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는 어떠한 사람이었는가(1)
지난 심리상담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심리상담 역시 나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현재의 나를 알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를 만든 과거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아는 것이 중요한 듯했다.
사실 나는 뚜렷한 목적이나 방향이 없으면 다른 사람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논의해야 할 대상이나 처리해야 할 문제가 뚜렷하게 정해져 있는 업무상 회의에서는 청산유수 같이 말을 잘하지만, 감정적인 교류가 필요한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업무상 회의로 분류되지 않는, 심리상담 센터에 가기 전에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도 막상 상담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이발사가 된 것 마냥 줄줄 속내가 쏟아지는 내가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상담실에서 폭포수 같이 말을 쏟아내는 나 스스로를 돌이켜보면서, 다시금 내가 그동안 한계에 이르렀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부모와 절연하기 전까지 겪었던 가정폭력과 학대와 9년간 왕따를 당한 사실을 알고 있는 상담사 앞에서 나는 이제 그 어떤 것도 숨길 필요가 없다.
철저히 비밀이 보장된 시간 속에서 나는 40년 묵은 끔찍하고 끈적끈적한 덩어리들을 토해낼 것을 마음먹었다.
그래서 호기롭게 상담사에게 ‘살을 빼는 것도 적어도 2년은 잡아야 하는데, 40년 과거를 정리해야 하니 장기적인 플랜으로 내가 과거를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까지 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 상담을 통해서 앞으로의 내 40대, 50대가 조금 더 감정적으로 안정적이 되길 바란다.
오랫동안 지속된 가정 내에서 발생한 폭력과 학교에서의 왕따는 내게 분명한 상흔을 남겼다.
사실 상담센터에서는 상담사의 도움을 받아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지만 혼자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백지를 채워나가자니 숨이 가빠오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지만 그래도 그래도 하며 애써 나를 다잡아 본다.
이 날 상담에서, 나의 요청으로 나의 지난 과거 중 학교에서 겪었던 9년간의 왕따에 대한 상담을 먼저 시작했다.
왜 왕따 경험부터 상담을 받고 싶었는지는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추측건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아이들을 제외하고 이제 내가 9년간 왕따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제 내 눈앞에 있는 상담사가 유일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얼마 전 뉴스에서 본 학교폭력 가해자의 성적을 0점 처리하겠다는 방침이 발표된 것을 보고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 학교 폭력 가해자의 성적을 0점으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 발표된 것을 보고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내가 9년간 왕따를 겪었을 당시에 그런 제도가 있었다면 나는 오랫동안 고통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실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서 지금도 그때 당시에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을 찾아본다.
인과응보를 간절히 바라는 나의 기대가 무색하게 나를 괴롭혔던 가해자들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멀쩡히 직장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니들이 그렇게 잘 살면 안되지‘라는 생각에 숨이 가빠온다.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 가해자들을 보면서 나만 과거에 붙잡혀 있는 것 같아 억울하다.
솔직히 말하면,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고픈 치기 어린 시도의 일환으로 나는 딱 한번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당시 방관자의 위치에 있었던 아이에게 일부러 연락해서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했다.
당시 목표는 단 하나였다.
어려운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는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니들이 그렇게 괴롭혔던 내가 지금은 니들보다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돈도 더 많이 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같지 않다.
결혼식장에서 나를 마주한 가해자들은 순간 움찔하였을 뿐,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뻔뻔하게 나오는 가해자들에게 어리석고 불쌍한 나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황급히 그 자리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더 황당한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결혼한 친구를 통해 내가 국가고시에 합격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를 괴롭혔던 가해자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
하, 기가 막혔다.
9년의 시간이 가해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이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에게 그런 부탁을 해서는 안되지.
그리고 더욱 거지 같은 것은, 그런 부탁을 내게 할 정도로 내가 그들 눈에 여전히 만만하고 얕잡아 보였다는 것이다.
누군가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고 한다.
하지만 어리석고 아둔한 나는 최고의 복수를 선택할 생각은 없다.
언젠가 그들도 내가 겪었던 것처럼 똑같은 일을 겪기를.
그 애들이 아니라면 그 애들의 자식들이라도 손자라도 나와 똑같은 일을 겪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