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고마웠어.
전쟁 같은 고등학교 2학년 생활이 드디어 끝나고,
너덜너덜 해진 마음으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그냥 모든 게 귀찮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굳이 이렇게 버틸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에 모든 게 싫었다.
다른 애들이 다 병균이라고, 에이즈라고, 병신이라고 하니 그냥 병균처럼, 에이즈처럼, 병신처럼 살면 되지 않나 싶었다.
병균처럼, 에이즈처럼, 병신처럼 사는 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런 너덜한 나를 주워서 찢어진 데를 꿰매고 구겨진 곳을 말끔히 펴준 사람이 정실이다.
나와 달리 키가 크고, 가슴도 풍만한 육감적인 몸매의 소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름처럼 매우 정숙하고 순진하면서 경희처럼 마음이 단단한 아이였다.
교실에서 정실이의 자리가 바로 나의 뒷자리라는 의미는,
더 이상 수업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지우개 가루를 뭉쳐 던지는 덩어리들에 맞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고,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다른 아이들의 비아냥을 못 들은 척하며 꾸역꾸역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정실이 덕분에 나는 나의 유일한 재능이자 무기인 공부도 마음 편히 할 수 있었다.
내가 졸업한 지방의 여고는,
각종 시험을 치를 때마다 전교 1등부터 60등까지의 이름을 붓글씨 - 심지어 세로 쓰기였다 -로 적어 전교생이 드나드는 중앙 현관 앞에 붙이는 전통(?)이 있었고,
그 1등부터 60등을 야간자율 학습시간에 별도의 교실- 사실 교실이라고 하기에는 열악했다. 바람도 통하지 않는 컨테이너 건물이었으니까 -로 몰아넣은 다음 등수대로 자리를 앉히는 희한한 관습이 있었다.
‘똘똘이반’이라고 불렸던 그 더럽고 춥고 더운 교실에 입성하는 것이 누구에게는 목표이자 소망이었겠지만,
나는 그 이상한 곳보다 정실이가 내 뒤에 앉아있는 본래의 교실이 더 좋았다.
공부도 더 잘되었고.
정실이를 만나기 전, 고등학교 2학년때의 시간이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나를 왕따 시켰던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은 영어를 담당한 김준식 선생님-이런 사람이 선생님이라고 불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으로 기이하고 천박한 언행으로 나를 비롯해 여러 학생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정년이 2년밖에 안 남아서 이제 퇴직하면 퇴직금으로 노는 일밖에 안 남았다며 떠들고 다녔던 김준식은,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퇴직하기 전부터 학교에서 놀았다.
뭐,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어 대학입시에 중요한 학생의 생활기록부에 “사뿐사뿐 걸어 다님” 단 1줄을 남기는 일 따위야 너무 많았고,
가정환경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모든 학생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엄마나 아빠 한 명만 있는 사람 손 들어봐 “라고 말하는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더욱 최악은,
모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차마 손을 들지 못한 한 부모 가정의 아이에게 “너는 왜 손 안 들어? 너 엄마만 있잖아.”라며 공개적으로 상처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그 일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안 좋은 쪽으로 빠졌다고 들었다.
그때만 해도 교사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 때라 감히 선생님에게 반항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스트레스 풀 곳이 없었던 아이들은 가장 만만하고, 괴롭혀도 뒤탈이 날 것 같지 않은 나를 욕하고 괴롭히며 상처받은 마음을 풀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전부 나를 따돌리니 자신 하나쯤이야 더 한다고 해도 그 죄책감은 1/n이 될 테니 부담도 없었을 것이다.
줄곧 1등을 도맡아 하는 나를 시기하는 마음도 있었을 테고.
그렇게 모든 아이들의 샌드백으로 1년을 보내고 나니, 고슴도치처럼 뾰족뾰족해진 내가 남았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가시를 곤두세웠지만, 그 가시는 나를 찌르기도 했다.
가시에 찔린 상처는 낫기는커녕 곪아만 갔고 고3으로 진학할 무렵에는 지치고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서 그냥 나를 놓아버리고자 했다.
그럼에도 정실이는,
본인도 고3이라 입시 때문에 힘 겨울텐데도 늘 나를 챙겼다.
그 아이의 살가움과 다정함은 매우 자연스럽고 몸에 딱 맞는 비싼 잠옷처럼 보드라워서 조금씩 조금씩 내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정실이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진다.
정실이도 경희처럼 내가 왕따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세심하고 사려 깊은 그녀는 그 사실을 티 내지 않으려 애썼는데, 그럼에도 때때로 밖으로 표시가 나곤 했다.
하긴 전교생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을 숨길 수 있을 리가.
나와 달리 친구도 많고, 인기도 많은 정실이는 어쩌다 다른 반 친구들과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먹어야 될 일이 생기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번번이 거절했다.
나에게는 ‘다른 일정이랑 겹쳐서,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 거절했어’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안다.
정실이는 자신이 없으면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나를 걱정해서,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을 거절했다는 것을.
사실 정실이가 다른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는 했다.
‘정실이가 다른 반 친구랑 밥 같이 먹으면 나는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삐-하는 이명이 울렸다.
다른 사람을 잘 살피는 정실이는 나의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알았던 거겠지.
그러니 1년 내내 나와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어주었을 것이다.
그녀 덕분에 힘겨운 고3생활을, 고단한 내 인생을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미련하고 둔하고 부족했던 그때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녀에게 아무런 고마움도 표현하지 못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정실이가 내게 해준 것을 생각하면 그깟 말 한마디로 어떻게 될 일도 아닌데.
언젠가 아주 늦게라도 정실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가 내게 해 준 것들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나를 어떻게 살게 해 준 것인지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