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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pr 05. 2021

페르시아의 시인들

루미, 사디, 하페즈



몇 년 전 동창 밴드에 한 친구가 모임을 앞두고  이런 시를 올렸다.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꽃과 술과 촛불이 있어요.

당신이 안 오시면
이것들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당신이 오신다면
또한 이 모든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페르시아 시인 루미(1207-1273)의 시다.


그때까지 내게 아랍인들은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일 뿐이었다. 그들을 연상시키는 단어는 히잡, 부브카, 테러, 참수, 맹목적인 신앙, 같은 것이었다. 그들에게 무슨 좋은 게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런 시가 나오다니.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루미의 시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페르시아 시인의 시도 접하게 됐다.


페르시아 문학의 최고봉이란 평을 듣는 잘랄라딘 무하마드 루미는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이자 신학자이다. 루미는 아프가니스탄 발흐에서 출생했다. 경건한 금욕주의자였던 루미는 삼십 대 후반에 영혼의 친구를 만나 신성한 사랑을 깨닫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4만 수 이상의 초월시가 전해진다.


그의 시 몇 편을 소개한다. <여인숙>, <사랑이 왔다>, <사랑의 길>, <살다 보면>.


여인숙

루미

이 존재, 인간은 여인숙이라
아침마다 새로운 손님이 당도한다
한 번은 기쁨, 한 번은 좌절, 한 번은 야비함
거기에, 약간의 찰나적 깨달음이
뜻밖의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들을 맞아 즐거이 모시라
그것이 그대의 집안을
장롱 하나 남김없이 휩쓸어 가버리는
한 무리의 슬픔일지라도
한 분 한 분을 정성껏 모시라
그 손님은 뭔가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 내면을 비워주려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
암울한 생각, 부끄러움, 울분, 이 모든 것을
웃음으로 맞아
안으로 모셔 들이라
그 누가 찾아오시든 감사하라
모두가 그대를 인도하러
저 너머에서 오신 분들 이리니



사랑이 왔다

루미

사랑이 왔다.
그것은 나를 죽였으며 그 대신 사랑하는 이로 내 존재를 채웠다.
내게는 단지 이름만이 남아 있을 뿐
다른 모든 것은 그의 것이다.
그대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얼굴을 버려라.
그래서 그대의 마음을 온전히 그의 얼굴로 채워라.
내 가슴이여,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것을 그의 곁에서 발견한다.
내 영혼이여, 어디로 갔는가?
나는 그것을 그의 머리카락 속에서 발견한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실 때
나는 물속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본다.



사랑의 길

루미

사랑의 길은 장황한
토론이 아니다
그리로 들어가는 문은 거칠고
쓸쓸하다
새들은 그들의 자유로
하늘에 커다란 원을 그린다
어떻게 그것을 배웠을까?
그들은 떨어진다,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그래서 날개가 주어진 것이다



살다 보면

루미

나는 돌로 죽어 꽃이 되었다.
나는 꽃으로 죽어 짐승이 되었다.
나는 짐승으로 죽었다. 그리고 사람이 되었다.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죽음을 통해 더 보잘것없는 것으로 변한 적이 없건만
죽음이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적이 한 번도 없건만
내가 사람으로 죽으면 그다음 나는 한 줄기 빛이나 천사 이리라.
그리고 그 후는 어떻게 될까.
그 후에 존재하는 건 신뿐이니 다른 일체는 사라지리라
나는 누구도 보지 못한, 누구도 듣지 못한 것이 되리니
별 속의 별이 되리라.
삶과 죽음을 비추는 별이 되리라.






중세 페르시아의 3대 시성으로 사람들은 루미, 사디, 하페즈를 꼽는다. 사디(1184~1291)는 오십 세가 되어서야 첫 작품 『굴리스탄(장미원)』을 완성했다. 어릴 적 바그다드에서 공부했던 그는 성인이 된 후 삼십 년 간 몽골의 침략으로 어지러운 이란을 떠나 방랑했다. 십자군에 포로로 잡혀 7년간 노역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상인· 농부· 산적· 사기꾼은 그가 방랑 중 만난 사람들이다.



사디


페르시아의 시와 문학에서 사디는 가장 명확하고 유창한 달변가로 꼽힌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사디를 호머,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의 반열에 올렸다. 그의 굴리야트(시선집)은 지혜의 보고이자 하나의 지식 패러다임으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굴리스탄(장미원』과 『부스탄(과수원)』은 인도와 아시아 대륙의 문화 표현의 수단이었던 페르시아어의 교과서 역할을 해왔다. 산문과 시로 이루어진『굴리스탄』은 1634년 프랑스어로 번역되었고, 20년 후 독일어 번역본이 나왔다. 그러다 차츰 전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Kulliyyāt-i Saʽdi, 사디의 『굴리야트』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람들이 현자에게 묻기를,
지고한 신이 드높고 울창하게 창조한 온갖 이름난 나무들 가운데, 열매도 맺지 않는 삼나무를 빼놓고는 그 어느 나무도 '자유의 나무'라고 불리지 않으니 그게 어찌 된 영문입니까?

현자가 대답하기를,
나무란 저 나름의 과일과 저마다의 철을 가지고 있어 제철에는 싱싱하고 꽃을 피우나 철이 지나면 마르고 시드는도다. 삼나무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항상 싱싱하느니라. 자유로운 자들, 즉 종교적으로도 독립된 자들은 바로 이런 천성을 가지고 있느니라.
그러니 그대들도 덧없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칼리프들이 망한 다음에도 티그리스 강은 바그다드를 뚫고 길이 흐르리라. 그대가 가진 것이 많거든 대추야자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라. 그러나 가진 것이 없거든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될지어다.

사디의 『굴리스탄』에서



인류는 한 몸
한 뿌리에서 나온 영혼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지.

<아담의 후예>, 사디


<아담의 후예>는 이란의 초등학교 4학년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시다. 이 시는 UN본부의 한 건물에도 걸려 있다.




사디보다 1세기 뒤의 인물인 하페즈(1320~1389)도 이란 남부 시라즈 출신이다. 이란 인들은 수시로 시라즈에 있는 이들의 영묘에 들러 석곽을 어루만지며 그의 시를 암송한다. 하페즈라는 이름은 ‘코란을 모두 외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가 외는 코란을 귓전으로 듣고 모두 암기했기에 붙여진 별칭이다. 그는 특히 '가자르'라는 짧은 시형(詩形)으로 술과 사랑, 우정 등 현세적인 희열을 많이 노래했다.


노래하라
이것이 굶주린 이 세상이 필요한 것이니까.
웃어라
그것이 가장 순수한 소리니까.

-하페즈


모든 아이들은 신을 알고 있다네.
혼내는 신이 아니야,
하지 말라는 신도 아니야,
이상한 짓을 하는 신도 아니야,
오직 네 단어만 알고 그것을 반복하는 신이지.
"와서 나와 함께 춤추자, 와서 나와 함께 춤추자."

-하페즈


나는 어젯밤에 행복 바이러스에 걸렸어.
별빛 아래서 노래를 할 때는
행복 바이러스에 잘 걸리지
그러므로 나에게 키스해줘.

-하페즈


시간이 이렇게 흐른 뒤에도 태양은 지구에 ‘당신 나에게 빚졌어’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런 사랑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라. 태양은 그 사랑으로 하늘 전체를 밝힌다.

-하페즈


행복이 당신의 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당신을 찾으러 골목길을 달리고 있다.  

-하페즈



 사디의 영묘. 석곽과 벽면에 사디의 시가 새겨져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400여 명 들어왔다. SNS에 야단이 났다. 그들은 테러리스트와 성 폭행범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으로 사람들은 양분됐다. 반대하는 이들은 옹호하는 이들을 실상을 모르는 감성적 인도주의자로 비난했다. 만일 난민이 백인이었다면, GDP가 높은 나라 사람들이어도 이랬을까.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는 편견과 차별로 이어졌다.


이란인의 가정에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책이 코란과 하페즈의 시집이라고 한다. 이란 학생들은 고등학생 때 페르시아의 명시 100편을 암송한다. 괴테는 하페즈의 영향으로 서동시집을 썼다. 종교와 이념도 ‘시’를 뛰어넘지 못한다. 혼탁한 세상을 구하는 마지막 인간은 ‘시인’인지 모른다.


페르시아 시인의 시 한 편이 그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넘어서게 했다. 후일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읽었을 땐 들이 낯설지 않았다.




#페르시아시인,루미,사디, 하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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