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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r 27. 2021

님비 NIMBY와 핌피 PIMFY

코로나 생활치료센터가 들어선다니


며칠 전부터 동네 분위기가 심상찮다. 코로나 생활치료센터가 동네에 들어선다 한다. 위치를 보니 아파트 단지 인근이다. 건물 출입구가 동네 주 도로 반대쪽이긴 하지만 6천5백 가구 주거지와 일 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처음에 든 생각은 '어딘가 장소가 필요하다면 굳이 우리 동네는 안 된다고 할 수 없지' 였다. 

그런데 차츰 이어지는 기사를 보니 아산 경찰 인재개발원이 경찰 측의 요청으로 철수해 이곳으로 옮겨진다는 것이었다. 이외로 규모가 큰 치료센터일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대전 인근에는 민가와 떨어진 곳에 큰 숙박 시설들이 많다. 내 기억에도 금방 서너 군데가 떠오른다. 그런 곳 다 두고 하필 왜 이곳일까?


맘 카페에 계속 기사가 올라오고 댓글이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구청에 민원을 넣은 이가 구청 측의 성의 없는 답변에 실망했다. 구청은 민원인에게 치료센터 관련 보고서와 전화번호 하나를 줬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화난 것은 이 일을 결정하기까지 주민들과 상의 한 번 없었기 때문이다.




동네에 도서관을 지어달라는 민원을 구청 민원실에 넣은 적이 있다. 그간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 분점을 이용했는데 어느 날 주변 신도시와 서울 쪽을 살펴봤더니 이곳 도서관 시설이 무척 열악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구청은 옆 동네에 2023년 경 도서관을 지을 예정이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앞으로 2년 후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도서관 분점은 다닥다닥 책장이 늘어서 있고 가운데에 여덟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4개 정도 놓여 있다. 안쪽에 아이들 방이 있다. 들어가 봤더니 책들이 낡았고 형광등 불빛이 침침했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지금이 2020년 맞나 싶었다. 장소가 워낙 협소해 더 이상 신간을 받을 수도 없다.


그동안 상호 대차로 책을 빌렸다. 핸드폰 앱으로 주변 여섯 개 도서관을 검색해 책을 찾아 신청한다. 이런 방법은 빌리기 전에 미리 책을 훑어볼 수 없다. 그나마 핸드폰을 용할 수 있어 가능하지만 전자기기 사용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는 방법이다.  


신간 신청은 한 달에 한 권 할 수 있다. 서울 정독 도서관의 경우에는 한 주일에 두 권, 한 달에 여덟 권의 신간을 신청할 수 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이따금 도서관 본점을 찾아갔다. 도서관은 자동차로 이십 분 정도 거리에 있다. 퇴직한 지인은 소일 삼아 매일 버스를 타고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도서관은 책이 있는 공간이다. 별 목적 없이 가서 예기치 않게 손에 닿는 책을 빌려 오는 게 도서관의 묘미다. 보르헤스는 만일 천국이 있다면 무수한 책이 꽂힌 서가가 늘어서 있는 도서관 같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나.


옆 동네에 생길 테니 기다리라는 구청의 답변에 나는 기운이 꺾였다. 서울과 지방의 문화의 차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실감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내가 생각하기에 도서관이 들어오면 최적지일 것 같은 단지 내 파출소 가건물을 지나가며 친구들에게 저기가 도서관 자리인데 한 마디 하는 걸 잊지 않는다. 내 말을 듣고 퇴직 전에 공무원이었던 친구는 바로 옆 시유지도 조금 넣으면 도서관 장소로 최적이라고 맞장구쳐 다. 하지만 기실 이 장소는 오래 체육관이 들어서려 했던 자리다.


체육관은 들어서지 못했다. 우리는 이곳에 체육관이 생기는 걸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체육관이 들어서면 안 되는 여러 이유들이 떠돌아다녔다. 주된 이유는 비행 청소년들이 그 앞에 모일 거라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그때는 다들 그 말에 수긍해 연명으로 사인을 해서 구청과 시청에 민원을 넣었다.

얼마 후에는 아파트 외곽에 큰 길이 생긴다는 소식에 자동차 소리가 시끄러울 거라는 이유로 반대 서명을 했다. 모두 일이십 년 전 일이다.


그 결과 오늘까지 우리 동네에는 변변한 체육관과 도서관이 없다. 아파트 앞길은 출근 시간이면 병목 현상이 일어난다. 큰 길이 뚫리지 않아파트는 도시 중심부와 동떨어져 마치 외딴섬 같다. 길에 대해서는 지금도 큰 미련이 없지만 체육관 시설을 거부한 건 두고두고 아쉽다.

 후론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큰일이 없었다. 타지가 고향인 사람이 많은 이곳은 적당한 무관심으로 주민들이 너무 요구하는 게 없다는 구 의원말을 들을 정도로 조용한 동네가 되었다.




어제 코로나 생활치료센터 설치에 대한 주민 설명회가 있었다. 사진을 보니 장소가 빼꼭하게 주민들이 많이 참석했다. 시와 구청에선 계속 주민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나는 관련 부서가 아파트 밀집 지역이 아닌 다른 곳을 신중하게 찾아보지 않고 결정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LH연수원 건물이라니.


사람들은 장례식장, 화장장, 쓰레기 소각장 같은 시설이 우리 마을에 들어서면 안 된다며 반대한다. 도서관, 학교, 박물관 같은 좋은 시설은 들어서기를 반긴다.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과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반대의 개념이지만  두 현상의 저변에는 '존중성'이 깔려있다.

님비의 경우에는 충분한 사전 설명으로 주민들이 결정에 배재되어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갖지 않게 배려해야 한다. 핌피의 경우도 어느 한 쪽에 과하게 치우쳐 다른 쪽이 소외감을 갖지 않게 해야 한다. 


딸이 시립병원 생활치료센터에 근무하고 있 지인은 걱정하지 말라며  센터가 철저한 관리 아래에 있어서 일반 가정에서 감염될 위험보다 적다고 말한다.

실제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주민들은 만에 하나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카페와 식당이 줄줄이 있는데 환자들이 갑갑해서 외출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고 불안해한다.

코로나 생활치료센터 설치는 주민들이 뉴스로 접하기 전에 미리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았어야 다. 주민들은 이 일에 관한 한 존중받지 못했다. 아파트 북쪽 출입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센터가 들어선다니 누군들 이 결정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래저래 내가 사는 곳은 소외 지역이 되어버린 것 같다. 도서관도 한두 민원을 넣는다고 지어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나는 하얗게 핀 목련 나무 옆에 들어선 4층 높이의 도서관을 상상해 본다. 우리 아파트뿐 아니라 어느 곳이나 걸어서 십 분 거리 내에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


치료센터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며칠 후면 날 선 말 적힌 플래카드가 아파트 곳곳에 나부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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