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상담

내 노력들의 의미

by 고장난시계

나의 상담은 상담사의 늘 똑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지난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어떻게 보내셨나요?”


가족도 아닌데 늘 나의 안위와 상태를 물어보는 질문은 왠지 모르게 좀 기껍다.

말에서 다정함이 묻어난다고 할까.


요즘 나의 주말은 도파민에 흠뻑 절여져서 하릴없이 흘러가고 있기에 사실대로 말하기가 조금 부끄럽다.


뭔가 좀 의미 있는 것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하다 못해 휴식이라도 제대로 취해야 할 것 같은데 유튜브에 올라오는 쓸데없는 영상들을 눈이 빠지게 보느라 시간을 탕진하고 있다.

TV중독자임을 잘 알기에 집에 TV도 설치하지 않아 놓고, 정작 휴대폰의 작은 화면에 빠져 12시간씩, 14시간씩 밤늦게까지 아무 의미 없는 온갖 영상들을 보는 게 나의 요즘 주말 패턴이다.

친구에게도 가장 가까운 여동생에게도 절대 말하지 못하는 이 부끄러움을 나는 상담사에게만은 털어놓았다.


다정한 나의 상담사는 그런 나를 위로했다.


“쓸데 없이 시간을 탕진하는 것이 아니라, 한주 동안 바빴던 내가 휴식을 취하는 새로운 방법인 거죠.
뭔가 다른 것을 하기에는 너무 지쳐서.“


상담사는 나의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나의 조급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늘 뭔가 해야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나 조차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이 제3자의 언어로 명확해지자 그 근원이 궁금해졌다.


상담사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조금 힘을 주어 답을 제시했다.

“XX님은 마음이 뜨거운 사람이라서,
자신을 보호하고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온 게 아닐까 싶어요.“


잘 이해가 안 되는 나를 위해 상담사는 설명을 덧붙였다.


‘XX님이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가고, 국가고시 합격에 그렇게 맹목적으로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통해서 XX님이 안전해지길 바랐던 것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아버지가, 자식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엄마가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가족들이 달라지지 않으니 실망했을 테고요.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 없으니까,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것으로 안되면 국가고시 합격으로, 국가고시에 합격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으로 계속계속 목표를 설정해서 줄곧 그것에만 매달려 왔던 게 아닐까요'


무의식적으로 부정해 왔던 것을 정곡으로 찔리는 것은 언제나 아프다.

지금은 미움과 분노밖에 남지 않아 인연을 끊은 ABJ와 엄마에게 한때는 나도 조금이나마 기대한 것이 있었다.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면 누구나 내 이름을 알 정도로 공부를 잘하면,

내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좋은 대학에 다니면,

합격률이 극악에 가까운 국가고시 합격자로 내 이름이 신문에 실리면,

내 부모가 그리고 우리 집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기대도 한때 품은 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듯이 전교 1등의 부모들은 공부 잘하는 자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헌신적이었고,

국가고시에 합격한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식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때로는 잘난 자식에게 쩔쩔매는 모습으로 그려졌으니까.


그러나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우리 집에서는 적어도 일주일에 3~4번은 경찰이 출동하는 가정폭력이 횡행했고,

그래서 나는 내 우수한 성적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던 다른 애들이 나에 대해 그리고 우리 가족에 대해 학교에서 뭐라고 말하고 다닐지가 두려웠다.


내가 서울에 소재한 유명한 대학에 다닐 때에도,

ABJ는 자신의 병간호를 한 가족들을 내팽개치고 옆 침대의 보호자와 바람이 나고 엄마를 쇠파이프로 두들겨 팼기에,

나는 술에 취한 ABJ나 얼굴에 멍이 든 엄마가 서울에 있는 나를 찾아올까 두려웠고,

내가 대학 입학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집을 탈출해 있는 동안 동생들, 특히 내 여동생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국가고시에 합격한 후에도,

그 지긋지긋한 가정폭력과 더러운 불륜과 기생충 같은 친척들의 행태는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었기에,

나는 부끄러운 내 부모의 면면을 다른 합격자들 앞에 내놓기 부끄럽고 나 또한 내 부모들과 같은 취급이 될 것이 두려워, 가족들의 참석이 필요한 모든 공식행사에 고아처럼 홀로 참석했다.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이런 것들을 두려워하고 걱정해야 된다는 것이 정말 진절머리 난다.

그러나 극한의 두려움 앞에서, 그 두려움을 갖는 것이 과연 정당 한 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보다 나는 그저 나를 보호하는데 급급했다.


‘나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XX님의 노력과 기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에요. XX님의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을 지키고 그토록 두려워했던 다른 사람들이 XX님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꾼 것은 자기 자신이니까요.’


상담사의 말을 듣고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나는 내가 가정폭력과 왕따의 피해자라고 낙인찍혀 그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너무 두렵다.

정확히는 그 낙인으로 인해 내가 만만한 상대가 되거나 쉽게 폄하의 대상이 되는 것이 두렵다.


9년간 왕따를 당하면서, 나는 면전에서 ’병균‘이나 ‘에이즈‘로 불리거나 혹은 ’냄새가 난다‘며 모욕을 받았을지언정,

단 한 번도 내 부모나 우리 집의 비정상적인 사정과 관련된 모욕을 받은 적이 없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내가 살던 1동짜리 아파트에는 나와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그토록 많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동안 너무 두려워서 마주 보지 못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오랜 기간 왕따였기 때문에, 나와 같은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던 여동생 또한 그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했다.

왕따의 동생도 왕따가 될까봐.

9년간 왕따로 산 내가 그 고통을 내 동생에게 물려준 것은 아닌지 마음을 졸이면서도 단 한 번도 묻지 못했다.

‘학교 생활은 괜찮아? 언니 때문에 친구들이 괴롭히지는 않아?’하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나와 달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살갑게 연락하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는 것을 볼 때 내 여동생은 왕따가 아니었던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그 사실이 어찌나 고맙던지.

내 여동생도, 그 친구들도 진심으로 고맙다.


‘XX님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본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씌워진 프레임을 이미 벗어났어요.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자신을 제대로 보고 이제는 스스로를 잘 챙겨주세요.’


정말 내가 그 프레임에서 벗어난 것일까.

의심을 지울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위안이 된다.

더 이상 그 낙인을 지우고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전처럼 혹독하게 나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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