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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Apr 24. 2020

코로나로 인해 나는 인종차별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2020년 2월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 

2020년 2월 중순부터 인 것 같다. "Corona Virus!"라는 말 이등 뒤에서 스치듯 들려와 고개를 휙 돌려 보지만 따지기도 뭐한 상황을 몇 번 겪었다는 지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는 취리히 한복판에서 홍해 바다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는 제보도 들린다. 그때까지만 해도 직접 그 인종차별을 당한 게 아니라 크게 마음에 와 닿진 않았지만 3월 초부터는 그 말로만 듣던 코로나 인종차별이 나에게 이틀에 한 번꼴로 찾아왔다. 보통 인종차별하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놈들이 아니란 걸 머리로 이해는 하지만 이번 코로나로 인한 인종차별은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랬다. 


Youtube에 보면 10대 후반의 애들이 욕을 하는 것은 물론 심각해지면 말싸움으로 이뤄지는 걸 봤는데 

다행인지 아닌지 나는  당장 면전에 대고 따질 수가 없는 경우와 같이 애매하게 끝나는 경우가 대 다수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애매하게 한다고 내가 상처를 애매하게 받는다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10살 정도 보이는 애들이 갑자기 내 옆을 지나갈 때 옷깃을 훔쳐 코에 대는 동작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었을 때는 그 애들을 따라가 도대체 부모가 어떻게 가르쳤길래 하고 따지고 싶기까지 했다.  내 정신건강에 좋으라고 주문을 외우듯, '애들은 애들이니까..'라고 아무렇지 않게 미성숙한 것으로 넘기려고 했으나 내 마음은 어느새 작은 상처가 모여서 크게 곪아버리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혼자 걷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하나하나씩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이런 것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외부인으로부터의 어떠한 것도 부정적으로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웃지 않고 보통으로 이야기했을 뿐인데 나에겐 "원래 이렇게 이 사람이 불친절했었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2020년 4월 


코로나의 심각성, 그리고 이것이 단순히 아시아 사람들이 이 질병을 터트린다는 것이 아닌 것을 충분히 대중매체에서 알려서 일까?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상황과는 확연히 달라졌기에 사람들은 그 애매한 인종차별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적어도 그 코로나는 인종을 가리지 않고 퍼져대고 있고 실제로 이 질병이 먼 나라 이야기 아닌 심각하게, 정확히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는 아직도 곪아버린 후유증을 가슴속에 앉고 살고 있다. 

사람이 없을만한 오후 2시, 나는 5월에 출발할 파리행 기차 티켓을 환불하러 기차역 창구로 향했다. 코로나 여파로 2m의 간격으로 줄을 서야 한다는 표기의 스티커가 유난히 눈에 뜨인다. 요즘은 어딜 가나 이 간격 스티커가 있으니 어느곳을 가든 입구부터 찾는 것이 습관화되어있다. 내가 창구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가서니  여자가 대기를 하고 있었고, 내가 여자 뒤에 줄을 스려고 하자 여자는 나를 몇 초 이상이나 계속 응시를 한다. "왜 나를 쳐다볼까? 여자는 상황에 나를 쳐다볼 이유가 없는데 코로나 때문일까?" 보통 같았더라면 나는 내가 생김새가 다른 외국인이니 쳐다보는구나 싶어 넘어갈 일이지만 이 기분과 상황을 3월부터 꾸준히 학습해온지라 그 여자의 눈빛을 피하고 싶어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가방 안에 있는 선글라스를 확 써버렸다. 



아주 오래전 호주, 시드니에서 나는 호되게 인종차별을 당한 기억이 있다. 당시 나는 너무나도 화가 나서 호주 경찰서에 신고를 하려 핸드폰을 꺼냈다. 근데 황당하게도 112는 아닌 것 같은데 하며 호주 경찰서 번호를 몰라 전화를 못하는 아주 우스운 상황이 있었다. 이후 단지 나의 외모가 아시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혹은 영어를 못해서의 이유가 대다수였는데 별별 시답지 않은 것으로도 인종차별을 겪다 보니 나에게 호주는 '이방인'으로밖에 취급을 하지 않는구나라고 깊이 원망했던 시절이 있다. 아마, 내가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정도만 대처를 했더라면 나는 분명 시드니에서 더 즐거운 생활을 했었을 텐데, 이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코로나가 종결되고 백신이 나와 전 세계 사람들이 예전과 같이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이 후유증은 내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당분간은 불쑥불쑥 내 주변을 서성일 것만 같다. 호주에서의 쓰린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사는 이곳에서도 나를 위한 "대처"를 하려 시도를 해보려 했지만 생각만 했을 뿐 끝내 나는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저 남편의 조언대로 타인으로부터 망쳐진 내 기분을 3초 만에 회복하는 기술을 어느 책에서 읽고 그걸 실천하여 빠른 기분 전환으로 겨우 되돌리고 그것마저도 안 되는 경우 고 칼로리 때문에 아껴먹던 더블크림치즈와 머랭을 사러 슈퍼에 가곤 했다.  


누군가에게 이 코로나는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가득 찰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일상생활을 그리워하며 이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그리고 나에겐 코로나가 인종차별의 후유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 호주에서 구급차, 경찰서를 포함해 모든 긴급번호는 너무 쉬운 000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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