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의 의미
조디 포스터가 주연으로 나오는 오래된 영화인 ’플라이트 플랜’은 비행기 안에서 모종의 이유로 사라진 딸을 찾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외부와 단절된 한정된 비행기라는 공간에서, 딸의 ‘존재’조차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엄마인 조디 포스터는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까지 딸을 되찾기 위해 그야말로 사투를 벌인다. 비행기 안에 있는 모두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이처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헌신적으로 딸을 보호하는 ‘엄마’의 모습은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당연한 ‘진리‘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엄마를 '보호자'라고 하는거겠지.
나의 엄마도 그 ‘진리’ 안에 포함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글쎄다’라고 할 수 있겠다.
워낙 의심이 가는 상황이 많았어서.
엄마와 내가 동시에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일 경우, 엄마가 자신의 몸을 던져 나를 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방패로 엄마의 목숨을 부지하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나는 이 백지 위에서 만큼은 거짓말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 냉정하고 가혹한 대답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갖고,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집에서부터 독립하길 꿈꿔왔던 이유 중의 하나는 부모로부터 보호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이 더러 있었다.
ABJ는 원래 술에 취해 행패나 부리지 않으면 다행인 사람이었던 터라 애초에 털끝만큼의 기대도 없었고, 그나마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기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나의 이런 기대를 번번이 무너뜨렸다.
아주 어린 내가 작은 아버지의 우악스러운 힘에 의해 방에서 마당으로 힘없이 내동댕이 쳐질 때에도, 그래서 온몸에 시퍼런 멍을 달고 다녔을 때도 엄마는 나를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평생을 건달로 산 인간답게 덩치도 위협적이고 아래위를 모르는 더러운 성격은 더욱 위협적이었기에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작은 아버지에게 맞서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이해는 한다.
뭐, 당시 같은 공간에 있었던 다른 어른들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그래도 자신의 별 것 없는 이익을 위해 딸인 나를 팔아먹지는 말았어야 했다. ‘더 글로리’에 나오는 동은이 엄마 같은 파렴치한 짓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의 기대를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했다.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고, 나는 그냥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학교에서 늘 1등을 했다. ‘1등’이라고 적힌 성적표는 왕따인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방패였으니까. 사실 왕따라서 공부밖에 할 일이 없기도 했다.
나의 부모는 나의 월등한 성적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만 할 뿐이었고, 점점 고학년이 되어가는 내가 '어떤 책을 보는지, 어떤 문제집을 푸는지,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아무것도 몰랐다.
이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물론 내 여동생이 고3이 되었을 때도 엄마는 당시 수능이 몇 점 만점인지, 어떤 대학들이 ‘가’군, ‘나’군, ‘다’군으로 나뉜지도 몰랐다. 엄마의 또 다른 자랑 중에 하나는 ‘나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애들이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잘한다'였으니까. 다른 학부모들은 엄마의 겸손의 표현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래서 엄마는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받은 얼토당토않은 부탁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나는 내 여동생과 오랫동안 한 방을 썼다.
내가 성인이 된 어느 날, 내 여동생이 나에게 고백하기를 ’엄마의 지시‘로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관찰해서 일거수일투족을 엄마에게 낱낱이 보고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언니가 어떻게 공부하는지 잘 보고 엄마한테 말해달라’는 말이 이상해서 여동생이 그 이유를 엄마한테 묻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다른 엄마들이 OOO(내 이름)은 어떻게 공부하길래 그렇게 성적이 좋은지 궁금하다고 알려달라고 하는데 내가 아는 게 없잖니.
다른 엄마들은 혹시나 자기 자식보다 더 좋은 성적이 나올까 봐, 다른 아이들은 못 다니도록 본인 자식이 다니는 학원 이름도 다른 학부모들에게 숨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상황에서, 우리 엄마지만 대단하다 싶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생각이 없을 수 있구나.
내가 가진 것은 공부 밖에 없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그저 자신의 체면을 위해 헐값에 넘겼다니. 누군가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내가 어렵게 체득한 공부 습관, 방법들은 당시 나에게 있어서 귀중한 ‘영업비밀’과 같은 것이라서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1등’이라는 하나 뿐인 방패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데.
사실 엄마는 그냥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저 단순히 ’호감‘을 얻기 위해 나를 깎아내린 적도 있다.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반 전체가 ‘커닝’을 한 적이 있다. 나에게도 물론 동참하라는 압박이 들어왔지만,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규칙을 따르던 나였기에 - 당시 나는 규칙과 거리 간 먼 ABJ의 영향으로 나 자신은 아무리 짧은 거리라고 할지라도 무단횡단조차 한 적이 없었다 - 단호하게 거절했다. 부차적으로는, 커닝에 동참하든 안 하든 내가 왕따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던 점과 오히려 ‘1등’인 내가 커닝에 동참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계산도 있었지만.
그렇게 나를 제외한 반 전체가 ‘커닝’에 가담했고 그리고 이 일은 나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곧 발각되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공부를 안 하는 애들이었구나라고 느꼈던 게, 어느 한 애가 주관식 답으로 적은 말도 안 되는 답을 다른 애들 모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똑같이 적어냈으니 커닝이 발각될 수밖에.
그리고 이 일은 학교 전체는 물론 학부모들의 귀에도 당연히 들어갔다.
이후 당시 나와 같은 반이었던, 그리고 나를 왕따 시키는데 한몫을 한 KJD(실명의 이니셜-너무 특정가능한 이름이라 이니셜로 대체한다)의 엄마는 우리 집에까지 찾아와서 우리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OOO(내 이름)가 그냥 답안지 좀 조금 보여줬더라면 애들이 이렇게 까지 되었겠냐’고.
’깍쟁이처럼 OOO만 답안지를 안 보여줬다고 하더라. 애가 아주 이기적이다.‘라고.
거기에 대한 우리 엄마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 애는 유별난 애라서 그런 거 보여줄 애가 아니다. 별 거 아닌데.’
엄마와 KJD의 엄마가 친분이 있다는 것도 몰랐지만, 아니 그것보다 엄마는 KJD가 학교에서 나를 이유 없이 욕하고, 내 책상을 수시로 걷어차고, 말도 안되는 험담을 하면서 왕따를 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나를 ‘에이즈’라고 ‘병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커닝은 분명 잘못된 일인데, 거기에 동참하지 않은 나를 탓하는 다른 학부모에게 동조하는 게 말이 되나. 그저 그 사람이랑 어색한 사이가 되는 게 싫어서? 모르겠다.
거기서 내 마음이,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보호 줄 것이라는 기대가 꺾였다.
그래서 이후에는 중간고사에서 맨 뒷자리에 앉았던 애가 시험이 끝난 후 내가 앉아 있던 줄의 답안지를 걷어가면서 선생님의 눈을 피해 내가 작성한 답안지를 들고 앞에 앉아있던 다른 아이에게 답을 불러주든 말든 나는 그냥 이런 일에 대해서는 잠자코 있었다. 그저 선생님이 시험 감독을 더욱 엄격하게 해 주기를 바라며.
중학교 때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여러 징조가 있긴 했다.
엄마는 ABJ와 심하게 부부싸움을 한 날이면, 학교에도 다니지 않던 나이 어린 우리 삼 남매를 버리고 장기간 가출을 했고 - 그래서 어렵게 엄마가 돌아온 날이면 나랑 내 여동생은 엄마가 또 집을 나갈까 봐 두려워 엄마의 방문 앞에서 잠든 적도 있다 - 내가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ABJ와 정식으로 이혼을 하겠다며 간 법원에서 이혼 신고를 마치자마자 우리 삼 남매만 버리고 도망친 적도 있다. 웃긴 것은 엄마만 도망친 것이 아니라 ABJ도 같이 도망쳤기 때문에 우리 삼 남매는 ’버려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
혹시라도 어린 우리가 뒤따라올까 봐 전속력을 다해 달려가던 부모의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우리 삼 남매가 법원 앞에서 기아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하루 2갑씩 피던 담배로 인하여 폐활량이 좋지 못했던 ABJ의 달리기 실력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던 점과 맏이인 내가 막중한 책임을 갖고 죽기 살기로 뛰어가서 ABJ의 옷자락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부모는 법원 앞에 어린 삼 남매를 버려두고 한 번도 뒤 돌아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로 나의 엄마는 ‘보호자’라고 할 수 없다. 그 단어가 주는 의미와 존경을 감히 감당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