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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llii May 06. 2023

내 계획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때 -

마음의 고집을 내려 놓다.

수개월 전에 목표했던 일정에 차질이 생겨,  공항으로 가져갔던 짐들을 집으로 그대로 가지고 왔다.

처음에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받아들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갑갑하고 아쉽고 낭패감이 몰려왔다. 이번에도 나의 계획과 준비의 문제가 아니라, 날씨와 상황이 나를  묶었다.  여행 전 날부터 강아지가 몹시 아파서 입원을 해야 할 상태가 되었고, 강풍과 비로 인해 비행기가 결항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이 컸는지 싸놓은 짐을 풀지도 않고 그대로 두었다.  신발 하나도 가지런히 놓여있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이었지만, 오늘따라 나는 설거지를 한가득 쌓아놓고, 여행 가방은 펼쳐놓고, 박스도 뜯다 말고 여기저기 늘어놓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미없는 영화를 꾸역꾸역 보면서 맛이 강렬한 배달음식을 시켜서 먹었다.  다음 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보였지만, 오늘은 그냥 멍한 모드로 넋을 놓았다. 주변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기저기 쓰다 만 컵들, 처리해야 할 쓰레기들, 뜯다 만 박스, 쌓여있는 빨랫감. 어수선한 책상 그리고 읽지 않은 수십 개의 카톡들...

에드워드 호퍼(조세핀 호퍼)


여기서 문제를 다시 깊게 들여다보면, 7명이 가기로 예정된 여행이었으나, 하루 전날 가기로 한 나와 일행은 비행기 결항.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와 기상 악화를 걱정하며 포기했고,  다른 4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다시 예매하여 계획을 감행했다.  어렵게 도착한 그들은 결국 너무나 환상적인 날씨에 푸르른 백록담을 선물로 받고 집에서 사진을 보고 있는 나는 허망함과 아쉬움 그리고 속상함 여러 감정으로 범벅이 되었다. 이 날을 위해 수개월 동안 동네 뒷동산을 매일 오르며 준비했고, 일정을 조정했으며, 3박 4일 여행으로 설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집에서 재미없는 넷플릭스만 보고 있다.


  10년 전에도 이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물론 더 큰 사건이었지만.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논문을 쓰고 졸업을 위해서 일도 줄이고, 집도 작은데로 옮겨서 실험연구를 하며 공부에 집중했다. 아침 9시에 학교에 가서 컴컴한 밤에야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 모든 것을 멈추고 해외 대학에 가야 했다.  좋은 기회였지만, 나의 결정이 아니라 지도교수의 권유였다. 출국을 위해 집을 정리하고, 논문을 중단하고,  일도 정리했다. 외교부 면접도 보았고 해외 대학에 내정된 자리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되었다.  해외 학교 간의 정치적인 문제로 우리 학교 전체가 밀려난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1년을 넋을 놓고 지냈다. 돌아갈 집도, 일터도 없었다. 학교에서 시작된 문제니 교수도 보기 싫고 논문도 다시 쓰고 싶지 않았다. 1년을 어떤 목표도 없이 매일매일 방황하며 살았다.  나에게 일어난 이 예측하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어, 나의 운이나 팔자를 연민하면서 나를 소비했다.


분명 10년 전의 일과 이번 한라산 등반과는 문제의 크기가 다르지만,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를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는 변한 게 없다. 플랜 A만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 문제의 크기가 다른 만큼 하루를 방황한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집은 난장판을 만들고 하루 종일 거지꼴을 하고 있다.


삶에는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Plan A 가 되지 않았을 때는 Plan B를 세워 빠르게 움직이면 된다. Plan B 가 안되면 Plan C를 하면 된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버스가 안 온다고 요즘 같은 시대에 그 버스만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당장 Plan B로 돌입한다.


나의 Plan B 내일 새벽 4시! 한라산 대신 태백산으로 간다. 민족의 신산(神山)인 태백산에서 정기를 받아오기로 한다. 인생에는 다양한 선택과 결과가 있고, 그것들에도 유연한 시선과 대처가 필요하다.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예측할 수 없는 일에는 불안이 따르지만 반대로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기대와 설렘을 품은 나의 내일을 위해 오늘을 잘 정돈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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