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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29. 2021

『토성의 고리』

20세기 최초의 인권 대사, 로저 케이스먼트


써퍽 카운티, 쏘머레이톤, 로우스토프트의 남쪽 해변. 저자는 영국 동부지방을 여행한다. 바다에서 청어 잡이를 회상하고 해변의 침식으로 사멸하는 활엽수를 바라본다. 하늘을 나는 새와 숲, 그곳에 산 사람들. ‘여행’이라기보다 ‘탐색’이 더 적절해 보인다. 


여행의 감상을 적은 산문집인 줄 알았다. 왜 제목을 ‘토성의 고리’라 했을까? 제목이 무거워 보였다. 도입부에서 저자는 ‘토성의 고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토성의 고리는 적도 둘레를 원형궤도에 따라 공전하는 얼음결정과, 짐작건대 유성체의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과거에는 토성의 달이었던 것이 행성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여 그 기조력으로 파괴된 결과 남게 된 파편들인 것으로 짐작된다.(→로슈 한계: 모 행성의 기조력에 부서지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한계)                                                                
                                                                                             -『브로크 하우스』 백과사전


저자는 토성의 고리처럼 사라지지 못하고 우리 주변을 떠도는 이러한 것들을 말하고 싶어 한다. 이민자, 유대인, 동성애자, 흑인. 존중받지 못한 주변인. 권력과 부를 획득하기 위해 악을 선택한 사람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죽임을 당한 물고기와 동물들. 약자들을 대변하려다 죽은 사람들. 


어느 날 저자는 BBC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깊은 잠에 빠졌다. 소설가 조셉 콘래드가 콩고에서 케이스먼트를 만나, 그들 자신의 욕심과 탐욕 탓에 타락해가는 유럽인들 가운데 오직 그만을 올곧은 사람으로 여겼다는 첫 부분의 언급만 들은 채. 

신기하게도 그 이야기가 저자에게 각인되었다. 그는 후일 사료를 통해 이를 재구성하려고 노력한다. 




콩고 토착민들에게 저질러진 범죄에 대한 최초의 보고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건 1903년 보마에 파견된 영국 영사 로저 케이스먼트(1864~1916)에 의해서였다. 그는 콩고의 참상을 목격하고, 그 실상을 상세하게 서술해 보고했다. 돈을 향한 탐욕으로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 민족 전체가 참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을 거라며. 수백만, 아니 천만이 넘는 콩고인들이 고무와 상아의 채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팔과 다리를 잘리거나 살해당했다.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심연』에서 볼 수 있는 한 민족의 단말마의 비명, 죽을 때까지 노역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로저 케이스먼트는 ‘문명화 작업’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진 어처구니없고 끔찍한 제국 식민 사업의 실상을 각국 언론에 폭로했다.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는 내심 이 영국 영사가 성가셨다. 왕은 그에게 작위를 수여하고 영국으로 돌려보냈다. 케이스먼트는 남아프리카로 파견되었다. 그는 이곳도 콩고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다. 착취자가 벨기에의 상업 공사 대신 런던에 본부를 둔 아마존 회사였을 뿐. 제국이 피지배 민족에게 저지른 일은 어느 곳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국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인권을 외치는 그의 열정을 돈키호테 같다며 고개를 저었고 귀족 신분을 주어 사태를 완화하려 했다. 1911년 영국 정부는 케이스먼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제국주의의 실상을 목격한 그는 점차 영국의 지배하에 있는 자신의 조국 아일랜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일랜드 인구의 절반이 크롬웰의 병사들에게 살해당하고, 수천 명이 백인 노예가 되어 서인도제도로 보내지고, 백만 명이 넘는 이들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


케이스먼트는 비밀리에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병력을 모집하고 무장했다. 자신이 받은 훈장을 런던으로 돌려보내고, 연금도 거부했다. 무장봉기를 위해 독일로 건너가 아일랜드인 포로들을 규합해 독립군을 조직하려 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체포 후 압송되어 런던탑에 갇힌다. 그는 영국의 반역자이고 스파이였다.


코넌 도일, 버나드 쇼를 비롯한 각계의 저명인사들이 그의 구원을 탄원하자, 영국 정부는 가택 수색에서 나온 검은 일기장을 공개한다. 후일 오랫동안 진위 여부에 휩싸인 이 노트는 케이스먼트의 사적인 영역, 솔직하고 적나라한 동성애 연대기였다. 영국 정부는 그의 처형에 면죄부를 얻고자 이 일기장을 미국 대통령과 교황에게 보냈다. 분노한 여론에 그의 석방을 위해 나섰던 사람들이 수그러들었다. 


케이스먼트는 제대로 교육받고 자란 특권층이었다. 훈장과 작위까지 받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쩌다 국가의 배신자가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까? 왜 그는 다른 관료들처럼 불의에 침묵하지 않았을까? 


"이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케이스먼트의 동성애가 그에게 사회계급과 인종의 벽을 넘어서 권력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억압과 착취, 노예화와 불구화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었다는 것이다." p161


『암흑의 심연』의 커츠처럼 모범적인 문명인이 어느 순간 암흑의 지배자가 되기도 하고, 케이스먼트처럼 저명한 외교관으로 주어진 것들을 누리며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부조리한 사회를 변혁하려고 목숨을 내놓기도 한다.  

1916년 로저 케이스먼트는 교수형을 당했다. 죄명은 반역죄였다. 1965년이 되어서야 영국 정부는 감옥 마당에 묻힌 그의 유골을 발굴하도록 허가했다. 로저 케이스먼트는 20세기 최초의 인권 대사였다. 




지리서인가, 여행기인가, 역사서인가? 이 책은 문화 인류학 비평서이며 문화 고고학적 여행기로 보인다. 책의 어느 부분에서 조지 콘래드의 『암흑의 심연』이 떠올랐고 어느 부분에서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떠올랐으니, 책은 소설이며 르포르타주였다. 저자는 역사와 문명의 크고 작은 재앙과 주변인들의 삶을 성찰하고 가려진 인간의 추악함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드러냈다. 하지만 로저 케이스먼트에 관한 부분은『토성의 고리』의 한 파편에 불과하다. 


영국 동부로 도보여행을 다녀온 일 년 후 저자는 노리치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그는 떠오르는 내용을 메모해가며 머릿속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퇴원 후 의사이며 수필가인 토마스 브라운(Sir Thomas Browne.1605∼1682)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브라운의 두개골이 노퍽 노리치 병원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또한 브라운이 머물던 196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사기꾼 아리스 킨트의 시신 해부가 공개 행사로 개최되었고, 그 현장을 램브란트가 그렸다는 사실도. -이 행사는 새로운 과학의 대담한 탐구였으며, 고래로 전해오던 죽은 뒤에도 범법자의 몸에 고통을 가하는 징벌적 의례이기도 했다. -토마스 브라운이 산 자와 죽은 자의 뇌를 에워싼 '흰 연무'로 안개를 묘사한 글을 읽은 저자는 그가 이 행사를 본 게 틀림없다고 믿는다. 



램브란트,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년, 네덜란드 왕립 미술관) 



쉼 없이 연결된 고리처럼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에 따라 동료의 죽음에서 플로베르의 문장으로, 토마스 브라운의 해골에서 17세기 네덜란드의 시신 해부로 넘어간다. 한두 쪽이 한 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읽기에 힘들지는 않다. 내용의 깊이를 이해하는 건 차치하고. 


저자 제발트는 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가르치다가 1980년대 후반 첫 소설을 발표하며 십 년 남짓 소설가로 활동했다. 총 네 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2001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어떤 책은 반나절만에 후딱 읽고 덮은 후 다시 찾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책은 읽느라 며칠이 걸리고 읽은 후에도 다시 읽고 싶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싶고. 


#토성의 고리, W.G. 제발트, 이재영 옮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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