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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r 18. 2021

식물인간

키오스크



한 동안 자동차를 몰 일이 없었다. 며칠 전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보러 갔다가 기겁했다. 열흘만인데 풀숲에서 떨어진 나뭇잎, 황사 가루, 나무의 진이 차를 완전히 덮고 있었다. 울타리 나무 아래 세워 둔 게 잘못이었다. 조심스레 세로 몸으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앞 창에 물을 뿜고 윈도 브러시를 작동하니 그나마 앞이 보였다. 급히 세차장으로 달려갔다. 


주유소 딸린 이곳 세차장든 것이 '셀프'다. 기계라면 어리바리한 나는 셀프가 싫고 불편하다. 우두커니 서 있으니, 사무실에서 청년이 나왔다. 3만 원어치 기름을 넣으면 자동차 세차에 할인 요금이 적용된다고 했다. 그간 나는 반대쪽에 있는 주유소를 다녔기에 셀프 급유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곳에는 노인 두 명이 늘 급유하러 들어오는 차를 기다렸다가 기름을 넣어줬다.


휘발유, 고급 휘발유. 어느 것을 넣어야 하나? 기계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청년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 청년이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나는 기름을 넣은 후 주유구 마개를 잊어버리지 않고 닫아야 한다는 걸 기억하려고 애쓴다. 누가 마개를 자동차 지붕 위에 얹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셀프 주유'만 보면 늘 그 장면을 떠올린다. 부지런히 달려와서 시끌시끌하게 수다 떨며 기름을 주문받던 활기찬 청년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오가는 사람 없이 기계만 덩그러니 있는 주유소의 시멘트 바닥이 유난히 하얘서 눈이 부셨다.

세차 기계 속으로 차를 조심스레 밀어 넣는다. 마음이 오그라든다. 앞 쪽에서 청년이 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준다. 그나마 청년이 지켜보고 있으니 덜 불안하다.


핸드폰의 공인 인증서가 사라졌다. 다섯 번의 기회에 모두 엉뚱한 번호를 넣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컴퓨터에 담긴 인증서를 갱신하고, 핸드폰 것도 갱신했더니 뭔가 뒤엉킨 모양이다. 은행 창구에서 해결하라는 문자가 떴다.

은행 직원은 안내자에게 가서 직접 컴퓨터에 인증서를 넣는 방법을 배우라 한다. 예전에는 공인인증서 신청을 용지에 작성하면 됐다. 왜 이렇게 복잡해졌을까? 통장을 하나 만들려 하니 직원이 체크 표시를 하라며 용지를 내민다. 읽어보니 보이스 피싱을 의심하는 내용이다. 나이 든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의 보이스 피싱 방지 매뉴얼인 것 같았다.

안내자가 비밀 번호를 바꾸라 한다. 번호는 연속된 숫자가 아니어야 하고, 영어에 부호까지 들어가야 한다. 게다가 6개월마다 바꾸어야 하고. 나는 다음 기회에 하겠다고 미룬다. 번호를 바꾸면 다시 외워야 하니 번거롭고 귀찮다.


그래도 나는 아직 텔레뱅킹을 고수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훨씬 낫다. 몇몇 친구는 핸드폰의 은행 업무 기능을 아예 믿지 않는다. 누가 돈을 빼가기 쉽다고 여긴다. 불완전한 시스템으로 본다. 내가 편리함을 아무리 설명해도 마이동풍이다. 절대 모험을 하지 않는 신중한 성격이거나, 전자기기 사용을 힘들어하는 성향이 원인으로 보인다. 어느 고위직 공무원이 퇴직하고 나니 은행 일처리를 하나도 모르고 컴퓨터도 못해서 막막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간 부하 직원이 이런 일들을 모두 처리해줬기 때문이다.


셀프 주유를 할 때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손에 기름이 묻는 것이 싫고, 주유기를 잡는 것이 낯설다. 출발하려고 시동을 걸다가 다시 내려 기름 넣는 곳을 확인한다. 돈이 들더라도 사람에게 서비스를 받고 싶다. 내가 별난지 모른다. 편의점, 슈퍼의 물건도 계산원 없이 바코드를 찍어 키오스크로 계산하는 세상에. 휘발유값싸다고 셀프주유소만 찾아다니는 친구도 있는데.


나이 들면 어느 순간 자동차 운전도 접어야 할 것 같다. 언제까지 운전이 가능할까? 지난번에 남편은 일흔다섯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지금의 추측일 뿐, 그 나이 넘어서도 운전을 하고 싶을지 모른다. 여든 중반에도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건강한 이들이 많으니. 운전을 못 하게 되면 행동반경이 확연히 줄어드니, 인생의 즐거움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마음 내키면 차를 몰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즐거움.


나이가 들면 귀가 어두워지고 동작이 어눌해지면서 순발력이 떨어진다. 마음은 가능하다 싶어도 몸이 따라오지 않는다. 그래서 다치는 경우가 많다. 친구들 대부분이 쉰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 번씩 크게 다쳤다. 발목을 접질리거나, 겨울에 넘어져서 팔목을 다치거나. 교대로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아홉수'란 말이 떠올랐다. 그 무렵 이런저런 사고와 병으로 병원 출입이 잦았다. 다리를 다치고, 폐렴에 걸리고, 기관지가 나빠져 코수술을 해야 했다. 예전 사람들이 환갑을 기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사히 잘 넘겼다'는 뜻 아닐까?

몸은 갈수록 쇠퇴하는데 기계는 날로 발전한다. 그러니 기계를 따라갈 수 있을까? 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노인들은 주변과 교류할 수 없는,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되는 것 아닐까?


마흔다섯 무렵, 슈퍼에 갔는데 우유갑에 적혀있는 유통기한 날짜가 보이지 않았다. 노안이 온 순간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건 갑작스럽게 어느 순간 닥쳤다. 전자기기 사용법이 적힌 자잘한 글씨도 읽을 수 없었다.

요즘은 나름 꾀가 생겼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확대해 본다. 도시가스 검침 계량기의 숫자도 마찬가지다.

특이한 게 노안이 와도 근시인 사람은 일정한 거리에 있는 그리 작지 않은 글자는 그냥 볼 수 있었다. 음지가 양지가 된다더니. 맨 눈으로 핸드폰 문자를 볼 수 있게 된 건 축복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시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카톡의 반응이 늦는 게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문자를 읽기 힘들어서다. 전자기기에 대한 적응이 더딜 수밖에 없다.


며칠 전 키오스크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 음식 주문에 실패한 사연이 온라인에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엄마가 집 앞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주문하려는데 키오스크를 못 다뤄서 20분 동안 헤매다 그냥 집에 돌아왔어요. 화나서 전화했는데 말하다가 엄마가 울었어요. 나는 이제 끝났다면서요.”


그녀는 본인이 바보 같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햄버거 하나 혼자 사 먹지 못하니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다고.


여행에서 길을 찾다가 지나가는 이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많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들은 손짓 발짓으로 길을 가르쳐 줬고 나는 대부분 알아들었다. 키오스크를 다루는 일도 여행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낯선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익숙지 않은 기계를 다루는 일도 힘든 일이다. 이럴 때 주변 사람에게 기계 사용법을 물어보면 좋겠다. 친절한 사람들을 나는 낯선 기계 앞에서 많이 만났다. 만약 그런 천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면 가게 주인을 찾아서 주문을 받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처음 보는 기계 하나 못 다룬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그런 걸로 식물인간이 될 수는 없다. 고객은 그야말로 왕이고 갑 아닌가. 나이 들수록 당당하지는 않더라도 위축되지는 말아야 한다.  




동네에 햄버거 가게가 생겼다. 간판을 본 친구가 미국에서 먹었던 햄버그인데 단순하고 맛있다고 일러줬다. 얼마 후 햄버거를 사러 갔는데 어디서 주문해야 하는지 몰라서 카운터로 갔다. 주방에서 사장이 기계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서 주문하세요." 입구에 키오스크가 한 대 서 있었다.


나는 한숨을 깊이 쉬고 기계 앞에 섰다. 사실 시간만 많이 준다면 무엇을 못할까 싶다. 이것저것 눌러보고 반복하면 길을 찾을 수 있다. 컴퓨터를 처음 만질 때도 그랬다. 하지만 이곳은 집이 아니다. 뒤에 사람이 다가오는 기척이 있으면 불편다. 버벅 거리거나 당황한다. 얼른 주문을 마쳐야 할 것 같아 초조하다. 그런데 메뉴판도 익숙지 않고, 뭘 고를지도 정하지 않았다.


세트 메뉴를 시킬까, 단품으로 시킬까 결정하고 햄버거의 종류도 봐야 한다. 치즈 넣은 걸 고를까? 콜라를 곁들일까, 커피를 마실까 고민한다.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잘못 클릭해서 처음부터 다시 주문하기도 다. 나는 가끔 뻔뻔해지고 싶다. 뒤에서 누가 기다리든지 말든지 천천히 들여다보고 주문하고 싶다. 나는 결국 세트 메뉴 하나를 골라 주문을 클릭한다. 주문서를 뽑아 주방에 갖다 줬다.


두 번째로 햄버거 가게에 들렀을 때 주문하던 중 잠시 생각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 두 번째여서 긴장을 덜 했다. 나이 듦의 신호는 이렇게 사소한 것에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지 모른다. 주문서 나오는 순간을 보지 못 했다. 모든 걸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데. 이건 친구들이 텔레뱅킹을 고수하는 것과 비슷하다. 망설이던 나는 할 수 없이 다시 주문해 주문서 두 장을 카운터에 들고 갔다. 두 번 주문했는지 모르니 결재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주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햄버거는 2인 분이 나왔다. 다음번에는 이런 실수를 안 하겠지. 한 번 더 가게에 가서 실험해 보고 싶은데, 그 이후에 가지 못 했다.  


지난번에 거실에서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남편에게 냉장고에 넣어달라고 아이스크림 통을 줬다. 그날 나는 서너 번 냉장고 문을 여닫았지만 냉장실 정면에 놓인 분홍색 아이스크림 통을 무심하게 봤다. 저녁에야 알아차렸다. 아이스크림은 녹아서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아이스크림을 냉장실에 넣은 남편이나, 그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아내나 막상막하다. 그렇게 사소한 이상한 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게 나이 듦의 신호일까? 뇌 신경망의 어느 부분이 느슨해진 걸까?

키오스크에 얹혀있는 주문서를 나는 은행에 사람들이 버린 번호표로 이해했다. 나중에 되돌아보니 얼토당토않은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여겼으니 괴이한 일이다.


기계와 함께하는 인간을 호모 마키나(Homo Machina) 라 한다. 인공 지능과 로봇이 자연스레 우리의 삶을 파고들었다. AI가 음악을 틀어주고, 로봇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느라 집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나이와 관계없이 기계와 자주 접촉해 익숙해지면 좋겠다. 무언가를 성취해 앎을 키워 나가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고 영향력도 생긴다. 주변에는 폰으로 은행에 송금하거나, 컴퓨터의 간단한 기능을 아는 것, 심지어 카톡방을 개설하거나 사진을 전송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단순히 기능일 뿐이니 배우면 된다고 권하지만 성향의 차이인지 그들은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 앞으로는 전자기기 사용에 익숙한 정도가 노인 판별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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