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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r 30. 2021

우리 발레 배울까?

몸에 겸손하기


얼마 전 한 친구가 뜬금없이 함께 발레를 배우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가면 발레 학원이 싫어해, 물 흐린다고.


나는 이렇게 반응했지만 친구의 주장은 나이 들면 몸에 힘을 빼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간 우리가 너무 몸에 힘을 주고 살아왔다는 거다. 맞는 말 같았다. 발레에 도전하긴 힘들지만 몸에 힘을 빼야 한다는 말은 마음에 와 닿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서 생긴 후유증에 나는 몇 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비행기를 타려다 넘어지는 장면을 사진으로 봤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나이를 의식하며 건강을 걱정했지만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몸보다 마음이 너무 젊었다. 마음이 앞서가는데 몸은 따라가지 못하니 넘어지는 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이든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지만 저렇게 넘어지는 일이 없다. 교황은 계단을 올라가거나 몸에 부치는 일을 할 때 옆 사람의 도움을 청한다. 무리하게 혼자서 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행동은 자기 몸에 대한 겸손에서 비롯된다.


쉰 후반 무렵 주변 사람들이 많이 다쳤다. 발에 깁스를 하고 나타나거나 팔에 붕대를 감고 나타나기 일쑤였다. 소파에서 미끄러져 발가락을 다치고, 얼음판에 넘어져서 팔목이 부러졌다. 이 나이의 건강에 대해 민감하게 인식하는 건 내가 그들 나이 무렵에 몸의 변화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에는 통 급 구두가 유행했다. 무엇에 씌었는지 나는 구둣가게에 가서 통굽 구두를 두 개나 샀다. 그걸 신으면 다리가 길어 보일 것이고, 신기에도 그리 불편할 것 같지 않았다. 이전에 나는 통굽 구두를 신은 적이 없었다. 새로 산 구두를 신고 폭 좁은 스커트를 입고 저녁에 남편이랑 지인과 아파트 건너편 술집에 갔다. 그곳에서 맥주를 한두 잔 마셨다. 지인은 잠시 화장실을 갔고, 남편은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좀 전에 우리는 카메라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지인의 부추김에 등 떠밀려 남편이 내게 새 카메라를 사주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벼르던 카메라가 생길 예정이라 나는 조금 흥분한 상태였다. 그때 갑작스레 남편에게 할 말이 떠올랐다. 기다렸다가 남편이 들어온 후에 말을 하면 됐다. 만일 그랬다면 이후 몇 년간 이어진 고통스러운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술집 홀을 가로질러 급히 남편에게로 갔는데, 홀 중앙에 높이 10 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턱이 있는 걸 보지 못 했다. 구두가 옆으로 넘어지며 나는 발목이 뒤틀려 한 바퀴 돌면서 홀에 나뒹굴었는데 그 순간 아주 심하게 다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놀라서 다가온 남편에게 나는 아주 많이, 굉장히 크게 다쳤다고 말했다.


회복하기 어려울 거라는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아무리 진화해도 동물이라는 본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처음에, 그리고도 한동안 완고하게 버틴 건 그간 크게 아파보지 않아서였다. 그날도 병원에 갈 생각을 못 하다가 택시 기사의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는 충고에 응급실로 갔고 임시 깁스를 했다.


그다음이 더 나빴다. 며칠 후 동네 정형외과에서 반 깁스를 했는데 의사는 한 달을 예상했다. 한 달 후 나는 남편과 상해 여행을 할 예정이었고, 그 일주일 후 나흘간의 봉사활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과 드물게 가는 여행이어서 포기할 수 없었고 봉사활동은 함께 하기로 한 이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어서 책임감 때문에 접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발목에 붕대를 감고 절면서.


-뼈 부러진 것보다 인대 늘어난 게 더 고약해. 일 년은 가는데… .


붕대감은 다리를 보며 말하는 지인의 말을 나는 건성으로 들었다.

지나고 보니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결국 후유증으로 몇 달 후 발목 수술을 해야 했고, 그 이후 산을 올라가지 못한다. 산만이 아니라 평지 외엔 걸을 수 없다. 조금 체중이 늘면 바로 발목에 통증이 오고, 며칠 무리해서 피곤하면 그곳이 아프다. 왼쪽 발목은 내 건강의 바로 미터가 됐다.

나는 자신감이 푹 꺾였다. 몸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바뀐 몸 상태를 받아들여야 했다.


십 분 거리의 성당에 걸어서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다리를 저는 장애인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들이 외국 여행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것, 공중목욕탕을 이용하지 못할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후배들이 깁스를 하고 나타나면 말해준다.


“몸보다 마음이 앞서 가서 그런 거야. 몸 따로 마음 따로. 몸은 달라져서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데 마음은 전과 같아 저만치 앞서 가 있는 거야.”


바이든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몸에 겸손해지면 다칠 일이 없다. 천천히 걷고 힘들 때는 도움을 청하면 된다.


쉰을 넘어서서 크게 다치면 몸은 이전 같아지지 않는다. 발목을 다치고 난 후 나는 앞으로 바라보고 걷기보다 발아래를 보고 걷는 습관이 생겼다. 계단은 특히 주의한다. 계단 끝에 특별한 표시가 없는 건물은 설계자의 무신경함을 흉보기도 한다. 몸을 살살 달래 가며 산다. 피곤하면 바로 쉰다.


이전처럼 어느 날 불쑥 운동해야 한다며 십이층 계단을 갑자기 오르내리는 짓을, 바람 부는 추운 날 매일 하던 산책이라고 나가던 일을 이제는 하지 않는다. 그때 무릎 연골이 파열되었고, 갑작스러운 추위로 감기에 걸려 한동안 고생했다. 그래도 젊었을 때라 시간이 지나면서 무릎은 회복되었고, 감기도 빨리 나았다.


이젠 몸이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리 쉽게 회복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닐 수 없다는 것도.

그러니 내 몸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마음이든 몸이든 힘을 빼고 욕구가 80 퍼센트 정도 채워지면 다행이라 여기고 멈추려 한다. 하지만 발레를 배우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살살 조심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움츠리며 살기엔 마음이 아직 겸손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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