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가지만 나쁘기만은 쉽지 않다(1)
상경하기 전까지 내 법적 보호자였던 ABJ는 다양한 방면으로 나쁜 사람이다.
신랑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부모손에 이끌려 결혼하던 옛날의 고리타분한 할머니들도 그랬다.
“자고로 남편이란 계집질 안 하고, 마누라 안 패고, 처자식 먹여 살리기만 하면 된다고. 그러면 됐다고.“
그 할머니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위인이 바로 내 ABJ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나쁜 것은 언제나 떼로 몰려다니기 때문에 무엇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너무 다채롭게 나쁜 사람이라서.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ABJ의 폭력은 서른이 훌쩍 넘어 내가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늙으면 힘도 떨어져서 젊을 때 우악 떨던 위인들도 수그러든다고 하던데 그 당연한 법칙도 이 사람은 피해 가는 가 싶다.
나와 달리 그나마 부모와 교류를 이어가던 내 여동생은 최근 절연을 선언했다.
물론 그전부터 내가 절연을 적극 권유하기는 했지만 마음 약한 내 동생이 그렇게 단호하고 가혹한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약 4개월 전에 벌어진 사건을 겪고 나서야 내 동생은 겨우 도망치듯 집에서 빠져나왔다.
불우하고 비정상적인 가정환경 속에서도 늘 사랑이 넘쳤던 내 동생은 정말 다행스럽게도 ABJ와 전혀 다른 다정하고 착실한 남자를 만나 늦은 나이지만 결혼에 성공했다.
그리고 약 1년간의 시험관 시술 끝에 어렵게 아이를 가졌다.
노산과 질병으로 초고위험군 산모였기에 남편과 떨어져 본가에서 지내던 여동생은 임신 8개월에 이르렀을 때 ABJ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아무리 70 먹은 노인이라고 해도 배불뚝이 임산부의 몸으로 성인 남자의 막무가내 완력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화장실에서 나오던 내 동생의 머리채를 갑자기 붙잡은 ABJ는 있는 힘을 다해 차갑고 딱딱한 화장실 바닥으로 내동댕이 쳤고 내 동생의 몸은 그대로 밑으로 추락했다. 하필 머리부터 바닥으로 떨어졌던 터라 뇌진탕이 왔고 내 동생은 가까스로 119가 아닌 112에 신고했다.
나 좀 살려달라고.
우리 자매는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119에 신고했더라면 ABJ의 폭력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112에 신고하면 ABJ의 폭력은 멈추었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몇 마디 훈계를 하면 한동안 조용한 생활을 지낼 수 있었다.
물론 길어야 3일 또는 4일 정도의 얄팍한 평화에 불과하지만.
늦게라도 가정폭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에 깊이 감사한다.
어릴 적과 달리 그날 출동한 경찰관은 ABJ에게 씨도 안 먹힐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훈계를 늘어놓는 대신 즉각적인 분리조치를 취했고 그리고 ABJ는 집을 나갔다.
내 동생은 고위험군에 속하는 임산부였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X-ray 촬영이나 약물처방을 받을 수 없어 그저 집으로 돌아와 혹시나 아이나 자기가 잘못될까 봐 불안으로 그 밤을 꼴딱 새웠다.
불편한 몸으로 밤을 지새우는 사이에, 염치없고 뻔뻔한 ABJ는 단순히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집으로 찾아왔고 그리고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엄마는 문을 열어줬다.
엄마에 대해서도 한바탕 퍼부어 놓고 싶은데 ABJ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에도 벅차니까 엄마에 대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뤄놓겠다.
집으로 돌아온 ABJ를 본 내 동생은 곧바로 경찰에게 연락해 분리조치를 위반한 사실을 신고했고 그리고 또다시 출동한 경찰관이 ABJ와 엄마에게 조치 위반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하자 ABJ는 다시 집을 나갔다고 한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야 내 동생은 집을 도망치듯 나온 후 부모와 절연했다.
참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부모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속도위반으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ABJ와 결혼한 엄마는 결혼식을 올린 그날부터 ABJ의 폭력이 시작됐노라고 딱 한번 고백한 적 있다.
그때부터 시작된 폭력은 점점 더 잔혹해졌고 동네가 떠나갈듯한 폭언을 동반한 무차별적인 폭력은 엄마와 우리 자매에게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내가 대학입학이라는 알량한 동아줄을 통해 집을 탈출한 사이에 엄마가 ABJ가 휘두른 쇠 파이프에 의해 전치 16주가 나올 정도로 폭행을 당하는 그것도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로 주로 얼굴을 가격 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그 누구도 당시 상황에 대해서 나에게 말해 준 적은 없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당시의 상황은 형사사건의 판결문으로 남았으니까.
형사사건의 판결문을 본 사람은 아마 알겠지만, 특히나 상해, 폭행 사건에 관한 판결문에는 피고인(가해자)이 피해자를 언제, 어디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때렸는지, 왜 때렸는지에 대해서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ABJ는 내연녀 JMS(실명을 거론하고 싶지만 역시 ABJ와 같은 이유로 이니셜로 대체한다)로부터 돈을 빼돌려서 가져다 달라는 요청을 받고 당시 전업주부로서 집안 살림을 맡고 있던 엄마에게 돈을 요구했다.
돈 들어갈 곳이 천지였던 엄마는 당연히 거부했고, 이 과정에서 화가 난 ABJ는 부엌 창문에 설치한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방범창을 부수어서 거기서 나온 쇠파이프 중 하나로 엄마를 말 그대로 두들겨 팼다.
복날에 개 패듯이. 아니 개도 그렇게 때리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일로 엄마는 전신의 타박상은 물론 코 뼈와 광대뼈가 부서지는 바람에 전치 16주라는 상해를 입었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했던 여동생이 경찰서와 검찰청에서 그날 벌어진 일에 대해서 상세히 진술하고 의사가 작성한 상해진단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의 진술을 통해 ABJ에게는 집행유예라는 알량한 전과가 남았다.
사람을 거의 죽일 뻔했지만 죽지 않은 데다 가정 내에 발생한 일이라는 점, 음주운전을 제외하고 별다른 전과가 없는 점, 성실히 직장생활을 한 점과 피를 거꾸로 솟게 만드는 친척들의 탄원서가 집행유예라는 참혹한 결과를 만들었다.
나는 개과천선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ABJ는 전과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80년대 영화에 나오는 조폭처럼 마치 자기가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한 듯 의기양양하게 잘 지냈다.
그리고 집을 탈출하기 전까지 우리 자매는 오랫동안 ABJ의 다양한 폭언과 폭행을 견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