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은 언제나 떼로 몰려다닌다(5)

한 가지만 나쁘기만은 쉽지 않다(5)

by 고장난시계

다른 집들 보면, 집안 전체가 병신이라고 하더라도 그중에 한 명쯤은 괜찮은 사람이 있던데 ABJ의 형제들은 그 법칙도 피해 가는 것 같다.


다소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4남매 모두가 병신인 것을 보니.


한때 막내 작은 아버지를 좋아하고 따른 적이 있다. 어리석었던 우리 삼 남매.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4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사람이었고,

ABJ나 둘째 작은 아버지 또는 고모나 할머니와 달리 외모만 보면 매우 유순하게 보이던 사람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친척들과 달리

다른 지방에 살고 있는 터라 자주 만나지 못해 더욱 호감을 가진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더욱 무서운 법이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는 등 글로벌 경제위기가 불어닥쳤을 때, 은행원이었던 그는 명예퇴직을 했다. 아직 그의 두 딸이 초등학생이었을 무렵이었다.


연고도 없는 동네에서 재취업을 하느니, ABJ를 의지삼아 - 정확하게는 빌붙기 위해, 우리 집이 있던 동네로 이사를 왔다.

걸어서 딱 3분 걸리는 거리에.


그는 할머니의 부양을 조건으로 ABJ가 할머니에게 노후 비용 삼아 준 패물과 쌈짓돈을 탈탈 털어서 우리 동네에서 제일 좋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왔다.


그리고 그의 진짜 얼굴은 그때부터 드러났다.

고3인 내가 학교와 집만 반복하느라 - 우리 자매는 그 어떠한 종류의 사교육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의 학구열이 그다지 높은 동네였기에, 내가 1등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 파김치가 되어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자식들의 과외를 당당히 요구했을 정도니까.


물론 과외비도 없이 그냥 친척이니까 공짜로 해달라는 얘기였다.


내가 고3일 때에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나가는 것이 당연했고, 아침 7시 20분에 등교해 오후 11시까지 야간자율(강제) 학습을 했으며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거진 12시 정도 되었다.

이런 고3에게 언제 두 딸들의 과외를 해달라는 건지.


그러나 이런 뻔뻔함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고작 3분 거리에 아지트가 생긴 ABJ는 술에 만취해 집에서 폭언과 폭행을 한 껏 퍼붓고 난 후,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 엄마와 우는 자식들을 피해 번번이 그곳으로 도망쳤다.

동생네 집이라는 알량한 핑계로.


물론 막내 작은 아버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동생네 집이라는 알량한 핑계로 도망친 형에게 공짜로 아지트를 제공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도망친 후 더 이상 아지트에 머물 수 없게 될 순간이 오면, ABJ는 슬그머니 다시 집에 얼굴을 비추고 자신에게 냉랭한 자식들을 향해 하소연을 쏟아냈다.


‘작은 아버지 집에 가면,

언제 그 집에 가던 제수씨가 밥 먹었는지 살뜰하게 물어봐주고 OO(사촌동생)이가 큰 아빠 왔냐고 얼마나 반겨주는지 아냐고.

그래서 기분 좋아 그 손에 몇 십만 원씩 쥐어줬다고‘


아, 나도 품도 들지 않는 말 몇 마디로 손에 몇 십만 원을 쥘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본인 자식이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쥐어짜, 어버이날마다 달아준 카네이션과 생일날마다 마련한 선물과 수학여행이나 소풍에서 사 온 선물은 공짜로 받으면서,

그것뿐이랴 본인의 기분에 따라 아내와 자식들을 마구잡이로 후드려 패면서

불과 며칠 전에도 본인이 후드려 팬 자식에게 그런 살가운 인사를 바란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벌써 치매인가.


가슴이 봉긋한 고3인 딸이 지하상가에서 떨이로 파는 4개 8,000원짜리 브래지어를 살 돈이 없어서, 낡은 브래지어의 철사가 밖으로 삐져나와 여린 살을 긁어 가슴 한가득 생채기가 잔뜩 나 있었는데도,


철마다 구두를 살 돈이 없어 - 내가 다닌 여고에는 쓰레기 같은 규칙이 있었는데, 그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구두만을 신게 했다- 3년 내내 똑같은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몇 십만 원을 쥐어준 것을 자랑스레 얘기하는 ABJ는 치매임이 틀림없다.

아님 정신병자거나.


적어도 일주일에 1번은 아지트를 찾을 만한 부부싸움이 벌어졌으니, 아마 막내 작은 아버지는 우리 동네로 이사 온 후부터 짭짤한 부수입을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ABJ의 돈 맛을 봤겠지.


ABJ가 엄마를 쇠파이프로 폭행하고 형사 판결문까지 나왔을 때, 드디어 우리 집에서 이혼얘기가 나왔다.

그동안 우리 자매가 그렇게 이혼을 얘기했음에도 형사사건의 판결문을 받고서야 그리고 불륜녀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이혼이라는 주제가 물망에 올랐다.


평소 치매환자 내지 정신병자로 의심되었던 ABJ는 본격적으로 이혼얘기가 나오자 매우 약삭빠르게 움직였다.

월급이 입금되던 통장을 엄마가 사용하지 못하게 막내 작은 아버지 명의의 통장으로 옮겼고, 그동안 이리저리 꿍쳐두었던 비상금들을 모두 막내 작은 아버지에게 맡겼다.

그리고 이혼 도장을 찍으라고 요구하는 엄마를 피해, 내연녀와 여기저기 유명 관광지의 모텔을 전전하며 즐거운 생활을 만끽했다.


이혼 얘기가 나온 후부터, 결국 이혼이 성립될 때까지 지지부진한 과정이 무려 2년 넘게 계속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시집와 반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았던 엄마는,

살림의 원천이자 삼 남매를 먹이고 입힐 원천인 ABJ의 월급이 사라지자

적어도 부모로서의 도리는 다하라고 ABJ를 백방으로 쫓아다녔지만 나중에 흥신소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 ABJ를 찾지 못했다.


ABJ의 행방을 찾기 위해, 엄마는 물론

내 여동생도 고작 3분 거리에 있던 막내 작은 아버지의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다.


그때마다 그는 그 특유의 유순한 얼굴로, 형님이 어디 있는지 정말 모른다고 답했다.

그리고 난생처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본인의 형수님에게 또 그 유순한 얼굴로,

‘나도 재취업을 못해 명예퇴직 때 받은 돈으로 겨우 먹고살고 있다‘며 우는 소리를 했다.


다시 말하지만, ABJ의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통장의 명의인은 작은 아버지였고, ABJ가 꿍쳐둔 비상금은 그의 손 안에 있었다.


고모가 등록금까지 갈취해 간 탓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는 각종 아르바이트와 과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느라 고군분투 중이었고,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환경 속에서 고3으로 지냈던 마음 여린 내 여동생은 삼수에까지 이르렀다.

아니 삼수라고 하기에는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주구장창 TV만 보고 있었으니까 병들어 있었다는 게 맞다.


가끔 집에 갈 때마다 보던 여동생의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이 지금도 가슴프게 남아있다.


돈이 없으니까, 외가 친척으로부터 빌린 알량한 돈과 그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최소한의 생활만 하느라 지쳐 있던 모습.

냉장고가 텅 비어 삼시세끼 내내 열무김치에 밥을 비벼 먹느라 시들어버린 내 동생은 그렇게 어느 때보다 예쁘고 생기발랄해야 했던 소중한 20대 초반을 집에서 날렸다.


내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었더라면, 아니 경제적 능력이라도 있었더라면 내 동생의 그런 시간을 단축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지금도 한으로 남는다.


그나마 집안의 유일한 남자로서 대를 이을 장손이었던 내 막냇동생은,

ABJ가 마련해 준 알량한 자취집에 따로나와 살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 남자라는 이유로 우리와 같은 고생을 하지 않았던 남동생이 얄밉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나마 엄마와 내 여동생의 부담을 덜고 그래도 자식 하나라도 고생을 덜 한 것이 누나로서 다행이지 않나 싶다.


없는 형편에 입 하나 던 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결국 그렇게 바라던 이혼이 성립되었고, 드디어 ABJ와 그 지긋지긋한 친척들과 남남이 되었다.

가족관계등록부를 떼면 여전히 ABJ의 이름이 버젓이 남아있다는 것이 화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그 지긋지긋한 덩어리들과 한 발짝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피로 엮인 관계는 염치도 없이 지긋지긋하게 끈질긴 법이다.

약 2년간에 걸친 이혼 과정에서, 아니 그보다 오랫동안 유일하게 막대한 경제적 이익 - 누가 보면 푼돈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돈이 없어 오랫동안 삼시세끼 열무김치만으로 끼니를 떼워야했던 우리 집 사정으로서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 틀림없다 -을 누린 막내 작은 아버지는 우리 부모의 이혼에도 불구하고,

아니 내가 부모와 절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년퇴직하여 이제는 단물 빠진 ABJ를 대신해 나에게 빌붙으려 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서울에서 유명한 대학을 나와 국가고시까지 합격한 나는

남들 앞에 내세우기 좋은 간판이었고,

여차하면 도움을 받을 생각으로,

자기 딸 결혼식에 나를 참석시켜 자기 체면을 세울 요량으로 오랫동안 내가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집요하게 캐고 다녔다고 한다.


소름이 돋는다.

그나마 나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은 것은,

내가 우리 부모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연락처를 바꾸고 이사를 다녔기 때문이겠지.

아니면 예전의 순진한 내가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지.


직접 나에게 연락을 하거나 찾아왔다면, 아마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


이런 그의 막내딸이 20세의 어린나이에 재발한 백혈병으로 죽었다는 것은, 이 세상에 그래도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몇 마디 얄팍한 말로 몇 십만 원을 손에 쥐었던 그 돈은 아마 부의금으로 하고도 충분히 남겠지.
모든 것은 인과응보다.
이전 18화그래도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