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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n 04. 2021

가족도

수필과 비평 6월



 몇 년 전 덕수궁 국립 현대 미술관에 간 적이 있어요. 5월 이맘때여서 덕수궁 정원에는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았지요. 아기와 함께 온 젊은 부부, 연인,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바람 쐬러 나온 가족들. 붉고 흰 철쭉 사이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들어간 전시실은 화창한 바깥과 대조되어 무척 어둡게 느껴졌어요. 관람객도 많지 않았죠. 한 전시실에서 너비가 2미터 정도 되는 큰 그림을 봤는데 유독 그 앞에 사람들이 많이 머물러 있더군요.


  배운성의 '가족도'는 한옥을 배경으로 열일곱 명의 가족이 단체 사진을 찍는 것 같은 그림입니다. 조바위를 쓰고 괘자를 차려입은 아기들로 보아 설날 아침 같아요. 흰색과 유색 한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아기를 안고 있는 할머니 둘레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요. 뒤쪽에는 방에서 창을 열고 내다보는 이, 마루에 앉아 있는 이도 있고요. 예쁘게 차려입고 편안하게 바닥에 앉아 있는 아기와 늠름하게 생긴 개 한 마리도 가족은 앞에 데려다 놓았어요.


  그해에 저는 서울에서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는데 마침 덕수궁 전시회를 보고 소감을 써오라는 과제가 있었어요. 가족도가 인상적이었던 저는 ‘가족’에 관한 글을 썼는데 특이하게 글쓰기 회원 중 두 남자가 이 그림을 보고 ‘개’에 관한 글을 써 온 거예요.


  한 남자의 글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아마 복날이었겠죠. 개가 끌려가고 있었어요. 아버지에게 애원했지만 사람들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요란스러운 소리가 나고 얼마 후 개가 줄을 끊고 집으로 달려왔는데, 사람들이 다시 개를 끌고 가버려요. 세월이 지나도 낑낑대며 끌려가던 개의 눈을 잊을 수 없어서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글이었어요. 교실이 조용해졌죠. 다들 뭔가 떠오르는 게 있는 눈치였어요.


  어릴 때 하얗고 몸집이 큰 스피츠를 키웠는데 엄마가 녀석을 싫어했어요. 털이 너무 많이 날렸거든요. 여름이면 마당에서 호스로 녀석에게 물을 뿌려줬어요. 녀석은 물을 맞으면 부르르 몸을 털어요. 옆에 있으면 순식간에 물벼락을 맞죠.

  비가 많이 내린 날이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니 녀석이 안 보이는 거예요. 엄마가 시장에 내다 팔았대요. 울고불고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일주일쯤 지났을까. 장마가 길게 이어졌는데 녀석이 홀딱 비 맞은 모습으로 돌아온 거예요. 목에 긴 줄을 늘어뜨리고.

녀석은 집에 들어서자 한껏 몸을 털었고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녀석이 뿌린 빗물을 뒤집어썼죠. 어떻게 찾아왔을까요? 팔려간 곳은 자동차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였거든요. 다들 대견하다고 녀석을 껴안고 뒹굴고 야단했는데, 다음날 녀석은 사라져 버렸어요. 엄마가 돌려보낸 거예요. 한 번 판 걸 무를 수 없다면서요. 한동안 엄마랑 말을 섞지 않았어요.


  어느 문학 강론에서 손택수 시인이, 키우던 강아지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어요. 손 시인의 작품으로 교과서에도 실린 흰둥이 이야기예요. 시인이 말하길 사실 자기가 키운 개는 흰둥이가 아니라 검둥이였다고 해요. 어느 날 친구들과 싸워서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집에 오니 검둥이가 반기며 달려오더래요. 화가 안 풀려서 강아지의 목줄을 움켜쥐고 공중에서 빙빙 돌렸대요. 목이 졸린 검둥이는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고요. 그날 이후 검둥이는 두 번 다시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답니다. 후회해도 되돌릴 방법이 없어서 손 시인은 검둥이를 흰둥이로 바꾸어서 시를 썼어요. 팔려가는 강아지의 목줄을 아이가 풀어주는 내용이에요. 시인은 그렇게라도 검둥이에게 속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배운성(1900~1978)은 어려서 서울 만석 지주 백인기의 집에 사환으로 들어갔어요. 주인이 그를 학교에 다니게 하고 아들의 말동무로 삼았지요. 아들이 유학을 가게 되자 그도 딸려 보냅니다. 일본에서 두 사람은 함께 경제학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가 두 사람은 독일로 넘어갑니다. 독일에서 배운성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깨닫게 되지요. 백인기의 아들이 병이 나서 귀국하자 배운성은 홀로 남았습니다. 베를린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파리 가을 미술제 (Salon d'Automne)'에 입선했는데 한국인으로는 최초였죠.


  전시회에 입상도 하고 이름도 날렸지만 고향에는 갈 수 없는 신세입니다. 그는 사진과 기억을 조합해 서울 백인기의 가족을 그립니다. 가끔 화가들은 자기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머물고 싶은 공간에 자기 모습을 그려 넣곤 하죠. 아테네 학당의 철학자들 사이에 자신의 얼굴을 살짝 집어넣은 라파엘로처럼 배운성도 가족도에 자신을 넣었습니다. 그림 왼쪽에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구두를 신고 서 있는 젊은이가 그입니다. 서울에서 키우던 개 한 마리도 그렸어요. 고마움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주인집의 도움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으니까요. 아니, 자신도 가족의 일원이라 여겼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만이 가족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함께 살면서 한 솥의 밥을 나누어 먹고 정을 주고받으면 사람이든 강아지든 모두 가족이 되는 게 아닐까요?



배운성 작, 가족도 140 × 200cm, 캔버스에 유채(1930~35년)



  가족도를 보면서, 개에 관한 산문을 써온 남자들을 보면서 예전과 지금, 여자와 남자의 마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인은 시로, 수필가는 수필로, 화가는 그림으로 가족을 회상합니다. 누구에게나 저마다 기억하는 가족도가 있을 것 같아요.




  시월의 들판이 누렇게 익은 벼로 넘실댑니다. 뒤뜰에서 웃자란 벼가 나지막한 초가의 지붕을 덮은 집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묘에 어머니를 합장하고 흙을 덮으며 다들 한 마디씩 했어요. 이제 사이좋게 지내시라고.


  선산을 내려와 저수지 옆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어요. 오래전부터 그곳에 자리 잡아 온갖 것들을 가라앉힌 저수지는 넓고 깊어서 바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옹기종기 둘러앉아 무거운 마음으로 숟가락을 드는데 검은 저수지 위로 작고 앙증맞은 노랑나비 두 마리가 날아오르는 게 보였어요.


  -저기 나비 좀 봐요.

  손으로 나비를 가리켰더니, 결혼 안 한 조카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둘이 싸우나 봐요.


  모두 일어서서 머리 위를 나풀거리며 지나가는 노랑나비를 바라봤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형제들은 같은 생각을 했죠. 어떻게 알았냐고요? 다들 웃고 있었거든요.


가을 햇빛을 받아 녹두 빛깔이 된 저수지를 배경으로 엎치락뒤치락 노니는 두 마리 노랑나비를 바라보며 서 있는 형제들이 제가 기억하는 우리 집 가족도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기억 속의 그림은 빛깔이 바래지 않을 것 같아요.


<수필과 비평 2021년 6월 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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