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같은 시간에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처럼 지난주와 똑같은 시간에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했다.
그래도 한 번 와 봤다고 상담센터의 문턱을 넘는 것이 힘들지는 않다.
지난 한 주는 지냈냐는 상담사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이 문턱을 넘을 때부터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하자고 다짐했으니까.
“제가 이런 순간을 기다렸나 봐요.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니까 마음이 한결 나아졌어요.”
진심이었다.
첫 상담을 받고 별달리 한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그 이후부터 요동치던 마음이 점점 잠잠해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진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단순히 시간이 해결해 준 것 이상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오늘의 심리상담은 나에 대한 문장을 완성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나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문장,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남들에게 내가 바라는 것.
참 이상도 하지.
나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나를 잘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장을 완성하면서도 이게 내 진심인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심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늘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그러하듯, 왠지 50분의 상담시간 동안 간단한 문장 완성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뺏기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그리고 실토했다.
지금 내가 작성한 문장이 진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사실 나의 감정적인 부분들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학습되어 나오는 것이 많을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할 만큼 내 감정에 대해 잘 모르겠다.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사람을 미친 듯이 몰아붙이는 수능에서 벗어나 겨우 숨 돌릴 구멍을 찾은 나는 다양한 심리학책들을 섭렵했다.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 내 감정을 다스리는 것과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책 속에서 길을 찾고자 했다.
수많은 자기개발서와 심리학 책들은 말했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험난한 학창 시절은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습득할 기회를 상실하게 한다고.
지금 내가 가진 문제들에 대한 정답이 거기 있었다.
내가 평생 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비밀 중의 하나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나는 왕따였다는 것이다.
ABJ의 영향으로 남자들과 친밀한 관계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면 대인관계의 선택지는 여자들로 한정되는데, 섬세하고 예민한 기질의 여자들 사이의, 특히 그 기질이 가장 극대화되는 청소년기 여자들 사이의 왕따는 은밀하고 음습하게 진행된다.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에는 이제 막 초창기 모델의 핸드폰이 학생들에게도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 나는 고3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핸드폰을 가졌다- 초창기 SNS의 모델이었던 싸이월드는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유행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대인관계는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청소년기 여학생들의 특징은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것에 있다.
학구열이 그다지 높지 않은 지방의 한 작은 동네에서, 여학생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친구들과 몰려다녔다.
적게는 단 둘, 많게는 8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홀수로 집단이 형성되게 되면, 짝을 이루는 배드민턴이나 두 명씩 버스를 타게 되는 수학여행에서 꼭 한 명이 남는 참사가 벌어지기 때문에 홀수로 무리를 짓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다.
아니면 홀수로 무리가 형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레 누구 한 명이 도태되었다.
모두들 짝이 있는 상황에서 외따로 떨어진 나는 눈에 띄기 십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학창 시절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수능준비나 진로선택을 고민한 순간을 꼽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그리고 저녁시간이었다.
요즘 학생들도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 하다못해 단 1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같은 반 여자애들은 자신들의 무리를 찾아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어제 본 드라마, 다음 주에 있을 시험, 최근 구입한 예쁜 캐릭터가 있는 공책 등 어렴풋이 건너들은 그녀들이 나누는 화제는 무궁무진했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모여들 때 우두커니 혼자 내 책상만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나로서는 모든 애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식은땀이 났다.
무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나는 고스란히 외부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도망칠 곳은 학교에 존재하지 않았다.
만화나 드라마를 보면 외로운 늑대를 자처하는 주인공이 학교 옥상이나 창고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던데, 내가 다니는 학교의 옥상 출입문은 무거운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었고 창고는 어디에 있는지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의 눈총을 받으며, 또는 눈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묵묵히 지킬 수밖에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었다.
그리고 학생 신분으로서 쉬는 시간에 공부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느라 속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쉬는 시간이 나았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은 지옥과 다름없었다.
서로 친한 친구들과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려 분주히 책상을 앞뒤로 돌리고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나는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꾹 삼키며 애써 도시락을 꺼냈다.
오기로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기 위해 도시락을 꾸역꾸역 먹었던 것 같다.
아니, 사실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깨끗이 지워버리려고 애쓴 탓에 이제는 떠올리려고 해도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점심이나 저녁을 먹기 위해 온 다른 반 학생들이 나를 보던 눈빛과 애써 태연한 척을 하기 위해 스스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생물이라고 마인드컨트롤하려고 애썼던 기억이다.
나 스스로를 아무런 감정이 없는 무생물이라고 생각하면 그 순간이 고통스럽지 않았으니까.
꾸역꾸역 식사를 마치고 같이 매점을 가거나 산책할 친구가 없는 나는 또 공부했다.
학생이라는 신분은 남은 식사시간에 공부를 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나를 지키는 무기였다.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는, 늘 운동장 조회 때 나가서 상을 받는, 1등을 도맡아 하는 나는 그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는 철저한 혼자였지만 그래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혼자였으니까.
그 덕분에 음습하고 은밀한 따돌림만 당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공부조차 잘하지 못하였더라면 아마 뉴스에 나오는 폭행사건의 피해자로 전락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나는 특별히 똑똑하거나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단지 살기 위해 공부를 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었다고.
여기까지 주절주절 이야기를 풀어놓는 내 말에 심리상담사가 간단히 덧붙였다.
XX님은 역할과 기능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네요.
아, 나는 역할과 기능에 충실한 사람이구나.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역할과 기능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정의해 주는 말이 고마웠다. 눈물과 콧물을 주룩주룩 쏟았다.
그런 나를 보며 상담사는 상담 시작 전에 검사한 TCI 검사 결과를 보면서 내가 평소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 생각과 달리 내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약 9년간의 왕따를 겪으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 따위 보지 않는 내 주장이 강한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았다.
9년간 왕따를 겪는 동안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는데 그 바탕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내가 있었다.
내가 왕따인 것에 대해 나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는 언제나 깨끗이 씻었고 눈에 띄지 않는 무난한 옷을 입고 다녔으며, 헤어스타일도 학교에서 정해준 규정에 맞게 하나로 묶고 다녔다.
밥을 먹을 때도 더러워 보이지 않게 입을 조금만 벌려 천천히 씹어 먹었고, 시험에서 1등을 해도 아무리 큰 상을 타도 거만해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써 표정을 숨겼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의 모든 것에 흠을 잡기 위해서, 그래서 나를 왕따 시키는 것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찾기 위해서 다른 애들이 24시간 나의 모든 것을 지켜보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대놓고 나에게 ‘냄새나’라고 말하고, 내 책상에 자기가 실수로 부딪혔으면서도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윽, XX 책상 만졌으니 이제 병 걸린다’라고 말하는 애들 앞에서 나는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마흔 명이 조금 넘는 아이들이 하루에 단 1분만 나를 향해 비아냥 거려도 40여분이 넘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9년간의 왕따를 거쳐서 만들어진 나는 여전히 그때 버릇을 버리지 못한 채 어딜 가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다.
그동안 섭렵했던 책들이 아무리 다른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해도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인 학창 시절의 경험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해도, 버스만 타도 모두가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혹은 내가 해코지할 만한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항상 단정한 옷차림을 유지하고 일부러 과도하게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씩씩하게 걷는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달달 볶고 집에 오면 널브러지면서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한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나는 역할과 기능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