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가 가져온 결과
우리 삼 남매 중 제일 먼저 결혼한 남동생의 결혼식에 나는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축복할 수 없는 결혼이었고, 그리고 그때는 내가 절연한 나의 부모를 잠깐이라도 대면할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견딜 자신이 없었다.
이런 누나에 대하여 내 남동생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애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나는 내 남동생이 귀찮은 일 만들지 말고 알아서 잘 살길 바랄 뿐이다.
딸 둘에 아들 하나인 조합은 우리 집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연배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드물지 않은데, 거기다 막내가 아들이라는 조건까지 겹쳐지면 높은 확률로 똑똑한 누나들과 그 누나들보다 뒤처지는 남동생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남동생은 대부분 집안의 귀한 아들로 군림한다.
엄마를 위시하여, ABJ, 할머니 심지어 작은아버지들과 고모로부터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던 내 남동생을 질투한 사실은 인정한다.
6년의 나이차가 있는 터라, 같이 시간을 보낸 기간은 비교적 짧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내가 남동생을 질투한 것은 분명하다.
우리 자매가 가져 본 장난감 중 가장 귀하고 소중했던 것은 사촌언니(고모의 딸)로부터 물려받은 ‘미미의 집‘인데, 식탁 다리가 하나 없어 인형놀이를 할 때면 비록 한쪽을 붙잡고 있야만 했지만, 대부분의 내부소품이 부서져 나머지는 상상으로 그 형체를 만들어 냈어야 할지라도, 우리 자매는 50센티미터에 불과한 그 초라하고 조잡한 인형의 집을 매우 아꼈다.
그것은 거의 유일하게 우리자매의 적성과 연령에 맞는 장난감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했던 선물은 외사촌오빠(둘째 외삼촌의 아들)로부터 물려받은 글씨가 빼곡한 160권짜리 '세계문학전집'과 사촌언니(고모의 딸)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삽화가 가득한 40권짜리 '세계동화전집'이었는데, 그 책들이 우리 집에 도착한 날 나는 밤늦게까지 깨끗한 수건으로 하나하나 닦아 구석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 책들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세계문학전집이 있는 친구집에 놀러 갈 핑계를 쥐어짜 낼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런 우리 자매와 달리, 내 남동생에게는 많은 것들이 아주 쉽게 주어졌다.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영화가 방영하기 시작할 즈음이면 언제나 ABJ 손에 들려오던 만화 속에서 보던 로봇들 그리고 그 로봇의 변신이나 합체를 위한 다른 로봇까지, 아무 때고 각종 로봇들이 ABJ의 손에 들려와 우리 집의 장식장을 가득 채웠다. 그 로봇들은 각 부품마다 손톱만 한 스티커를 붙여야 하는 노동을 필요로 했는데, 별다른 놀 거리가 없었던 우리 자매는 그것마저 재밌어서 늘 도맡아 하고는 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보며, ABJ는 로봇을 가리키며 ‘셋이서 사이좋게 가지고 놀아라‘라고 했다.
우리 자매가 로봇을 만지는 때는 스티커를 붙일 때가 유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와 달리 독서에 아무런 흥미가 없는 남동생의 독서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당시에는 매우 귀했던 팝업북 전집을 사 왔다.
그동안 내가 알던 책에는 글씨와 그림만이 있었는데, 엄마가 사 온 책들을 펼치면 도르래가 올라가고, 꽃에 나비가 날아들었다. 접혀진 종이가 펼쳐질 때의 힘을 계산해 만들어낸 매우 단순한 동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안에 든 내용은 6세를 대상으로 한 유치한 것이었지만 우리 자매는 흠뻑 빠져들었다.
물론 내 남동생은 끝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아 엄마가 땅을 치며 후회했을지언정.
아, 그리고 레고도 잊을 수 없다.
아이의 두뇌발달에 좋다며 어느 날 우리 집에 등장한 어린 내 키만큼 커다란 통에 담긴 레고. 5층짜리 아파트를 짓는데 필요한 모든 부품이 들어있던 그 커다란 레고를 가지고 놀며 얼마나 즐거웠던지. 그 레고로 아파트도 만들고, 정원이 넓은 주택도 만들고, 헬리콥터도 만들면서 정말 즐겁게 놀았다.
그 역시 남동생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처럼 나는, 나와 달리 모든 것을 쉽게 갖는 남동생이 부러웠다.
우리 집의 첫째로서 이미 여동생을 통해 양보의 미덕을 학습한 나였지만 그래도 여동생과 다른, 남동생은 매우 강력하고 힘겨운 애증의 존재였다.
나이 터울이 꽤 나는 동생은 언제나 귀여운 법이다. 나 역시 절연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남동생을 질투하는 동시에 꽤 예뻐했다고 생각한다.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쥐어짜서 생일선물은 물론이고, 나는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는 어린이날 선물이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겼고 뿐만 아니라 남동생이 학교를 졸업하거나 입학할 때에도 그맘때의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값비싼 물건들을 선물로 주었다.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 혹독한 해외 봉사활동으로 인해 나는 거지꼴로 귀국했을지언정, 꽤 큰돈을 들여 마련한 그 나라 특산품으로 만든 옷을 남동생에게 기념품으로 주었다.
그러나 내게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나.
6살이나 어린 남동생에게 보답을 기대한다는 것이 파렴치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부모도 아닌데, 집 안팎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던 내가 남동생에게 ‘진심 어린 고맙다는 인사’나 ’큰 누나에 대한 존중과 지지’를 바란 것이 과도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6살이나 어린 남동생에게 나는 물론 내 여동생은 그저 만만한 상대일 뿐이었다. 엄마의 부탁을 빙자한 명령으로, 학업성적이 떨어지는 남동생에게 과외라도 해줄라고 하면 - 물론 공짜였다 - 숙제를 너무 많이 내준다면서 안 하겠다고 땡깡을 부렸고 수행평가나 숙제같이 어렵고 힘든 일들은 당연히 누나들이 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남동생의 태도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남동생은 취업을 한 이후에도, 2주에 겨우 하루를 쉬는 작은 누나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바리바리 장을 봐와서 자신의 자취방 냉장고를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바지런히 청소를 해줘도 고맙게 여기지 않았고, 직장생활 중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책을 찾아보거나 주변 선배들에게 물어보기보다 관련 업종에 있는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손쉽게 답을 얻고는 했다. 그리고 이런 이기적인 태도는 아버지가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여동생이 8시간의 시차가 있는 나라로 신혼여행을 간 동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별 쓸데없는 것들을 물어봤다고 한다.
결국 참지 못한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알 수 있는 것까지 물어보지 마라. 그런 것까지 대답해 주기에는 바쁘다‘라고 단호하게 거절한 후에야 나는 그 성가신 질문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으로부터 전해 듣기로는, 내가 부모는 물론, 남동생과의 절연을 선언한 후에도 남동생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은 언제나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이미 나를 통해 ’절연‘의 혹독함을 겪었음에도 내 남동생은 나와 달리 마음 약한 내 여동생과 그 배우자에게도 계속해서 염치없이 굴었다.
여동생의 결혼을 앞두고 남동생에게는 매형, 나에게는 제부가 되는 사람을 처음 만나는 어려운 자리에서, 남동생 부부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취향을 한 번 물어보는 것도 없이 자신들의 마음대로 음식을 주문하고 그리고 그 지불까지 떠넘겼다. 그리고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쉬운 것처럼 남동생 부부는 본가에서 여동생 부부를 마주할 때마다 값비싼 선물과 음식을 계속해서 뜯어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여동생에게 반문한 적이 있다. ‘백년손님인 사위 앞에서 남동생이 그렇게 예의 없이 구는데 엄마는 가만히 있었어?’하고.
이후 여동생의 답변을 듣고 나는 다시금 내 선택이 절대로 옳았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한술 더 뜨던걸. 아직 애기니까 우리 부부 보고 참으래.’
결국 내 여동생도 부모는 물론 남동생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선택했다.
때마다 누나들로부터 꼬박꼬박 받던 온갖 선물과 경제적 지원이 없어지고 난 후, 엄마를 통해서도 더 이상 누나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없게 되자 남동생 부부의 태도는 어처구니없게도 더없이 정중하고 조심스러워졌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해서 귀찮게 굴거나 염치없이 경제적 부담을 떠넘기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남동생이나 올케가 보내오는 정중한 안부인사에 그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이 보내온 인사가 반갑다기보다는 지난 경험의 여파로 성가시고 불쾌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다. ‘이번에는 또 뭔 아쉬운 소리를 하려고 이러나‘하고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들을, 복잡한 상황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답변이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보내오는 그 알량한 ‘안부인사‘를 보면서, 나는 우리 삼 남매의 관계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도 항상 두렵다.
나와 내 여동생을 업신여기는 남동생 부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아서 또다시 실망하는 일이 생길까봐. 그래서 일말의 개선의 여지도 없는 끔찍한 관계로 영원히 남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