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고마웠어.
40년을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9년을 왕따로 사는 동안 늘 죽고 싶은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옛말에도 ‘쥐구멍에 볕 들 날이 있다’고 했듯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칠흑같이 어두운 나에게도 찰나의 햇볕 같은 존재들이 있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는 자신을 조용히 도와주는 최수연을 ‘봄날의 햇살’이라고 했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을 손에 잡히지도 않는 햇살 따위에 치부할 수는 없다.
그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살아남았으니까.
그들은 누가 뭐래도 나의 구원자다.
과거로부터 도망치느라 급급해서, 집에서 탈출하는 데에만 몰두해서 모든 연락처를 바꾸고 차단한 까닭에 그 친구들과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이 너무 아쉽다.
제대로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는데.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마음으로나마 간절히 기원한다.
세상의 모든 "경희, 정실, 은미"에게 좋은 일만 있기를.
그 어떤 불운도 피해 가고 그녀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은 모두 이루어지고 그녀들 곁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만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어.
H.O.T. 희준 오빠의 열혈팬이었던 경희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나와 다른 중학교를 나왔지만, 그래도 다른 아이들이 그렇듯 경희도 내가 유명한 왕따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나와 같은 중학교를 나온, 나를 왕따 시키는데 자의든 타의든 동참한 많은 아이들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니까.
그리고 우리 반에도 몇 명이나 있어 여전히 나를 병균이나 에이즈 취급하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 마음이 넓고 다부진 아이는 우연히 교실에서 앞뒤로 앉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살갑게 챙겼다.
경희를 만난 후, 거진 6년 만에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이 두렵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혼자 꾸역꾸역 밥을 먹지 않아도 되었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나도 수다를 떨 친구가 있었다.
오랜만에 생긴 친구라, 내 교우관계 수준은 초등학생 수준에 머물러 있어 어색하고 내가 느끼기에도 서툴기 짝이 없었지만 경희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점심시간과 저녁시간마다 나를 챙기고, 체육시간에 나와 짝이 되어 주고 그리고 늘 두려웠던 수학여행 때 나를 같은 조에 넣어주었다.
모두가 그녀와 같은 조가 되고 싶어 했음에도.
경희는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는 조별 준비물 - 부루스타는 무거운 데다 음식과 달리 수학여행지에 가져오고 다시 집으로 가져가야 했기 때문에 모두들 싫어했다 -을 자진해서 담당하고,
누구 하나 동떨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챙겼으며, 그 와중에도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카메라를 가져와 연신 셔터를 터뜨렸다.
그리고 그녀의 이런 다정함은 모두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것임이 틀림없다.
택시기사를 하는 그녀의 아버지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딸을 위해 택시를 몰고 학교까지 데려다주었고 수학여행을 마친 후에는 언제 올지 모르는 딸을 교문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살갑게 반겨주었다.
자연스레 경희의 짐을 대신 들어주는 그녀의 아버지를 보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아버지 같아서 경희를 태워 사라지는 택시의 뒷 꽁무니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경희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수학여행에서 맘 편히 웃고 즐겼다. 텐트에서 자는 것도 재밌었고 냄비로 직접 밥을 짓는 것도 너무 즐거웠다.
비록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술에 취한 ABJ에 의해 식탁다리가 부러져 떠나는 날 아침을 굶었더라도.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학년이 바뀌어 반이 달라질 때까지 그녀에게 끝내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
고된 왕따생활을 버텨내느라, 살아남기 급급해서 의식적으로 억눌러 놓았던 감정이 소중한 친구에게 솔직한 감사인사도 전달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상하게도 학년이 달라진 후, 그녀를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만나지 못할 줄 몰랐다.
내가 그때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졸업하기 전에 경희네 반에 찾아가 고맙다고 말이라도 해봤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생활이 마치 꿈이라도 꾼 것처럼, 고등학교 2학년으로 보낸 일 년은 더 없이 가혹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