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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27. 2020

층간소음

모두 가해자이고, 피해자인 것을.


저녁 아홉 시 넘어 현관 벨이 울리면 당황스럽다. 더군다나 요즘은 택배도 비대면인 세상 아닌가.

이 시간에 누굴까? 나가보니 윗집 여자였다. 그녀는 성격이 괄괄하고 활발한 편이라 사교성이 좋다.


-딸이 미국에서 애기 데라고 왔어요. 한 달간 있을 텐데, 많이 시끄러울 거예요. 남편이 얼른 내려가서 양해 구하고 오라고 야단이에요.

-아, 괜찮아요. 편하게 지내라 하세요. 저흰 신경 쓰지 마세요.

-저녁 아홉 시면 아기가 자거든요. 밤에는 괜찮을 거예요.

그녀는 평소와 달리 소심해 보였다. 


피곤해서 낮잠을 잔 탓인지 새벽 3시 무렵 쿵!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아기가 쉬 마려워 칭얼대서 급하게 화장실에 데리고 갔으리라. 그리고 나니 말똥말똥 잠이 달아나 버렸다. 우리가 그녀 집 소음을 이해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일 년 전, 딸이 아파트를 얻어 가족이 모였을 때 -이전엔 여건이 안 돼서 큰애는 딸의 시집에서 작은 애는 우리 집에서 키웠다 -새 집에 대한 기대는 그날 밤 깨졌다. 밤 11시에 아랫집에서 시끄럽다고 올라온 거다.


네 살, 다섯 살 사내아이를 키워 본 사람들은 알리라. 이건 도대체 제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떨어져 살았던 두 애가 만났으니, 주도권 싸움하느라 십 분도 조용할 시간이 없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바닥에 제법 돈을 넣었건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수시로 딸이 전화했다.

-엄마, 어떡하면 좋아? 자꾸 전화 오는데. 경비실에서도 오고.

-케이크이라도 사들고 찾아가 보면 어떨까?

-떡 돌렸는데.




딸은 아랫집을 찾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사하는 날도 봐주지 않는 이웃이라 이미 마음이 상했다. 결국 집 전체에 8센티 두께의 매트를 다시 깔았다. 집에 들어가면 마치 솜이불 위를 걷는 것처럼 발이 푹푹 빠진다.


그러고 몇 달이 지나 아랫집이 잠잠하다 싶으니 이번에는 옆집에서 전화가 왔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대학생 아들이 왔는데 아이들 방과 옆집 학생 방이 붙어 있었다. 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A4 두 장 분량의 편지가 현관문에 붙어 있었다.




편지는 특이하게 한국 건설회사의 배려 없는 건축에 대한 비평으로 시작해 아이들을 돌보는 할머니 목소리가 시끄럽고(아이들을 뛰지 못하게 하려니 할머니는 계속 목소리가 커졌다), 부모가 아이들을 제대로 훈육하지 않는다는 나무람으로 마쳤다.


우린 무서웠다. 딸도 나도. 세상이 험하니.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을 떠올리게 됐다.


편지 건은 고민 끝에 딸도 똑같이 편지를 써서 그 집에 전하는 걸로 정리했다. 우리는 층간소음(아니, 이 경우엔 옆집 소음인가?)을 막기 위해 이러이러한 처치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아이들을 주의시키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맘 카페에 단골로 오르내리는 불만이 층간소음이다.

-밤늦게 손님 치르나 봐요, 어디에 전화하면 돼요?


아랫집에서 소음이 올라온다고 2층 집이 항의하는 경우도 봤다. 다음날엔 보복성으로 한밤중에 윗집 남자가 뛰는 것 같다고 1층 집에서 올렸다. 아이들이 놀라서 불안에 떨었다는데,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자세히 보면 모두 가해자이고, 피해자인 것을.


아기를 2년 데리고 있었는데 아랫집에서 한 번도 항의한 적이 없어서 고마웠다. 부부가 직장 다니는지 낮에 집에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얼굴도 잘 모른다. 그 무렵 미안한 마음에 인사라도 할까 싶었는데, 하지 않았다. 괜히 말 꺼냈다가 온갖 소음의 원인이 우리 집인 줄 알아 아랫집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까 두려웠다. 사람을 믿지 못한 거다.




이십 년 전, 지금의 아파트에 이사 왔을 때 담장 바깥은 사방이 온통 밭이었다. 봄이면 거름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주민들이 교대로 민원 넣느라 관리실이 꽤 시끄러웠는데, 그때 윗집 아저씨가 이런 말을 했다.


-내 밭이라 생각하세요. 작물 잘 자라게 뿌리는 건데. 그리 생각하면 거름도 구수합니다.


얼마 전 손자들이 왔을 때 아파트 근린공원에 데리고 갔다. 넓은 잔디밭에 도착하자 애기들이 이러는 게 아닌가.

-아아아아아!


고함을 지르더니, 제자리에서 발로 잔디밭을 탕탕 굴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는 녀석들을 보노라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 아이들이 이층 침대를 사 달라는데.

-위험하잖아, 그거 말고 아예 이참에 안방의 침대를 아이들 방으로  옮기는 게 좋지 않을까?

-가구 끄는 소리 나면 아랫집에서 또 야단할 텐데….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우리 아이도 어릴 때 저렇게 뛰었지, 귀한 아기들이지, 생각할 순 없는 걸까?


 나는 딸네 아랫집에도 얼른 손자가 생기고, 옆집 학생도 결혼해 얼른 아기를 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층간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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