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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pr 01. 2021

어느 하루

카페에서


웃을 일 없는 나날들이 이어진다. 변화 없는 매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따금 예기치 않은 일들을 하게 된다. 얼마 전부터 아침에 오늘 하리라 생각치 않던 일들을 점심 무렵이나 오후에 불현듯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베란다에 서서 무심코 내다본 강변 산책로에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벚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을까? 지난가을에 그렇게 했다. 시월 막바지였는데, 그때는 추워서 책 읽기를 성공하지 못했다. 한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더니 산책할 때는 못 느끼던 추위가 겉옷을 뚫고 들어와 들고 간 모직 스카프를 목에 걸치다 등에 두르다 했다. 보온병에 든 커피를  마셨는데 강변에서 책 읽는 여자가 드물어서인지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보곤 했다. 시간이 지나자 춥기도 하고, 심드렁해지기도 해서 책 읽기를 접고 산책로로 내려가 늘 걷던 길을 한 시간 정도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생각이 나서 이번에도 책을 들고나갔다. 봄 볕이 따듯했다. 안에서 보기에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던 벚나무 아래에 피크닉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었다. 모두 비슷한 상황인지 모른다. 혼자 집에 있는 게 갑갑해진 거다. 벚나무 아래 나무 계단에  여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계단은 운동장 관중석 의자 비슷하게 폭이 넓다. 간단한 도시락도 펼쳐놓을 수 있다. 다가가니 재잘 대던 여자들이 나를 쳐다본다.


조용히 혼자 있는 게 좋은데, 하다가 혼자인 게 싫어서 으로 나왔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한 여자의 목소리가 크고 높다. 뭔가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연신 친구에게 동의를 구한다. 무심한 척, 안 듣는 척하며 책을 펼친다. 여자의 목소리는 더 커진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신경이 자꾸 여자에게로 간다. 한 두 쪽 읽었을까. 강아지를 끌고 산책로를 걷던 여자가 방향을 틀어 계단을 올라온다. 나와 여자들 사이에 자리 잡고 앉더니 핸드폰을 꺼낸다. 강아지가 칭얼댄다.


나는 책 읽기를 포기하고 일어섰다. 어디를 갈까? 아파트를 벗어나 20분쯤 걸어가면 슈퍼가 있다. 거기에서 좋아하는 비스킷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를까 생각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나는 아직 바깥에서 혼자 밥 먹는 게 불편하다. 김밥 한 줄과 비스킷을 사서 카페에서 커피를 곁들여 먹기로 마음 먹는다.




예전에 아기를 돌볼 때, 일주일에 한두 번 베이비시터가 오는 날이면 이 카페에 갔다. 그간 경기 탓인지 커피 값이 내렸고 컵 사이즈는 커졌다. 카페 2층에는 이십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노트북과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따금 수다 떠는 여자들이 오긴 해도 꽤 넓은 공간에 테이블이 멀찍 멀찍 놓여 있어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고요하다. 무엇보다 몇 시간을 있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다. 2층 계단을 올라올 때 간호사복을 입은 여자가 스치며 내려갔다. 그녀는 잠시 병원 바깥에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녀가 잠시 머물렀을 자리에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다. 오늘은 운이 좋다. 나는 얼른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 자리는 조명이 좋고 의자도 푹신하다. 음악이 크게 느껴지지만 살짝 김밥을 꺼내 먹을 때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가려줘서 고맙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내뿜는 긴장감이 좋다. 같은 공간에 누구와 함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집에서 있을 때와 달리 집중이 잘 된다. 책장이 잘 넘어간다. 책 한 권을 너끈이 읽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후 늙수그레한 남자가 들어와 건너편 구석자리에 무겁게 몸을 던졌다. 그는 핸드폰으로 방송을 듣고 있었다. 정치인 이름이 들리는 걸로 봐 선거 소식을 전하는 유튜브 방송 같다. 음악 사이에 남자가 듣는 방송이 끼어든다. 신기하게도 책을 읽을 때 신경쓰이지 않던 음악이 남자의 핸드폰 소리가 귀에 닿으면 증폭되어  함께 들린다.


노란 조명 아래 의자에 파묻혀 있는 남자가 울적해 보인다. 퇴직한 남자 같다. 이어폰을 끼고 들으면 좋으련만. 그나마 카페를 채우는 음악이 그의 폰 소리를 가려줘서 다행이다. 남자에 대한 관심을 끄고 나는 다시 책에 집중한다.


내가 읽는 책은 『세계를 움직인 돌』이다.  보석에 대해서 써놓은 이런 류의 책을 나는 처음 접했다. 반지도 끼지 않는데, 루비와 에머랄드도 분간 못하는데  왜 이런 책을 빌렸을까? 오랜만에 간 도서관에서 누가 읽고 반납한 책이 손에 우연히 손에 닿았다. 표지 그림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안데스의 왕관’다.



1593년 스페인 세공사 24명이 투입되었다. 에메랄드 443개가 장식된 황금 왕관은 1660년 완성되었다가 1770년 아치를 올렸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16세기 아메리카에 천연두가 창궐했다. 침략자인 스페인 군인들을 통해 들어온 바이러스가 맹렬한 기세로 확산되어 원주민의 90퍼센트를 몰살시켰다. 콜롬비아 포파얀의 가톨릭 주교는 주민들에게 성모에게 기도하라고 말했다. 기도 탓인지 천연두가 포파얀 지방을 피해 갔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감사의 마음으로 십시일반 금과 에메랄드를 모아 성모상에 장식할 왕관을 제작했다. 십 여년에 걸쳐 제작한 왕관은 불안과 공포, 희생양을 찾는 혼란의 시기를 희망의 연대로 넘긴 인류사의 산 증인이 되었다.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는다. 긍정적 생각보다는 부정적 생각이 만연해 누군가에게든 책임을 전가하료 한다. 사회가 안정되지 못하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방어막이 사라진다. 전쟁과 지진, 대참사가 있을 때마다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책은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에게로 흘러간다. 샤일록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을까? 보석 세공업에 대한 설명이 자연스레 당시 유대인의 경제적 상황으로 넘어간다.


'유대인 난민으로 베니스의 경제는 번영했지만 그들은 토지나 농장을 소유할 수도, 평범한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천대받는 고리대금업에 종사해야 했다. 샤일록 역시 비좁은 게토에 살며 빨간 모자를 쓰고 다녔다. 길에서 느닷없이 얼굴에 침을 맞는 모욕쯤은 일상이 된 유대인 고리대금 없자였기에 끝날 줄 모르는 악몽에도 애써 울분을 참아야 했다.' p146


고대부터 탄압받은 유대인들은 북아프리카를 거쳐.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했다. 1492년 스페인의 이사벨라 1세가 이교도 탄압으로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면서 그들은 유럽, 아프리카, 영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유대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다. 농사가 불가능했고, 길드에도 가입할 수 없으니 수공업도 허용되지 않았다.

유대 사회에서 세금을 걷는 세리나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이들은 사회의 하층민이며 경멸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을 하느님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라 여겼다. 단지 이방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건 허용되었다.


"너희는 동족에게 이자를 받고 꾸어주어서는 안 된다. 돈에 대한 이자든 곡식에 대한 이자든, 그밖에 이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신명기 23장 20절 말씀은 다음 21절로 이어진다.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고 꾸어주어도 되지만 너희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고 꾸어주어서는 안 된다."

성경만큼 읽은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책이 어디 있을까 싶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대부업의 근거로 삼았다. 이교도와의 거래는 죄가 아니었다.


샤일록의 터키석 반지가 등장한다. 이 반지는 샤일록에게 아내에 대한 추억이 담긴 반지다. 터키석은 원래 터키에서 발굴된 보석이 아니다. 터키를 통해 들어온 보석이라 터키석이라 불렀다. 그러니 기독교도들에게 터키석은 이방인의 보석이었다. 샤일록의 딸은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기독교인이 되기를 원했다. 아버지의 터키석 반지를 원숭이 한 마리와 바꿔버린다.『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을 희화한 희극이지만 샤일록에게만은 비극이었다.


보석은 멋스럽고 소장가치도 높지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얼마 전 떠들썩 했던 영국 왕실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인터뷰에서 마클은 다이애나 비의 팔찌와 반지를 착용하고 나왔다. 그녀는 다이애나비가 그들의 난처한 상황을 옹호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원했던 것 같다.






수태고지 (얀 반에이크).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의 수태를 알린다. 천사가 전하는 신성한 메시지를 가슴에 달린 크고 푸른 사파이어가 강조하는 듯 보인다.

 


이 책의 저자는 학창 시절 세계사라면 질색이었다 한다. 1990년대 말 서울에 주얼리 브랜드 매장이 들어서면서 그녀는 친구들과 백화점의 주얼리 매장을 구경하러 다녔다. '작은 돌이 왜 이렇게 비싸게 취급될까'에 대한 궁금증이 뉴욕 GIA( 보석감정학교) 입학으로 이어졌다. 저자의 말에 의히면 뉴욕은 인종과 종교의 '샐러드볼'이었다. 온갖 주얼리 상점과 경매장, 박물관이 즐비한 뉴욕에서 그녀는 보석 시간 여행자가 됐다.




네 시가 되자 이르게 직장을 빠져나온 젊은이들이 군데군데 카페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가면 좋아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책 읽기에 지친 나는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겼다. 카페를 나와 아파트 쪽으로 걸아가는데 울긋불긋한 텐트가 눈에 뜨였다. 요즘은 오일 장이 무척 빠르게 다가온다. 날짜와 요일, 이번 주가 3월 둘째 주인지 셋째 주인 지도 가물가물한데 돌아서면 오일장이 다가와 있다.


검은 두건을 쓴 수녀님이 두부 장수의 리어카 앞에서 뭔가를 고르고 있다. 다가가자 인기척으로 알아챘는지 수녀님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아마 신자들의 이런 식의 접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인사하지만 마스크 쓴 얼굴이라 웃음이 전달되었는지는 모른다. 장보러 나온 수녀님을 붙들고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 얼른 자리를 뜨며 나는 예고 없이 비스킷을 불쑥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수녀님이 비스킷 봉지를 들여다본다.

"맛있어요."

한 마디 하고 나는 얼른 손을 저어 도망치듯 자리를 뜬다. 


난데없는 비스킷이 당황스러운지 수녀님은 계속 들여다본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엉뚱하지만 이전에 슈퍼에서 만난 친구도 내게 비스킷을 이런 식으로 던져줬다.


오늘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였다. 미리 계획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벚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으려다 비스킷을 사러 슈퍼에 들렀고 카페에서 반나절을 머물렀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운 걸 보니 하루를 잘 보낸 것 같다.

이따금 머무는 장소를 옮기는 게 좋은 것 같다. 공간이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 책읽는 것도 일종의 시공간의 이동이긴 하지만.



#세계를움직인돌, 윤성원, 모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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