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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군 Oct 07. 2020

에즈, 조각돌이 마을이 되기까지

유럽 : 에즈

        여기저기서 자주 들었는데, 글은 두괄식으로 써야 좋다고 한다. 그래서 써 본다. 에즈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한 번 싸웠다. 서로 마음이 상해 다소 긴 시간 대화가 단절되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삐쳤던 거지. 결혼하고 며칠 만에 처음 생겼던 갈등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기억이 나는 것 같다.   

        

        모나코에서 일정을 마치고 니스로 돌아가는 길에는 남프랑스 근처의 에즈라는 고성이 있다. 당시에는 네이버 블로그를 잘 찾아야 나올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었는데, 남부 유럽을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꼭 한 번 추천하는 곳이다. 


        돌아가는 길은 온 길의 반대다. 너무나 쉬운 사실. 그 길을 따라 다시 달리면 되는 것뿐인데,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다는 나라 모나코를 벗어나는 일이 썩 쉽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잘 터지지 않아 구글맵을 못 쓰게 되었으니, 차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을 따라 앞유리에 코를 박고 운전을 하는데, 마침 모나코 시내에는 여기저기 도로공사가 많았다. 요즘도 종종 느끼지만 터지지 않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나란 인간은 정말 무능하고 예민하다. 꽤나 긴 터널로 들어섰는데 터널 한가운데서 내비게이션이 유턴을 지시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수많은 생각이 든다. 아, 유럽에서는 터널 안에서도 유턴을 할 수 있는 걸까. 터널 안이라 GPS가 제대로 안 터져서 생긴 오류일까. 너무 느리게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초보운전 시절이 생각났다. 뒤차는 날 욕하고 있겠지.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던 그때 내비게이션이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터널 안에서 목숨을 걸고 유턴을 하라더니 갑자기 우회전 지시를 했다. 오 마이 갓. 


        “야, 너 왜 그래!”


        갑자기 아내가 내비게이션에게 소리쳤다. 아마 내비게이션도 사람이 말을 걸어서 당황했을 것이다.

        

        “조용히 좀 해봐!”

        

        나도 아내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단절되었다. 얄미운 차만 남의 속도 모르고 금세 옳은 길로 접어들었고, 눈치 없는 내비게이션만 계속 떠들었다. 그리고 모나코에서 에즈는 무척 가까웠다. 다툼이 민망할 정도로.


        니스에서 모나코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으므로, 니스와 모나코의 중간에 있는 작은 성에 둘러싸인 에즈는, 모나코에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안도로를 조금 달리고, 자그마한 산길에 들어서면 도시라는 단어들이 침범하지 못한 남프랑스의 작은 언덕 마을 입구가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국경을 하루에 두 번 건너갔다 온 셈이다. 


        모나코에서 날이 흐려지더니, 에즈에 도착할 무렵엔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해안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숲에 둘러싸인 곳이라 모나코보다는 조금 더 습한 느낌이 들었다. 차에서 내려 작은 마을의 입구에 들어서 잠시 걷는 동안에도 우리는 말이 없었다. 말은 없었지만, 초입부터 보이는 숲 속 마을들과 바다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각자 사진을 열심히 찍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초입에서는 대개 서로의 뒷모습 사진이라든지 멀찌감치서 불러서 찍은 사진들이 주로 남아 있는 게 우습다. 살다 보니, 그때 차 안에서 다퉈서 삐쳐 있었지 하는 기억만 남지, 에즈에 가서도 기분이 상해 있었던 건 사진들을 보니 이제야 생각이 난다. 별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더듬어 보면, 좋지 않은 감정에 관해 잘 말하지 못하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풀어내는 것에도 익숙하지 못했던 내 탓이 컸으리라. 저런 이유들로 먼저 사과하기 민망해서, 망설였던 탓 아니었을까 싶다. 늦었지만 다시 사과할게. 미안. 

부겐빌레아


        다시 에즈의 기억으로 돌아가 본다. 작은 조각돌이 모여 길이 되었다. 길 가운데에 누군가가 가지런히 놓았을 붉은 돌들 덕분에 걷는 이는 지중해의 한 폭을 걷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 투박한 조각돌 사이에 붉은 돌들을 놓았을 누군가의 아버지가 그랬을 것이고,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을 것이다. 투박한 돌들을 쌓아 벽을 만들고 기와를 얹었을 것이다. 욕심부리지 않고 지은 작은 집들은 각자의 역할을 찾는다. 작은 숙소가 되고, 식당이 되기도 했고, 향수 가게, 모자 가게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미술 작품을 사고파는 갤러리들로 변한 것이리라. 집들은 작은 골목을 만들어 마을을 이루었고, 시간은 흘러서 그 골목 벽마다 화단마다 설익은 듯 연한 색의 부겐빌레아가 피어나 흐드러졌을 것이다. 모든 것이 처음 지을 때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었다. 몇몇 상점들 창문이 상품 진열대로 바뀐 것 말고는 모든 것이 그대로다. 저 도시들, 바둑판처럼, 또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계획에 갇혀 만들어져서, 계획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저 먼 도시들이 더 미워졌다.  

에즈, 골목

        

        잠시 모자 가게에 들렀다. 아내 마음에 꼭 드는 둥근 챙의 나들이 모자가 있었다. 잠시 써 보았는데, 키가 큰 여주인이 아주 진지한 태도로 거울을 보는 아내의 모자 매무새를 만져주던 모습이 선하다. 파는 것보다는 조용히 손님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습을 만들어주려는 잠깐의 노력이 보통의 친절함 보다 더 따뜻하게 남았던 것 같다. 마침 무척 잘 어울렸는데, 이걸 사도 되겠냐는 아내의 질문 또한 선하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해졌다. 우리 결혼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앞으로 살면서 모자 하나도 남편 허락 맡고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얘기 저 얘기하며 냉랭한 기운은 자연히 풀어졌다. 

    

        아마 배가 고파서 서로 예민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금 든다. 아침부터 모나코 왕궁 뒷골목에서 먹은 라비올리 한 접시와 프렌치프라이, 커피 한 잔(그래도 스벅이었다)이 전부였기 때문에 무척 허기진 상태가 아니었을까. 식당 몇 군데를 고르다가 토굴 피자가게로 들어갔는데, 손님이 하나도 없었던 걸 보면, 점심시간은 훌쩍 지났던 것 같다. 화덕에 굽는 피자는 맞았는데, 치즈가 듬뿍 얹어 나온, 정통 이탈리아 피자와 기성 피자의 중간 즈음에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정통이건 기성이건 상관없었다. 나는 피자라면 모두 좋은 사람이고, 그 피자들 중에도 아주 맛있는 피자였다.  

치즈가 듬뿍 올라갔던 피자


        밥을 먹으면서 우리 마주 앉아 어떤 이야기들을 했을까. 많이 늦은 점심이었을 텐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대해 이야기했을 수도 있고, 다음 날 니스에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당장 며칠 전의 결혼식에 대해 얘기했을 수도 있고.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대단히 좋은 것들에 대해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싶네. 


        이 곳에 기억을 되짚다 보니, 우리 같이 산다는 게, 또 가정을 꾸려 같이 만들어 나간다는 게 이 작은 마을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작은 조각돌이 길이 되고, 돌들이 벽이 되고, 집이 되고, 집들이 모여 마을이 된 그 긴 시간과 우리 사는 게 닮아 있지 않은가 말이야. 안타깝게도 그 날 그 피자가게에서 나눈 이야기는 오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가 시간과 함께 흘러오면서 마주 앉아 나눌 이야기는 계속 쌓이고 많아졌겠지. 이야기라는 길의 시작에 함께 서 있었다면, 이제는 이야기의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 말이야. 특히나 이 책을 쓰게 되었으니, 잊어버리지 않고 나눌 이야기는 더욱 늘어날 거야.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에즈에서 내려왔고, 숙소가 있는, 우리의 최고 기대 여행지 니스로 향했던 것으로 에즈에서의 기억을 잠시 접어 본다. 물론, 에즈에서 니스로 가는 차에서는 싸우지 않고 신나게 떠들었을 것으로 확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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