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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06. 2020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려다...

보려던 영화가 뭐였더라?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고 싶었다. 아니,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영화관에서도 TV에서도 볼 수 없으니 넷플릭스로 볼 수밖에. 핸드폰에 앱을 깔았는데, TV와 연결하는 법을 모르겠다.

요즘 스마트 TV라는 게 있는데, 그것만 있으면 핸드폰의 영상을 바로 TV로 볼 수 있어. L회사 다니는 친구가 이참에 TV를 아예 바꾸는 게 어떠냐고 슬며시 아니 노골적으로 판촉을 했다.


  영화 한 편 보려고 TV를 바꾸기는 좀 그렇지? 핸드폰에 앱을 깔고 TV와 연결하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다.

  남편이 구가 세 개인 케이블을 사 왔다. 두 개는 TV에 꽂고 한 개는 내 핸드폰에 꽂는다. 채널을 ‘HDMI’로 튼 후 앱을 켰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계속 ‘연결 안 됨’ 회면만 뜬다. 핸드폰에서 이번에는 ‘이지 앱’을 깔으라는 메시지가 뜬다. 앱을 까니, 영화가 시작된다. 이젠 소리가 문제다. 뭔가 신호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 남편이 사 온 케이블이 문제일지 모른다.


  “좀 좋은 걸로 사 오지. 비싼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케이블을 나무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싸고 좋은 물건만 찾는 남편에게 내는 짜증이다.


  “괜찮은 물건인데.”

  남편이 케이블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린다.


  “그러게, 동글이를 사 오라니까.”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는 영화가 감질나서 연장 탓 반 남편 탓 반을 한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이지 앱’의 비디오를 클릭했더니, TV 화면에 갑자기 손자의 영상이 뜬다. 핸드폰에 저장된 영상은 지난 2년간 손자의 모습이다.

 여름옷을 입었으니, 20 개월 무렵이겠구나. 아장아장 어딘가를 걸어가고 있다. 길가 풀숲에 들어가더니 쪼그리고 앉는다. 이끼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게 뭐냐고 묻는다. 엎드려 풀을 뜯으려다 앞으로 넘어진다. 흙 묻은 조막손을 들여다보더니 탈탈 털어낸다. 다음 영상은 밥 먹는 모습이다. 숟가락에 밥을 떠서 먹는데 뭔가 신이 난 모양이다. 고개를 한껏 쳐든다. 덩어리 진 밥이 옆으로 떨어진 것 같다. 영상이 벽을 비추는 걸 보니. 찍다가 달려가 밥을 숟가락에 다시 올려준 모양이다. 화면이 제자리를 찾는다. 앙, 하고 밥을 넣으며 눈을 깜박인다. 맛있다는 표정이다.


 “맛있나 봐요.”

 돌아보니 남편도 웃고 있다.


 영상은 흘러간 시간과 공간을 채집해 다시 살렸다. 아기를 사랑하고, 한 치 두 치 자라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 남편과 나는 같은 감정을 나눈다.


  아기는 절대 못 키워준다고 손을 젓다가, 막상 키울 때는 둘이 쩔쩔매면서 끼고 키웠다. 아이들 키울 때는 따로 재웠는데, 손자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체력이 달려서 잘 때는 남편과 교대로 데리고 잤다. 사내아이라 좀 더 힘들었는지 모른다.



다음 주말 우리는 손자를 만나러 간다. 뭔가 녀석들이 좋아할 만한 과자를 들고 가서 인기를 끌고 싶다.


  “네댓 살 아기들이 좋아할 만한 과자는 뭐가 있을까요?”


 아기 키울 때 드나들던 맘 카페에 조언을 구했더니 댓글 서너 개가 금방 굴비 엮듯 달렸다.


  “꼬깔콘이 좋아요. 손가락에 꽂아서 놀거든요.”

  “누드빼빼로는 초콜릿이 손에 묻지 않아서 좋아요.”

  “킨더조이가 갑인 듯해요.”


   킨더조이? 이건 뭐지? 검색창에 넣으니 달걀 모양 과자가 뜬다. 지난번에 슈퍼에 들렀을 때, 녀석이 덥석 집었던 과자다. 아이들 취향은 도대체! 그때 든 생각이다. 그러니 내가 골라주는  과자가 녀석들 마음에 들 리 없다.

  아래에 댓글이 다시 달린다.


  “저는 시어머니가 자꾸 시판 과자를 사 주셔서 속상해요. 말도 못 하고. 친정어머니 같으면 말이라도 하겠는데. 따님이 어떤 과자를 먹이는지 한번 살펴보고 사주세요.”


 그 말도 맞다. 우리는 잠시 인심 얻고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무난하고 중독성 없는 과자를 고르고 카페 앱을 닫는다.


떠난 지 두 달이 지나자 손자는 엄마에게 적응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핸드폰 액정 속에서 눈물 글썽이는 모습도, 얼굴을 돌리고 외면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나를 볼 때마다 “하부 지는, 하부 지는 어디 갔어?”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서 조금 속이 쓰릴뿐.


  손자가 둘이지만, 부대끼며 키운 둘째 녀석에게 마음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큰 녀석도 백일까지 키웠건만. 가끔 서울에 올라가 아기들을 보려 한다. 살을 비벼야 정도 나는 법이라.



  “영화 보는 것보다 이게 더 재미있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본다는 게 지난 2년간 자라는 손자 모습만 보고 말았다.

  옹알이하다가 앉기 시작해서 뒤로 넘어져 머리 찧는 모습, 두 발을 디디며 조심스레 걷다가 달려가는 모습까지. 아기는 자라고 우리는 노인이 되어 허허 웃으며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보려던 영화는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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