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생 A에 대처하는 방법
나에게는 꽤 긴 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만나는 동기모임이 있다.
같은 해에 같은 시험에 합격했다는 이유로 엮인 ‘동기’들은 성별도 나이도 그리고 배경도 모두 각양각색이다.
꽤 긴 시간 동안 ‘연수’라는 이름으로 많은 동기들과 동고동락을 해야만 했을 때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 시간들이 참 두렵고 무서웠다.
사실 나는 성인 남자가 무섭다. 목소리도 크고 덩치도 크다면 더더욱.
그래서 난생처음 성인 남자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그중에서도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1977년생 A는 가장 무섭고 소름 끼치는 존재였다.
그의 행보와 나의 행보는 상당 부분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냥 만만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봐도 내가 잘못한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연수기간 내내 공식적인 동기모임을 제외하고 그와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잘못을 할 기회조차도 별로 없었으니까 - 모르겠지만 A는 연수기간 내내 날 괴롭혔다.
그것도 가장 소름 끼치는 방법으로.
연수기간 동안 나와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된 A는 늘 나에게 내가 들고 다니는 텀블러 안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시게 해달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과 텀블러를 공유하는 게 싫었지만 거절하기 어려워 줄 수밖에 없었다. A의 요구는 한동안 계속되었고, 둔한 나도 그 계속되는 요구가 이상하게 느껴질 즈음에 - 그렇지 않은가. 계속 물이 마시고 싶다면 생수를 사 오거나 자기도 텀블러를 들고 오면 되는데 - 우연히 A가 물을 마시고 난 후 뚜껑을 열어본 텀블러 안에 선명한 가래침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물을 마시는 척하면서 그동안 내 텀블러 안에 침을 뱉고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것을 알아차린 나도 나지만, A가 침을 뱉은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냥 더 이상 텀블러 안의 물을 마시게 해 달라는 요구를 거절했을 뿐.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그동안 어렴풋이 짐작만 했던 A의 나에 대한 적개심을 확신했다.
그전에는 애매모호했던 것들이,
남자에 대한 공포감으로 인해서 불안정한 내가 망상한 게 아닐까 의심했던 일들이 선명한 가래침만큼이나 분명해졌다.
A는 목소리도 크고 덩치도 크다.
그 특유의 경상도 말투와 첫 사회생활이라 모든 게 서툴었던 나와 달리 다른 직장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얻은 능력으로 동기들 안에서 주류로 자리 잡은 그를 대적하기에는 나는 너무 작고 미약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고 애썼지만, 나는 사실 남자 동기들이 무서워 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없기도 했고 재밌는 말을 할 재주도 없는 터라 동기들 안에서 나의 존재감은 작았다. 그래서 그냥 하루빨리 연수가 끝나 A와 매일 마주하지 않는 날이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운도 지지리도 없지.
연수가 끝나고 마음을 놓고 있을 때 하필 A와 나는 비슷한 지역에서 일하게 되어 또다시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자연스레 목소리가 큰 A가 모임의 총무를 하게 되었고 연락을 돌리는 일이나, 장소를 정하는 일 모두 A가 전담했다. 아마 2~3번 정도 모임이 있은 후였던 것 같은데, 나는 우연한 일로 A가 모임에 일부러 나를 부르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참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A는 다른 동기들에게 뭐라고 얘기했을까?
그리고 이런 일은 이번 한 번 뿐이었을까?
A와 친한 다른 동기들이 나에게 유달리 까칠했던 이유가 혹시 A는 아니었을까?
대화를 주도하거나 재밌는 말을 하는 재주가 없는 나를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동기모임에서 말을 하기보다 듣는 것이 편하다.
그래도 말을 한마디도 안 하면 너무 이상하니까, 고심고심하다가 누구의 신경도 거스르지 않는 말을 골라 어쩌다 한마디 하게 되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꼬리를 붙잡고 집요하게 늘어지는 동기들이 몇몇 있었다. 그리고 그 동기들은 A와 특히 친한 사람들이었다.
혹시 A가 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하지만 A는 물론, 그와 친한 동기들과도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사이인데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아니면 그냥 내 망상인가?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하고 있나?
동기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혹시 A가 나에 대해서 어떤 말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정한 마음은 약 10년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동기들을 만나고 난 후, 결국 그동안 쌓였던 불안한 마음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나에게 상담사는 말했다.
가스라이팅처럼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속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에요.
한 사람이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사람을 속이는 것도 가능하죠.
그런데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오랫동안 속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그것이 가능하려면, 긴 시간 동안 그 거짓말에 들어맞는 조건들이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쉽지 않죠.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 여러 경험을 쌓게 될 텐데, A가 당신과 멀어지도록 다른 동기들을 조종하려 한다거나 호도하려고 했다면 그 동기들도 모르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다른 동기들이 반발하거나 나서지 않는 이유는, 피해자가 자기는 아니니까, 모두들 자기 삶을 살아내는 것만도 힘겹고 귀찮아서 A에게 대놓고 말하지 않았을 확률이 커요.
그러니까 나를 지키는 것은 결국 나 자신밖에 없어요.
재밌는 말을 하거나 나서서 대화를 주도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동기모임에서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A가 나에 대해서 아무리 안 좋은 말을 하더라도 나는 내 자리를 지키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나는 동기모임에 계속 나가는 것이, 다른 동기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무섭다. 그것이 아무 의미 없는, 그냥 가벼운 일상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두려움을 꾹 참고 꾸역꾸역 가능한 한 모든 자리에 참석했던 이유는, 내가 없는 사이에 A가 나에 대해 사실이 아닌 나쁜 말을 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그리고 공식적인 모임이 아니라면 동기들과 만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지만, 날이 갈수록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A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하면서,
나는 문득 그 두려움이 온전히 A에 의한 것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A의 행동은 고3 때 만났던 덕희의 행동과 무척 닮아있다. 정작 본인은 뒤로 물러난 채 다른 애들을 움직여 나를 괴롭히던.
억지로 쥐어짜 낸 하이톤의 목소리로, 연약한 척, 순진한 척 굴면서 아이들의 관심을 즐기던 그리고 환심을 사기 위해 무리한 부탁도 아낌없이 들어주던 덕희는 다른 아이들을 부추겨 나를 왕따 시켰다.
그냥 고3 때 같은 반에 배정된 것뿐인데, 그녀와 내가 어떠한 접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나로부터 무슨 피해를 입은 것처럼 굴었다.
그녀가 만년 2등인 것이 내 잘못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일률적으로 전교 60등까지의 학생들을 추려내 한 곳에 몰아넣던 그 이상한 교실에 내가 가고 싶어 간 것도 아니었다. 나는 거기서도 여전히 왕따였으니까. 오히려 단 한 명의 친구였던 정실이가 있던 본래의 교실이 더 좋았다.
우리 엄마가 덕희네 엄마처럼 학부모회 활동에 참여하거나 같은 반 애들에게 햄버거를 돌리거나 하지 않은 것도, 엄마 얼굴에서 멍이 지워질 날이 드물어 밖에 돌아다니기 힘든 데다 집에는 늘 돈이 없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모든 것이 마치 나의 잘못인 것 마냥, 그로 인해 자신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마냥 굴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의 등 뒤에 숨어 교묘히 나를 고립시켰다.
아, 정실이가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살아는 있었을까 싶다.
9년간 왕따를 당했던 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몰아넣었던 덕희가 이제는 A의 모습을 하고 다시 내 인생에 나타나다니.
여기까지의 얘기를 두서없이 풀어놓는 나에게 상담사는 정말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덕희는 나중에 어떻게 되었나요?’
아, 그 환희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그때 정말로 기뻤다.
누구나 이름을 아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이 결정된 나와, 고향에 있는 어느 대학의 인문계열 학과에 덕희가 합격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냥 ‘이겼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진심으로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서도 비록 우리 엄마의 얼굴에는 시퍼런 멍이 있었지만, 나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교단에 올라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상을 받았고 덕희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도 나는 ‘이겼다’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무엇을 이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3 생활을 하면서 당신은 그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지금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나요?’ 상담사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ABJ도 그렇고 엄마도 그러니까, 더더욱 남들한테 손가락질 안 받게 동생들한테 비빌 언덕이 될 수 있게 똑바로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대답을 바탕으로 얼기설기 엉켜있는 나의 여정은 상담사를 통해 다시금 정리되었다.
덕희와 당신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목적에 있어요.
덕희의 과정과 목적에는 오로지 당신만이 있었지만, 당신은 그보다 더 높은 것을 봤죠. 단순히 집에서 벗어나야지, 부모로부터 벗어나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잘 살아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어요.
고3 때의 기억이 여전히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스스로를 지켜냈고 눈부신 성과를 냈음을 스스로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 어려움을 이겨낸 당신 스스로의 힘을 믿으세요.
A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을까라는 말이 있듯이, 그저 A를 마주하는 게 무서워서 동기모임에 나가지 않을 이유는 없어요.
그동안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낸 당신의 힘을 믿으세요. A가 아무리 천박하게 굴어도 당신까지 천박하게 될 필요는 없어요. 아무리 A가 다른 동기들에게 당신의 험담을 해도, 당신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 자연히 A의 말들을 반박하는 게 될 거예요.
오랜 기간에 걸쳐 왕따와 가정폭력을 겪으면서,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닐까’하는 깊은 의심이 있었다.
9년간의 왕따와 평생에 걸친 가정폭력이 동시에 나에게 일어난 이유를 찾을 수 없었으니까.
이런 나의 의심을 지워주듯, 그냥 나로 있어도 된다는 말이 좋다.
나는 그냥 나로 있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