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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군 Oct 20. 2020

니스, 부부의  출발점

유럽 : 니스

        간간이 영화에서나 보고 들었던 휴양 도시. 나와는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곳. 남프랑스 해안에 있는 이 도시는 우리 신혼여행의 목적과도 같은 곳으로 시작해서, 결혼에 관한 여러 가지 의미를 깨닫게 해 준 곳이다. 


        여행의 처음 일정을 런던에서 보냈던 우리는 런던 근교에 위치한, 영국 국내 혹은 가까운 유럽을 오갈 수 있는 규모의 개트윅 공항에서 니스로 넘어오는 이지젯을 이용했다. 초저녁 비행기에 올라 늦은 저녁 니스 공항에 내렸다. 기내 좌석은 비좁은 편이었으나, 비행시간이 길지 않았던 관계로 큰 불편함은 없었다. 프랑스 입국절차를 밟은 후 도착장에서 빠져나왔을 땐 이미 시간이 늦어서였는지 한산한 니스 공항은 조금 차갑고 낯선 공기로 우리를 반겼다. 


        렌터카 샵에서 차를 빌려 숙소로 달렸다. 달렸다는 표현은 너무 미화한 듯하고, 전체적으로 길 폭이 좁았던 데다가 처음 운전해보는 유럽의 밤길이라니. 분명 우왕좌왕했을 것이다. 특히나 숙소는 니스 해안이 보이는 높은 언덕에 있었기 때문에, 모퉁이 굽이길을 여러 차례 돌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복잡한 코스로 가야 했던 이유는 이 숙소는 이 신혼여행의 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사진에서만 보던 그곳. 너무 궁금하고 설레서 위성지도로 찾고, 구글 스트리트 뷰를 수십 번 찾았던 그곳이었건만, 첫날은 사실 밤이 깊어 희미한 조명으로 밝혀지는 집의 실루엣 외에는 많은 것을 보지 못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이 숙소는 니스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큰 사이즈의 주택이다. 우리는 앞뜰에 자그마한 잔디가 깔린 별채에서 지냈다. 야외 수영장도 있어 수영복을 준비해 갔지만, 생각보다 기온이 낮아 수영은 못했다. 


        이튿날 아침, 잠시 밖에 나온 우리는 기분 좋은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10월 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청명한 하늘과, 쏟아지는 햇살에 부드러운 바람이 아른거리는 풀내음을 담아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그 하늘에 그린 비행기들의 흔적들이 이질감 없이 어울렸다. 니스의 하늘은 계속 그랬던 것 같다. 맑은 하늘, 깃털 구름, 비행기가 남기고 간 구름들. 얼음이 들어 간 커피를 좋아하는 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는 따뜻한 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고) 마셔줬다. 어느 작은 마트에서 사 온 에클레어와 마들렌을 한 입씩 먹으면서. 계획보다 며칠 더 있었더라면 프랑스 사람이 될 뻔했다.         

니스의 아침


        앞서 적은 모나코와 에즈에서 니스에서의 먼저 하루를 보냈고, 니스 시내와 해변을 보기로 했던 건 그다음 날이다. 아침 일찍 우리는 니스 시내에 있는 샤갈 미술관에 들르기로 했다. 주택가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주차에 또 한 번 애를 먹었다. 니스 샤갈 미술관에는 주로 성서 속 이야기들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거친 선들과 따뜻한 색감이 잘 조화를 이룬 작품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작품을 찍은 사진이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깝다.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 넓은 뜰 한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그 날, 그 미술관 뜰에서 커피를 마시던 그 순간까지 모든 것이 지나칠 정도로 평화로웠다. 그 행복감과 평화에 감사했어야 했는데. 이후부터 생긴 일들은 모두 나의 교만이 불러온 참사였다. 


        기분 좋게 아내와 커피를 한 잔 하고 나오니, 미술관에 들어갈 때 본 한국인 커플이 다가왔다. 이런 먼 곳에서 한국인을 보니 반갑기도 했고, 유독 작은 차들이 다니는 프랑스 거리에 검은색 BMW 컨버터블이 다니는 것을 보고 더 눈에 띈 부부였다. 우리와 비슷한 일정으로 신혼여행을 온 것 같았다. 

    

        남자가 먼저 내게 물었다. 

        

        “한국인이시죠?”

        

        내가 답했다. 

        

        “네, 그런데요.”

        

        그가 알 수 없는, 조금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저희 차가 털렸는데요.”


        처음에 이 말을 듣고 나는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줄 알았다. 어쩐지 누가 봐도 털고 싶게 생긴 큰 차를 가지고 골목에 들어서더라니. 하는 생각이 스치던 찰나에 그가 한 문장을 덧붙였다.


        “그쪽 차도 털린 것 같아서요.” 

        

        앞이 아찔해지며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털린 것 같아서요.’ 인지, ‘털렸을 것 같아서요.’ 인지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지만 다리는 다리대로 차로 달려가고 있었다. 가서 보니, 크게 망가진 곳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보니 조수석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그 옆 바닥엔 둥근 짱돌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우리 차도. 털렸다. 

반납한 렌터카의 마지막 모습. 조수석 유리창이 작살 났다. RIP


        30분 전만 해도 미술관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내릴 때 아내는 내게 말했다. 가방 챙겨 내리지 그래. 내가 대답했다. 잠깐인데 뭐 어때. 도둑놈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양심이란 게 있었다면, 가책이 들려던 찰나, 잠깐인데 뭐 어때 하면서. 돌로 유리창을 깨고, 손을 넣어 차 문을 열고, 내 가방을 챙기고. 그렇게 차근차근. 열었던 문은 다시 닫아주고. 잠깐 동안. 


        아내가 챙기라고 했던 가방이 없어지면서 갑자기 모든 것이 틀어져 버렸다. 지갑이 있었다. 카드와 현금이 들어 있었고, 얼마 전 다녀온 일본 여행에서 남은 엔화도 남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여권이 함께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장 니스에서 파리로 넘어가는 비행기도 타야 하는데 여권이 없으니 그것도 못 타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다면 스마트폰은 들고 다녀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점일까. 


        다행히 바로 서울에 계신 아버지와 통화가 되어 카드는 막았고, 여권 문제로 프랑스 영사관과 통화를 시작했다. 여기서 잠깐. 프랑스는 점심시간이 무척 길다. 점심시간은 무척 길고, 업무 종료시간은 빠른 편이었던 것 같다. 잠깐이었지만 프랑스 사회와 문화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무튼 점심시간에 걸려 통화가 힘들고 업무 종료가 빨라 통화가 잘 되지 않았다. 겨우 연결되어 물어보니 영사관은 파리에 있으니 어떻게든 이동을 해서 파리까지 오라는 것 말고는 영사관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였다. 서운했지만 그게 현실이었고, 일단 카드는 막았으니, 어떻게든 파리까지 가야 하는 상황으로 답은 나왔다. 다만 어떻게 갈지가 고민이었다. 


        털린 차를 처음 보고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던 것이 사실이나, 어찌 된 영문인지 어른스럽게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곧 들었다. 짜증을, 화를 낼 수도 없었던 상황이지만, 무엇보다 나와 평생을 살아야 할 사람이 옆에 있음이 큰 힘이었다 확신한다. 이 사람을 위해서라도 당황하지 말고 담대하게 해결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동시에, 또 함께라는 생각이 들어 이내 불안한 마음이 많이 사라졌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일은 몇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아도, 당장은 힘들었던 일이지만, 각자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앞에 닥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를 먼저 배우게 해 주었던 일인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일은 벌어졌고, 해결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유리창이 깨진 차를 끌고 인근 경찰서를 찾았다. 


        여권마저 잃어 더 잃을 것도 없는 나였지만, 마냥 마음을 편히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파리까지 가는 비행기를 못 타게 되었으니, 기차를 타야 했다. 니스 시내 구경도 잠시, 니스 역으로 향해야 했다. 계속 차에서 들고 내리지 않았던 가방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다. 그나마 티켓도 쉽게 구한 것이 아니었다. 앞서 프랑스의 아주 긴 점심시간과 이른 퇴근에 대해 적었는데, 이번에는 파업이 문제였다. 뉴스에서나 보던 프랑스 파업. 바로 그 날이었다. 철도 종사자 파업으로 역에서 티켓을 끊는 것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다행히 티켓을 구할 수 있었고, 게다가 일등석밖에 남지 않아 비쌌다.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영사관에 가야 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우여곡절을 치러 가며 유리창이 깨진 렌터카를 다시 공항에 반납하니 해가 졌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런 소동 속에서도 시내의 여유로움은 역설적이었다. 하루 온종일 스스로를 자책해 가며, 넘어가지 않는 식사를 해 가며 바라본 니스와 사람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반대 세계였다. 나를 뺀 도시도, 사람도 모두가 휴식에 취해 있었다. 끝도 없이 화창한 하늘만큼이나. 몇 달 전부터 사진으로만 보며 가슴에 담았던, 하지만 코 앞에서 포기해야 했던 해변이 억울했고, 넓은 대로변에 낮게 자리 잡은 건물들, 그 가운데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트램도 가슴 아팠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조용히 가슴을 치던 그 하루는 짧은 둘러봄에 묻어야 했다.

니스 시내를 오가는 트램
가슴 아팠던 화창함

        집주인은 우리의 하루를 듣고는 함께 안타까워했다. 여권이 없어 비행기를 타지 못해 새벽 기차를 타야 하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새벽 일찍 택시를 불러주었다. 마음에 상처는 남았지만, 하루는 저물고 사건은 일단락되기 마련이다. 큰 사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감당할 만큼이라 감사했다. 혹여 감당하지 못할 더 큰 사건이었다 하더라도, 아마 아내가 함께였으므로 감당해 냈을 것이다.


        피곤했다. 우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동틀 무렵에 짐을 챙겨 주인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니스 역으로 향했다. 전날엔 몰랐는데, 맑은 정신으로 다시 마주한, 휴양 도시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야자수가 군데군데 둘러있는 니스 역사의 모습은 떠나기 아쉬운 마음만 더 크게 만들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긴급여권을 만들 증명사진을 하나 찍고, 광장 앞 작은 카페에서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었다. 허접한 증명사진을 들고 단출한 식사를 마친 우리는 파리로 떠나는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달리는 기차 안에서 바라본 프랑스 남부의 목가적인 모습이 선물처럼 느껴졌다. 옛집들이 띄엄띄엄 그림처럼 서 있는 언덕 언덕을 지나면 눈이 쌓인 산맥이 나오기도 한다. 비행기를 탔더라면 보지 못했을 장면들이다.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우리는 니스에서 신혼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파리에 도착할 수 있었고, 겨우 영사관에 들러 긴급여권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나라 긴급 단수여권은 파란색이다. 득템


        서울에 돌아와서도 니스에서의 사건은 한참을 회자됐다. 아내는 SNS에 신혼여행이란 마치 신입사원 연수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는 글을 남겼다. 연수라고 하니 조금 딱딱한 표현인 듯한 동시에 대단히 적절한 표현이기도 했다. 앞으로 평생 함께 할 삶의 출발점에서 함께 마주한 첫 사고. 길을 잃었을 때 어떤 길을 택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인가 함께 고민한 것 그 자체만으로도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해 준 큰 가르침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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