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파스타면 사놓은 게 있어서 요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까르보나라를 만들면 어울릴 것 같았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베이컨, 햄. 모든 재료가 있었다. 가장 필요한 생크림만 빼고.
없으면 없는 대로 만들지, 뭐. 대충대충인 성격대로 우유에 치즈를 넣어 만들기로 했다. 양파와 브로콜리도 넣어 볼까? 이것저것 넣다 보니 재료를 과하게 넣은 느낌이 살짝 스쳐갔지만, 나는 계속 진도를 나갔다. 보글보글 끓을 때 치즈를 넣었더니 보기에 그럴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방울토마토가 떠올랐다. 그것도 넣자. 몸에 좋으니.
토마토가 붉게 익기 시작하면 의사들 얼굴이 새파래진다지 않나. 토마토를 잘라 파스타에 넣었다.
어, 어... 얘가 왜 이래?
크림이 서서히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지난번에 라코타 치즈 만들 때 레몬즙을 넣는 순간 몽글몽글 우유가 뭉쳤던 것을. 토마토의 신 맛이 우유의 단백질을 응고시켜 버렸다. 크림인지, 토마토인지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데, 욕심내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음식이 되어 버렸다.
어쩌겠어. 그냥 먹어야지. 속으로 투덜대며 나는 이럴 때는 남편이 요리에 무심해서 다행이라 여긴다. 너무하다 싶을 때도 있지만. 이럴 때는 좋다. 생각난 김에 살짝 남편 흉을 보고 갈까?
양념 떨어진 거 있으면 보내줄까? 얼마 전, 딸에게 물었더니 고춧가루가 있으면 보내달라 했다. 옛날에는 말린 고추를 사서 일일이 마른 수건으로 닦은 후 방앗간에 들고 가 빻아서 고춧가루를 만들었다. 종일 그 일을 하노라면 어깨와 손마디가 무척 아팠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느 걸 사줄까, 생각하다가 나는 아파트 유기농 매장에서 거금을 주고 고춧가루를 샀다. 우리 먹으려고 절대로 사지 않는 곳이다. 평소 사는 고춧가루의 3배 가격이었다.
-서울에 보내려고 좋은 고춧가루 샀어.
자랑스레 말했더니, 갑자기 남편이 관심 있는 말투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병에 든 게 좋겠어.
-병? 갑자기 웬 벼어엉?
나는 돌아서서 남편에게 물었다. 아마 내 눈이 휘둥그레 졌을 거라.
-많이 안 먹을 테니, 병에 든 게 좋지 않나?
남편이 말했다. 약간 위축된 목소리다.
가끔 이럴 때면 나는 남편의 머리를 해부해 보고 싶다. 너무 기발해서.
-고춧가루는 병에 든 게 없어. 이렇게 팔지.
나는 고춧가루 봉지를 남편에게 흔들어 보였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다.
몽글몽글 하얀 덩어리가 가장자리에 붙은 파스타를 남편은 맛있다며, 괜찮다며 먹었다.
맛에 민감하면 저렇게 먹어줄 리 없다. 그러니 세상엔 좋은 것만, 나쁜 것만 있지 않다.
손자들에게 장난감이 너무 많다. 어쩌다 보니 그리 됐다. 친가에서 워낙 많이 사 줬다. 딸은 한 번씩 모아 몰래 다른 곳에 보내거나 버리는 눈치다. 장난감 많은 게 우리는 불편하다. 아이들이 산만해지는 것 같다. 남편은 아이들을 부족하게 키우라고 딸에게 계속 충고한다. 나는 남편 말에 심정적으론 동조하지만 편을 들지는 않는다. 세상이 바뀌어서 남편이 자란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다. 딸 입장에선 상황이 여의치 않다. 직장 다니느라 아이들 챙기지 못하는 불편한 마음을 장난감으로 대체한다.
텃밭 농사를 지을 때 고구마를 심은 적이 있다. 캐려고 보니 고구마가 아이 머리 크기만 했다. 고구마는 너무 크면 상품성이 떨어진다. 요즘은 서너 번 정도 베어 먹을 정도의 크기가 상품이다. 땅에 깊이 박힌 고구마를 상처 없이 캐느라 우리는 헉헉 거리며 진땀을 뺐다. 옆에서 텃밭 하시던 할머니가 건너와서 넌지시 물었다.
-고구마에 비료 줬어? 쯧쯧.
고구마 심는 땅에는 퇴비나 비료를 주면 안 된다는 걸 우리는 몰랐다. 고구마는 거름 없는 맨땅에서도 잘 자란다. 둑만 올려주면 거기에 뿌리내린다. 우리가 준 거름을 먹고 고구마는 정신없이 부피를 키웠다. 과한 정성이 고구마 농사를 망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