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상담(2)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

by 고장난시계

호기롭게 나선 것과 달리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려니 목이 메인다.

상담사는 9년간의 왕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묘사해 달라고 했다.

9년이라는 무척 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어느 한 순간이 머릿속에서 팍 하고 튀어올랐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날의 공기, 그날의 온도 모든 것이 어제일 처럼 선명한데.


중학교 3학년이 된 후 첫 윤리시간이었다.


샛노란 병아리가 그려진 공책에 나는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신대로 충실하게 ’학교생활 하면서 가장 속상했던 순간‘에 대해서 줄줄 써내려갔다.


내 옆에 앉은 윤수미가 내가 쓰고 있는 것을 훔쳐보고 있는지도 모른채.


숙제를 다 하고 화장실에 다녀온 나는, 내 노란색 공책이 전교짱(요즘도 이런 말을 쓰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일진을 전교짱이라고 불렀다)인 나은지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흠칫했다.

1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수 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같이 몰려다니는 일진 무리에 둘러쌓인 채 창가에 걸터앉은 나은지는, 이제 막 교실문으로 들어온 내게 비아냥거렸다.

내 허락도 없이 내 공책을 손에 쥔 채.

“야, 너 이렇게 거짓말을 니 마음대로 써도 되냐. 얘가 언제 널 괴롭혔어.”


내 공책에 내가 어떤 글을 쓰던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내 허락도 없이 내 공책을 훔쳐보고 몰래 가져간 것부터가 잘못이지 않냐는 생각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다.


거짓말이 아닌데.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무렵 이미 6년간 왕따로 산 나는, 윤수미로 인해서 내 왕따 생활이 더욱 힘들어졌던 순간을 기억한다.


윤수미가 원래 그렇게 악독한 아이였는지, 아니면 그냥 재미로 시작한 일에 다른 아이들이 가담하면서 내 왕따 생활이 더욱 가혹해 진것인지 모르겠지만,

윤수미는 나에 대한 있지도 않은 험담을 퍼뜨렸고 이미 왕따였던 내가 더욱 고립되자 나를 괴롭히는데 더욱 기세를 올렸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흘겨보며 수근대거나,

재미난 놀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책상에 앉아있던 복도를 걸어가던 일부러 나에게 와 부딪히거나 - 그리고 큰 소리로 외친다. ”XX랑 부딪혔으니 이제 에이즈 걸림!”

짝지어 하는 체육수업때 한 조가 3명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결단코 나와 짝이 되지 않거나.


그래도 웃긴 것은, 그렇게 에이즈 취급을 하고 병균 취급했으면서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난 후 아직 정답이 발표되기 전에

반에서 1등인 내가 어떤 답을 적어냈는지 알고 싶어 안달이었다는 것이다.


아, 머리 아프고 귀찮은 수행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조별과제를 할 때도 나와 짝이 되고 싶어했다.


그때 그 중학교 3학년 교실에 머물러 있는 내게, 상담사가 현실로 돌아오라는 것처럼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사실 전교짱인 나은지를 앞에 두고 내가 그때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무섭고, 혼란스러웠으니까.

그 감정만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다만,

그 이후로 나는 그 어떠한 종이에도 내가 겪고 있는, 내가 겪었던 왕따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누구든 윤수미처럼 훔쳐보고 나은지 같은 아이들에게 달려가 일러바쳐 나를 더욱 힘들게 할 수 있었으니까.


그때 이후로 더욱 필사적이었다.

나는 에이즈가 아니고, 나는 병균이 아니고, 나는 왕따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상담사는 다시 조용히 물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담임선생님도 XX님이 왕따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정말 몰랐을 거에요. 제가 공부를 잘 하는 한, 아무일 없이 계속 학교에 나오는 한, 그 어떤 선생님도 몰랐을 거에요. 제가 말한 적도 없으니까.‘

그리고 또 덧붙였다.

‘저희 엄마도 몰랐으니까요.’


그때 내가 적극적으로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청했더라면, 엄마에게라도 내가 왕따라고 말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에 다니는 동안 만났던 선생님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지식이 손톱만큼도 존재하지 않은 실망스러운 존재들이였고,

엄마는 눈 앞에 있는 ABJ와 그 부속품(친척들)이라는 큰 산을 24시간 마주하고 있는 터라 본인의 스트레스 조차 감당하기 힘들어 했으니까.


그래서 그때 일기장에조차 남기지 못했던 기억들을 지금에야 익명이라는 가면에 숨어서 조심스레 남겨본다.


그때 그 아이들의 실명으로.

아주 나중에라도 이 글을 보고 그때 나에게 한 일들을 떠올리며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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