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상담

친구의 정의

by 고장난시계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왕따로 살게 되면, 교우관계에 대한 이해나 능력은 초등학교 3학년의 수준에 멈춘다.

친구를 사귀는 능력 자체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쳐 형성되는 것이기에, 그런 기회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성장과정에 맞는 친구에 대한 인식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내게 친구란,

화장실도 같이 가고, 밥도 같이 먹고, 집에도 같이 가고 그리고 여행도 같이 가는,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어야만 친구다.


서로에게 절대적인 그런 친구.


각자의 가정을 갖는 것이 당연한 마흔 살의 나이에 친구에 대한 나의 이런 생각이 이상하다는 것을, 상담을 받기 전까지 몰랐다.

그냥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좀 서툴구나,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잘 모르는구나. 오랫동안 왕따였으니까 어쩔 수 없지‘하고 넘겼던 문제는 사실 다른 곳에 원인이 있었다.


나의 현명한 상담사는 친구의 정의를 새롭게 제시해 주었다.


사람은 저마다 경계가 뚜렷한 하나의 원이라서,
자신의 원과 접하는 부분이 있다면 친구가 된다고.

두 개의 원이 만나 접하는 점을 통해,

‘떡볶이만 같이 먹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여행만 같이 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으며

’같이 사는 친구‘도 될 수 있지만,

두 개의 원이 온전하게 하나로 겹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고 생각하는 친구란 나와 온전하게 겹쳐지는 이상적인 친구라고.


나와 온전히 겹쳐져야만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조금이라도 안 맞는 부분을 발견했다면 곧바로 친구리스트에서 삭제했을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담사 말이 맞았다.

나의 대인관계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흑과 백으로 나뉘듯 친구와 친구가 아닌 자로 뚜렷하게 나뉜다.

다시 말해 나는 오로지 친구와만 밥을 먹고, 생일을 챙기고, 사적인 시간을 보냈을 뿐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밥을 먹거나 생일을 챙기거나 사생활을 공유한 적이 매우 드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도, 밥만 같이 먹기에 즐거운 사람, 생일선물을 보낼 만큼 중요한 사람 또는 영화나 연극 같이 취미를 공유할 만한 사람이 있었을 텐데.

혹은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도 밥을 같이 먹기에는 불편한 사람, 생일선물을 줄 필요가 없었던 사람 또는 취미나 취향이 맞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었을 텐데.

날카로운 깨달음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든다.

이런 대인관계는 어떻게 지금까지 가능했던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간극들을 나는 그동안 어떻게 메워왔던가.


정답은 나의 가계부에 있었다.

내가 지출하는 항목들을 들여다보면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비용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비용이 월등히 많았다.

생일선물부터 시작해서 소소하지만 꽤 빈번하게 챙기는 선물들까지.

밥이나 커피를 사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친구에게 지출하는 비용은 한 달 생활비를 훨씬 뛰어넘었다.

이것은 분명 옳지 않다.


누구나 자신에게 후한 친구에게는 너그러운 법이다.

나의 친구들은 나와 분명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나를 위해서 분명 맞춰줬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애써 무시하려 했거나.

친구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교우관계에 대한 이해가 성숙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사람은 죽을 때까지 친구를 만든다.

마흔 살의 내가 여전히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처럼.


지난날 놓쳐버렸던 친구들이 애석하나, 어쩔 수 없다. 과거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지금의 나는 여전히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다.


떡볶이만 같이 먹을 수 있는 친구, 목욕탕만 같이 갈 수 있는 친구 또는 여행만 같이 갈 수 있는 친구와 같이 다양한 접점을 가진 많은 친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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