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로 어떤 사람인가.
심리상담 숙제 중의 하나로 ‘나를 20개 이상의 문장으로 표현하기’가 주어졌다.
‘나는 OOO 한 사람이다‘
적당한 형용사를 골라 나를 표현하는 숙제쯤이야, 그동안 수없이 했던 글짓기 숙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동안 자기소개서에 ‘나의 장점’으로 주구장창 써왔던 ‘성실‘과 ’책임감’을 끝으로 내 손가락은 백지 위에서 하릴없이 방황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모르겠는 답을 앞에 두고 나는 벼락치기에 임하는 학생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로 꾸역꾸역 20개의 문장을 완성했다.
완성된 20개의 문장들을 앞에 두고, 해당 문장들을 다시 ‘외면, 내면, 행동, 성취, 대인관계' 항목으로 나누면서 발견한 것은 나에 대한 인식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져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내면' 항목에 두드러지게 치우쳐져 있었는데, 그것은 '내면의 자극이 외부로 표현'되는 것보다 '외부의 자극이 내면으로 표현'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일환으로 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평가한 것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내가 작성한, 나를 표현하는 20개의 문장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 ‘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나는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모두 다 나를 이야기하는 문장 속에서 예리한 심리상담사는 그 사이의 모순을 발견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내가 어떻게 ’게으른 사람‘일 수 있는지, ‘어떤 점이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지’라고 묻는 질문에 나는 휴일에 늘어져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설명했다. 모처럼 출근하지 않는 휴일이면 아무런 의미 없는 쇼츠와 짧은 동영상들을 하염없이 보며 널브러져 있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에 ’게으른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자 심리상담사는 다시 반문했다.
그것은 그냥 휴식을 취한 것이 아닌가요.
어떻게 성실하면서 게으를 수 있을까요. ‘게으르다’고 누구한테 가장 많이 들었나요.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나에게 게으르다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바쁜 업무 중에도 꾸준히 무언가를 시도하는 나를 보며 ‘부지런다, 대단하다’라고 했을지언정.
유일하게 나를 게으르다고 평가한 단 한 사람은 엄마다.
엄마는 나를 ‘게을러터져서 책상정리도 안 한다 ‘,’ 우리 애는 게을러서 집에 오면 꼼짝도 안해요‘, ‘우리 애는 천성이 게을러요’라고 표현했다. 돌이켜보면 집에서 제일 바쁜 것은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내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은 학교를 제외하고 우리 집의 내 책상뿐이었고 - 우리 동네 독서실은 깜깜하고 무서운 데다 비싸기까지 해서 가지 못했다 - 공부를 하다 보면 책이며 연필이 책상 위를 굴러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웠으며, 친구도 없고 돈도 없는 내가 나가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왕따라 학교에서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다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지쳐있기 일쑤였고. 그 와중에도 사소한 집안일이며 엄마의 감정쓰레기통 역할까지 했는데 이런 나에게 ‘게으르다’는 평가는 부당하다. 아니, 잔인하다.
24시간 기계처럼 온종일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면 ‘부지런하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지라도 과연 엄마가 만족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고, 그 이상은 할 수 없었다. 더욱이 오로지 엄마에게 '부지런하다 '는 도장을 받기 위해서 그 이상을 무리해서 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 같다.
상담사의 날카로운 지적으로 나는 그동안 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대단하다’, ‘부지런하다’라고 칭찬할 때마다 매우 불편해하면서 내가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지 설명하려 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실이 아닌 엄마의 ’게으르다’는 평가가 내 것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부지런한’ 내 실제 모습이 그 평가와 불일치되어, 평가와 실제 모습 사이의 괴리가 나를 괴롭혔다는 것을. 그리고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쁜 천성을 바꾸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시도하면서 나를 들들 볶아 왔다는 것을.
실제의 나는 게으른 사람인가?
나는 이것 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 힘도 없고 빽도 없고 돈도 없는 나의 유일한 무기는 언제나 ’성실‘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엄마가 틀렸다.
엄마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40년이나 걸렸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꾹꾹 묻어둔 기억은 통로가 한 번 열리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 같다.
내가 엄마로부터 ‘게으르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면, ABJ로부터는 ‘못생겼다’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
그것도 내 여동생과 비교해서.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리 ooo(여동생)은 이뻐서 나중에 미스코리아 시켜야겠어. XXX(내이름)는 공부 잘하니까 나중에 박사하면 돼. 눈이 도실비(다슬기) 딱지만 해가지고.’라고.
절연을 선언하기까지 계속 들어왔던 말들로 인해- 그렇다, 저 에두른 못생겼다는 표현은 내가 서른 살을 넘어서도 계속되었다 - 나는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박이 줄 긋는다고 수박 되지 않듯이‘ 못생긴 나는 아무리 화장을 해도 달라지지 않을 테니 비교적 최근까지도 화장이나 그런 미용 쪽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못생긴 나에게는 소용없을 테니까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한 장이라도 더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화장뿐만 아니라, 거울도 제대로 보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셀카는 커녕 여행을 가서도 내 얼굴이 나온 사진을 남기는 법이 없었다. 못생긴 얼굴을 사진에 남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내 얼굴이 남아 있는 사진들은 철마다 필요했던 반명함판 증명사진이 전부다.
나는 못생겼나.
상담사는 나는 못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것이 피상담자에 대한 상담자로서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한 말이든 어쨌든 나는 예쁘지는 않아도 못생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왕따 당할 때를 빼고 적어도 외모로 인해서 놀림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
절연을 선언한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탈출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로부터 받은 것들이 남아있다.
그것도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내린, 잘못된 나에 대한 평가가 아직도 나를 붙잡고 있다는 것이 속상하고, 슬프고,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