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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군 Sep 25. 2020

말, 글, 사진, 추억

        8mm 비디오카메라와 테이프는 잃어버렸지만 그 무렵 이후의 내 추억들은 아주 편하다. 추억을 되짚어 보기가 편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전자기기에 욕심도 꽤나 있는 편이었고, 스마트폰이란 게 발달하면서, 그 덕분에 사진도 영상도 열심히 찍었다. 좋은 곳, 좋은 일, 좋은 사람, 좋은 날이 있으면 모두 찍었다. 하지만 지금 와 돌이켜 보면 나는 사진 찍는 일만 열심히 하되, 사진을 정리하는 일은 또 수시로 하지는 않는 것이다. 사진은 사진에 담아두게 되어 버린 걸까. 과거를 과거에 묻어두듯 말이다. 결국 과거에 찍어 둔 사진 몇 장으로 지난 일을 추억해야 하는 한계가 생긴다. 계속 이렇게 살다 보면 편해진 만큼 의존하고, 그 장면에서 파생되는 아주 단편적인 기억들만 겨우 안고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사진이라는 게 결코 흔해 빠졌다거나 쉬운 것은 아니고, 하잘 것 없는 내가 평가할 수 없는 위대한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나는 점점 기계적으로, 또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어 담아 두기만 하고, 그 사진들에서 충분한 추억을 하지 못하는 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왜 자꾸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갑자기 동떨어진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중앙일보 윤만석 기자의 ‘인간혁명’이라는 코너를 읽던 중에 ‘언어가 사고의 틀을 규정한다’라는 문장을 본 것이 발단이다. 그는 ‘반공-적폐’를 예로 들어 한국 정치사를 가로지르는 이데올로기 속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안에서 사용되어 온 이분법적이고 투쟁적인 언어들의 함정을 주제로 다루고 있어서─ 지금 내가 쓰는 것들과는 더 동떨어진 것이긴 하다─, 아무튼 저 글을 읽다 보면 말과 글의 힘이 이렇게 강하구나 새삼 느낀다. 


        그러면서 언어와 사고, 또 말과 글로 남기는 기억들을 연결 짓다 보니, 이런 생각에 닿는다. 아, 내가 글로 남겨서 기억해 오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기록으로서의 언어는 당시의 상황, 생각, 감정을 담는 것이니 과거로의 여행을 하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겠구나. 하면서 나는 당연한 것을 어렵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간단히는 초등학교 때 그 귀찮은 일기를 왜 쓰라고 어른들은 난리일까 했는데, 다 이유가 있어서였구나 싶은 것이다. 그 때 써둔 일기를 보면 아 이 때 이랬지 하면서 추억에 빠져드는 것, 글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래서 아주 일기에다가 그림도 그리는 그림일기 패키지가 생겨난건지도 모르겠다.) 


        왜 지난 세월 겪은 일들을 몇 줄이라도 적어두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을까 하다 보니 또 당연한 생각이 들었다. 바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바쁜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 바쁜 사람이라기 보단 바쁜 직장인이 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터다. 하지만 내가 좋자고 쓰는 글인데 바쁜 건 핑계였다는 둥 반성 같은 건 할 생각은 사실 별로 없다. 


        언제고 꾸준히 글을 써 볼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그걸 또 꾸준히 해 보기엔 살아내느라 바빴기 때문에 이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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