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남동생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인해 나는 결국 남동생과 올케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더 이상 나에게 그 어떠한 연락도 할 수 없도록.
절연을 선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차단하지 않은 채 최소한의 연락만 주고받았던 이유는 ‘그래도 큰누나로서 여동생과 차별하지 말고 기본 도리는 해야지‘라는 생각과 ’그래도 동생인데 언젠가 관계가 개선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 기대가 더없이 얄팍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 남동생의 작은 허물조차도 감싸주지 못할 정도로 그릇이 크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나의 상처가 내 생각보다 큰 탓인지 그 이유는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순식간에 분노에 휩싸인 나는 더 이상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차단’이라는 물리적 조치를 취했다.
사실, 남동생이 전화한 용건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예전처럼 업무에 대하여 물어본 것도 아니었고, 큰 수고가 필요한 내용을 물어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인터넷에 한 번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는 간단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장 친한 친구가 당한 일인데, 걔가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돈도 없고
나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누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거진 1년 만에 하는 연락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음에도, 단순한 안부전화가 아니라 친구 일로 부탁을 하는 입장인데도 내 남동생의 목소리는 더없이 가벼웠다.
그 아무렇지 않은 태도에 더욱 화가 났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남은 이성을 붙잡고,
'너랑 내가 그런 부탁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는 아니지 않냐.‘ 나아가 ‘네가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할 주제가 된다고 생각해?’라고 쏘아붙이는 대신,
나는 간단히 원하는 대답을 해주고 목소리를 쥐어짜 “고작 네 친구 일로 바쁜 나한테 이런 전화를 하는 것이 싫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이런 일은 네 선에서 끝내라”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남동생은 “미안해”라고 두 어번 중얼거렸지만 나는 어쩐지 진심이 아닌 것 같은 그 사과에 또 화가 났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도무지 화가 가라앉지 않아 다시금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이런 거 나한테 부탁 안 했으면 좋겠다”라는 문자를 보낸 속 좁은 누나에게, 남동생이 “미안 내가 생각 짧았어 이런 걸로 부탁 안할게“라고 답변을 보내왔음에도 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결국 남동생과 올케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약 10분도 안 걸린 일이 내 감정을, 내 자신을 뒤흔든다.
산처럼 높게 쌓여있는 업무들이 나를 재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흡과 감정이 진정되지 않아, 나는 이렇게 백지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고 소리치고 있다.
누가 봐도 별 일 아닌 일에 나는 왜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가.
도대체 왜?
사실 이 일이 있기 전에, 자주 가는 미용실의 원장님으로부터 비슷한 부탁을 받고 흔쾌히 들어준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무려 1시간 반 넘게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아는 범위 내에서 상담을 해주었다. 생판 남한테는 그렇게 했으면서 혈육인 남동생에게는 왜 이렇게 차갑게 대하고 있나.
남동생과 나 사이에 오늘 발생한 짧은 사건은 나에게 있어 독립적이고 단편적인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부모 밑에서 유년기를 같이 보낸 우리 사이에는 남과는 다른, 긴 시간에 걸쳐 쌓아 온 경험과 역사를 바탕으로 정립된 ‘관계’가 있다. 그 관계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단 10분으로 순식간에 분노에 잡아먹힌 나는 결국, 못난 선택을 했다.
평소에는 다 먹지도 못하는 치킨과 불닭볶음면을 한 번에 위장에 쑤셔 넣고 침대에 모로 누운 채 다음날이 밝을 때까지 아무 의미 없는 유튜브 동영상을 계속 봤다. 심근경색이 의심될 정도로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부여잡은 채. 결국 탈이나 새벽 3시에 변기를 붙잡고 억지로 쑤셔 넣은 치킨과 불닭볶음면을 우웩 우웩 토해놓으면서도 나는 분노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그나마 예약된 상담일이 그 다음날이라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나는 상담실에 들어가자마자 속사포로 나를 뒤흔든 일련의 사건들을 상담사에게 토해놓았고, 그리고 도움을 받아 그 사태를 조각조각 내어 냉정하게 마주 볼 수 있었으니까
고작 10분 동안 발생한 일을 단어로 정리하고, 그때의 내가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을 헤집었다.
나를 순식간에 잡아먹은 ‘분노‘는 무엇에 대한 것이었나.
단어로 정리된 감정을 앞에 두고, 나는 그 분노가
아주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무시하는 남동생의 태도와
긴 시간을 핑계로 남동생이 조금이나마 달라졌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나 자신의 한심함과
또다시 이런 일로 흔들리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에서 기인한 것임을 깨달았다.
끝없이 자책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상담사는 말했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통해서 나와 다른 사람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필요해요.
‘아, 저 사람은 그냥 저런 사람이구나’하고 인정하게 되면, 그 사람이 바뀌길 바라는 것 같은 실현 불가능한 기대가 좌절되었다고 해서 내가 실망할 일도 없고 동요될 일도 없을 테니까요.
남동생의 무례한 태도에 대한 분노는 자연스럽고 나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하지만, 나의 기대가 무너진 것과 그런 기대를 한 나에 대한 실망으로 생긴 분노는 나를 지키는 데 있어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에요.
오히려 나 자신을 과도하게 압도하는 바람에 무례한 남동생의 태도에 제대로 대응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했을 거예요.
사실 그랬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압도되는 바람에 나는 남동생에게 제대로 조목조목 화를 내지 못했고, 그렇게 내뱉지 못한 분노가 나를 불태웠다.
남동생은 원래 자기가 누나들보다 잘났다는 생각에 나를 시녀처럼 부리는 사람이라는 것, 그의 태도와 생각은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한다 해도 바뀌지 않을 것임을 인정했더라면, 나는 섣불리 드라마에 나오는 우애 좋은 남매와 같은 관계를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무례한 남동생의 태도를 전제로 그에 맞는 태도와 조치를 취했겠지.
이제는 인정하자.
그리고 환상과 같은 기대는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