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경험을 한 딸자식은 내가 유일할 듯.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또래보다 체구가 작고 깡마른 여자다.
게다가 소심하고 화가 나면 눈물부터 차올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런 여자가 누군가와 몸싸움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 어려운 일을 내가 해냈다.
부친의 내연녀와 머리끄덩이를 잡고 몸싸움을 하고,
그 내연녀의 아들을 만나, 그로부터
“나도 아저씨가 우리 엄마를 만나는 게 싫다. 너무 못생겨서”라는 말을 들은 딸자식은
전 세계의 모든 딸들을 합친다 해도 내가 유일할 것이다.
좋게 말하면, ‘금단의 사랑’
나쁘게 말하면, ‘불륜’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소설 등의 주제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아무리 막장 불륜이라고 하더라도,
허구 속 불륜의 추악함은 진짜 현실에서 벌어지는 불륜의 추악함을 따라잡지 못한다.
내가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을 내연녀 JMS(이니셜부터 재수 없다)과의 인연은 정말 황당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루 두 갑씩 줄담배로 혹사당해왔던 ABJ의 폐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처럼,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드디어 그 기능에 한계가 왔다.
끊이지 않는 기침이 이상해서 받은 검사결과,
ABJ의 폐에서 1단계의 암이 발견되었고 자신의 건강을 끔찍하게 여기는 위인답게 '죽네, 사네' 하며 온 집안을 들쑤신 끝에 서울에 있는 현대아산병원에서 폐 절제 수술을 받았다.
유명 병원에서 당시 폐암 수술의 권위자였던 유명한 의사 선생님께 비교적 빨리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거의 유일한 고위 공직자였던 외삼촌의 힘이었다.
그리고 외삼촌은 나중에 이 일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된다.
폐의 일부를 도려낸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중환자실과 1인실을 거쳐 상태가 제법 호전되어 6인실로 이동하였을 무렵 사달이 났다.
ABJ의 침상 옆에는 당시 ABJ와 같은, 그러나 상태는 더욱 위독한 폐암 환자가 장기 입원치료 중이었는데 나중에 ABJ의 내연녀가 된 JMS는 그 환자의 아내였다.
남편이 둘 다 폐암 환자인 데다 동향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엄마와 JMS는 병원 생활동안 빠르게 친해졌고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ABJ는 퇴원을 하고, 옆 침대에 누워있던 아저씨는 끝내 돌아가시는 바람에 JMS는 과부가 됐다.
어디서 어떻게 ABJ와 JMS의 추악한 사랑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인생 최초로 수술이라는 큰 일을 겪어서 미쳐버린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인지,
ABJ는 그림에 그린 듯한 난봉꾼이 되었다.
몰래 훔쳐본 ABJ와 JMS가 주고받은 핸드폰 문자내역을 지금도 기억한다.
“자기, 너무 사랑해. 건강 잘 챙기고. 내 마지막 사랑 보고 싶어.”
“나는 너밖에 없어. 내 인생에서 여자는 너뿐이야. “
“우리가 같이 살려면 와이프 몰래 지금부터 한 달에 100만 원씩 꾸준히 챙겨둬. 재산도 조금씩 옮겨놓고.”
“점심 먹었어? 돈 걱정하지 말고 좋은 것 먹어. 방금 돈 부쳤으니 확인해봐.“
내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살가운 말이 오고 간 문자내역을 보면서 나는 어쩐지 화가 나기보다는 그냥 슬펐던 것 같다.
그냥 눈물이 났다.
내연녀와 따로 살림을 차리기 위해, 그리고 그 알량한 사랑놀음을 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느라
ABJ는 경제권을 쥐고 있던 엄마에게 돈을 요구했고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폭언과 폭행을 가하다가 결국에는 전치 16주의 상해와 형사 판결문을 남겼다.
쇠파이프로 엄마의 코뼈와 광대뼈를 산산조각 낸 그날도 ABJ는 JMS와 불같은 사랑을 했다는 것은 나중에 흥신소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평생을 전업주부로 산 어리숙한 엄마는 불륜 현장을 잡기 위해,
택시를 전세 내어 그 둘을 뒤쫓기도 하고,
나와 내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네이트온의 ‘위치 찾기’ 서비스를 통해 - 2000년대 초반은 위치추적용 애플리케이션이 아직 활성화되기 전이라서, 흥신소를 통하지 않고서는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 실시간 ABJ의 위치를 추적하였으나 두리뭉실한 주소만 알 수 있는 탓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JMS의 집주소를 알아낸 엄마는
JMS에게 ABJ와의 관계를 정리해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나와 함께 그 집에 갔다.
4층 빌라 중 3층에 있던 그 집에서 JMS가 아닌 고등학생인 아들이 나왔고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로 어질러진 집구석을 들여다본 엄마는 안에서 할 얘기가 아니라 생각했던지 그집 밖 한적한 도로의 벤치에서 그 아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ABJ와 JMS가 관계를 정리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껄렁한 그 아들내미는 이미 ABJ를 여러 차례 봐서 익숙한 듯,
“나도 우리 엄마가 그 아저씨 만나는 것이 싫다. 너무 못생기지 않았나. 우리 아빠는 잘생겼었는데.”
“그 아저씨가 그렇게 돈 주니까 우리 엄마도 어쩔 수 없는 게 아니겠냐”라고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도 알지 못한 사이에 그 아들내미가 약삭빠르게 집을 나서기 전에 이미 경찰에 신고한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출동한 경찰에 의해 그 자리는 해산되었다.
엄마와 내가 ‘ABJ가 불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 번 더 하기 전에.
그러다 결국 이혼 결심을 굳힌 엄마는 흥신소에 불륜 현장을 급습해 줄 것을 정식 의뢰하였고,
유능한 흥신소 직원들은 불과 1주일 만에 불륜 현장을 잡아 경찰관을 대동하고 급습하는 데 성공했다.
전해 듣기로는 우리 집에서 약 10여분 떨어져 있는 ”ㅇㅅ장“여관에서, 바지만 겨우 걸친 ABJ와 침대시트로 몸을 가린 JMS가 경찰관을 맞이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간통죄가 위헌으로 판단되기 전이라, 정식으로 경찰서에 사건 접수가 되었고
집행유예 기간 중이던 ABJ는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어쨌는지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동네에 있던 병원에 입원했다.
그래도 남편이라고, 아직 전치 16주 상해에서 회복하지 못한 엄마는 당시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와 있던 나의 손에 ABJ의 옷가지와 필요한 것들을 들려 그 병실로 보냈다.
정말 죽을 정도로 싫은 심부름이었지만, 내가 아니면 내 동생들이 해야 하기 때문에 꾸역꾸역 그 병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맞이한 것은,
ABJ의 곁에 착 달라붙어 본처 행세하고 있던 JMS와 그 병간호를 흡족하게 받으며 누워있던 ABJ였다.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적당한 인사말을 건네고 자리를 피하려고 했는데 본디 첩들은 그 태생을 숨기지 못하는 듯 내 성질을 긁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순식간이었다.
그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았고,
젖 먹던 힘까지 내어서,
악에 받쳐서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물론 그 여자도 내 머리채를 잡고 나에게 주먹다짐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 쓰고 있던 내 도수 높은 안경이 날아가고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났지만
아직도 더 때려주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는다.
도둑질도 해 본 사람이 잘하듯,
평생 처음 해 본 몸싸움에 어디를 어떻게 때려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던 것이 아직도 한이다.
배를 발로 차주어야 했는데,
우리 엄마가 당했던 것처럼 그 여자의 코뼈와 광대뼈를 제대로 으스러뜨려야 했는데.
그렇게 마구잡이로 몸싸움을 하면서,
적어도 그 병원에서,
그 XX들이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하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디 불륜녀 주제에 본처 행세를 하느냐고.
불륜녀랑 놀아나느라 처자식 다 내팽개치고 본처 두드려 패 놓고 여기에 누워있을 생각을 하느냐고.
하늘이 두렵지 않냐고.
사실 병실 문을 열기 전에, ABJ의 꾀병이 아닐까 생각도 하긴 했는데
진짜 아프기는 했던지 ABJ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대신 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 같은 게 감히 자식이냐, 애비 앞에서 이런 행패를 부리는 자식도 있다더냐. 다 필요없으니까 썩 꺼져.'
그리고 나에게 쏟아지는 온갖 욕설들.
서럽고, 분하고, 억울해서 기어코 나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이제 엄마랑 나랑 내동생들 안보고 이년이랑 평생 살거냐고.
그리고 ABJ는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니 엄마는 물론 이제부터 너랑 니 동생들은 내 자식이 아니니까 꺼져버려.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나면 다 모가지를 따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