다가도 맛있는 고기반찬이나 통닭, 떡 등 군것질거리는 잘도 먹는 것을 봤을 때 단순한 편식이 아니었나 싶다.
합가 하는 조건으로 쌈짓돈과 패물을 털어 막내아들이 집 사는데 보태주었으면서도 그 집에서 제대로 된 방 한 칸 얻지 못해 여기저기를 전전해 다닌 어수룩한 양반이었고,
한평생을 건달로 살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 눈 감는 그날까지 돈을 빼앗기는 것도 모자라 얻어맞기까지 하면서도 만만한 장남인 ABJ를 닦달해 자기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는 기회주의적인 인물이었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자매들을 어릴 때부터 알뜰하게 부려먹고 때로는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막말을 퍼붓는 약육강식의 생존에 능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할머니로 인한 부부싸움은 끊이지 않았고, 나는 할머니가 죽으면 이 모든 게 끝날 줄 알고 할머니가 빨리 죽기를 간절히 바랐다.
물론, ‘끼리끼리’ 또는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 집의 문제는 할머니 단 한 사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내가 대학생 때 마침내 할머니가 죽었을 때ㅡ돌아가셨다는 고상한 표현이 이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ㅡ 나는 솔직히 해방감을 느꼈다.
우리 집에서 더 이상 할머니로 인한 싸움은 없겠구나, 할머니를 핑계로 끔찍한 고모나 작은 아버지들을 만날 일은 더 이상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듯,
할머니의 기생 유전자를 물려받은 고모와 작은아버지들은 온갖 핑계를 대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집에 기생했다.
단순히 ABJ에 기생한 것이 아니라, 엄마와 우리 삼 남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기생한 그들은 내가 집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