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상담

경계와 거리

by 고장난시계

어떤 존재를, 어떤 개념을 명명화하는 것은 중요하다.

단골 수능문제로 등장하는 어느 유명한 시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듯이

내가 어떻게 이름을 짓느냐에 따라서 내가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결정된다.


40년 치 트라우마가 가득한 내 과거를 파헤치면서 상담사는 계속해서 강조했다.

그 험난한 시간을 뚫고, 헤쳐 나온 자신의 힘을 믿으라고.

졸업장을 취득하고,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한 단편적인 성취가 아니라 그 성취를 얻기까지 애써왔던 나 자신의 힘을 믿으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쉽지 않다.

오랜 습관처럼 나는 명확히 눈에 보이는 단편적인 졸업장과 국가고시 합격증과 번듯한 회사 이름이 적힌 명함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를 두른다.

이것들을 얻기까지 고군분투했던 기억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는 고3으로서, 고시생으로서, 취준생으로서의 삶이 힘겨웠다고 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꽤 괜찮았다.


뚜렷한 목표가 정해져 있는 삶은 모든 시간과 자원들을 오로지 한곳에 집중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왕따로서의 괴로움도, 폭언과 폭행으로 인한 고통에서도 잠시나마 눈을 돌릴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부어 얻어낸 목표는 나에게 달콤한 자유를 선사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입학에 성공하면서 합법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고시에 합격하면서 부모와 점차 감정적 거리를 둘 수 있었으며,

취직에 성공하면서 부모와의 완전한 절연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처지에 있던 여동생의 탈출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부모를, 내가 겪어온 과거를 두려워하고 수치스러워하는 나에게 상담사는 왜 아직도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아, 이 얼마나 적절한 질문인가.

한 번도 이유를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생각을 가다듬는 과정에서 점점 명료해진다.

나의 근원적인 트라우마인 부모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것은 분명한데,
이것이 아직도 나의 약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부모와 내가 겪은 과거가 두렵고 수치스럽다.


나의 대답에, 나의 현명한 상담사께서 내 대답을 정정해 주었다.

‘멀리 떨어진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와 그 과거는 다른 차원에 있다.’라고.

나의 부모와 나의 과거 그리고 현재의 나 사이에는 분명하고 확실한 경계가 있노라고.


경계의 가장 근본적인 기능은 구분을 짓는 것에 있다.

이것과 저것은 서로 다른 것이니까 함부로 침범하지 않도록, 섣불리 섞이지 않도록.

경계 너머에 있는 나의 부모와 내 과거들은 현실의 내가 만들어 놓은 경계를 넘어오지 못한다. 그러니 현재 나의 약점이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정말 명쾌한 논리였다.


단순히 거리가 멀어져 있다고 한다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좁힐 수 있겠지만,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그보다 어렵고 힘든 법이다.

나의 부모와 나의 과거가 경계 너머에 있다는 이야기에 조금은 안심이 된다.

예전처럼 극도로 경계하며 나를 지키기 위해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나의 더럽고 추악한 부모와 과거는 경계 너머에 있다. 그리고 그것들과 나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있다.

그것들과 현재의 나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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