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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색머리 Nov 22. 2016

이별의 기록 1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의 이유




5.



[헤어진 당일]


짧디 짧은 단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나는 가시밭에 누워있더라.




[헤어진 다음날]


나는 네 사진을 두장 남기고 모두 지웠다. 네 셀카 두장을 남기고 우리 같이 찍은 사진까지 모두 지웠다. 어서 그 시간이 흐릿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가슴 뛰던 너와의 시간이 언젠가 불장난이었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너와 함께 보냈던 그 짧은 시간을 모두 다 잊을 수 있겠다 싶으면, 네 생각이 더 희미하고 가슴 답답하지 않아진다면, 너를 애초에 내 인생에 없던 사람처럼, 그렇게 모두 비워내고 싶다.


나는 그냥 그렇게 너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너와 함께 보냈던 시간은 너무도 짧았어서 떠올리려 해도 생각나는 추억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네가 있던 나의 시간과 네가 없는 나의 시간은 그 풍요로움이나 질적 수준이 다르다. 내 마음의 여유로움이나 만족감이 다르다. 그 만족감이 너에게서 온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쓸쓸했던 내 곁에 자리하고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는 그 어떤 존재로부터 온 것이었는지는 나도 이제 잘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다시 혼자가 되니, 너와의 시간이 나는 너무나도 그립다.

 

내가 너를 떠나온 지 24시간이 지났다. 


너의 어젯밤은, 너의 오늘 하루는 어땠을까. 내 생각은 너의 시간에 얼마만큼 존재했을까. 네 머릿속의 나의 존재는 너에게 어떤 기분과 감정을 주었을까. 너는 내 빈자리를 느꼈겠지. 늘 곁에 있던 사람이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다 생각도 하다 괜히 먹먹했을 거라 생각한다. 여자 친구 생각도 하다 내 생각도 하다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이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네가 없는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네가 없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지금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헤어진 지 이틀째]


네가 너무 보고 싶다. 


나는 너와 하고 싶던 일들이 너무 많다. 해보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다. 아쉽고 미련이 남고 답답하다. 나는 너를 더 알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조금은 서글프다. 나에게 문제가 있었으면 내가 해결하려고 노력이라도 했을 텐데 너의 문제는 나와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너에게 가고 싶다. 너를 보고 싶고, 너와 대화하고 싶고, 너에게 질척대고 싶다. 네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너를 쉽게 놓아주기 싫다. 마지막 날 밤, 나를 붙잡는 너를 두고 나는 그 집을 나왔어야 했다. 그 밤 나의 품이 너에게 위로가 되었거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조금의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하룻밤에 묻어난 진득한 미련과 질척한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는 너에게 미친 척 문자하고 싶지만 그렇게 미치지도 못했다. 그 애매하고 어정쩡한 마음이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불편하다.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한 관계를 애써 갈무리하고 고이 묻으려니 이게 뭔 짓인가 싶다가도, 왜 내가 네 입장만 이렇게 생각해주고 이해해주며 너를 욕하고 저주를 퍼붓지 못하나 싶다가도, 그래, 네 마음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저 잊을 수밖에, 라는 생각에 또 한 번 포기가 된다. 


내가 너를 떠나온 지 이틀이 조금 넘게 지났다. 내가 그날 나온 건 너의 집일까, 아니면 너의 마음일까. 나는 너를 두고 온 걸까 보낸 걸까. 


내가 나의 마음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뭘까.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나는 어떻게 해야 괜찮을 수 있는 걸까.




[헤어진 지 3일째]


미친 척하고 문자 하고 싶다. 딱 서른 번만 더 참을 거다.라고 생각했으나 정확히 두 번 참고 문자를 보내버렸다. 문자에 답이 없어서 전화도 걸어보았다. 전화도 받지 않길래 계속 핸드폰만 만지고 있었는데 너에게 문자가 왔다. 우리는 잠시 문자를 주고받다가 전화를 했다. 


너는 내 문자 한 통에 태풍 불듯 흔들리더라. 내가 너를 흔드는 게 나에게 과연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했다. 너는 내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일주일이면 너에게 닥친 상황과 너의 감정을 충분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말했다. 나는 너와 전화를 하면서 마음 한편 안심도 되었지만, 동시에 괜히 전화를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는 네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정리하고 전 여자 친구를 다시 만난다고 다 얘기했더라. 네가 나에게 보이는 너의 마음과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너의 마음이 다른 것 같아서, 나는 너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너를 믿기가 힘이 든다. 


일요일에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일요일. 나는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통화 후 사실은 조금 후회했다. 


나는 너를 기다리고 싶지 않다.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싶다. 그러다가도 너의 마음과 감정과 생각을 생각하면서 나 스스로를 충분히 표현하고 돌보지 않음에 짜증이 나서, 너에게 내 마음과 감정과 생각을 모두 표출하고 쏟아낸 후에 버려버릴까,라고 잠시 생각한다. 그런 나의 마음이, 정말 너에게 복수하고 싶고 너를 이용하고 싶은 마음인지, 아니면 이 상황과 너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네가 좋아서 너에게 돌아갈 핑계를 만드는 것인지, 나는 헷갈린다. 너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가도 아니, 보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너에 대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나는 이렇게나 갈팡질팡하고 길 잃고 헤매는 것처럼 너무 힘이 든다.




[헤어진 지 4일째]


내게 있던 너의 컴퓨터로 네가 네 여자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를 봤다. 네 여자 친구와 과거에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을 봤다. 사랑에 빠져있던 너는 역시나 예쁘더라. 보는데 네가 너무 예뻐서 웃음이 났다. 


나는 너를 정리해야 하는 걸 안다. 단지 나는 아직 그 혹시나 하는 마음까지 접지는 못하겠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너를 흔들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네가 내게로 돌아오고 싶을까. 아니, 애초에 너는 지금 원래 너의 자리로 돌아간 게 아닌가. 나는 왜 너 앞에서 만 쿨하게 행동할 뿐 너 뒤에선 이렇게나 찌질한 걸까. 


나는 남은 너의 두장의 사진도 지웠다. 너와의 카톡방에서 나왔다. 너의 번호도 지웠다. 


나를 이렇게 만드는 네가 정말 너무 밉다.




[헤어진 지 5일째, 일요일]


너를 만나고 너의 말을 들으면 나는 사정없이 흔들린다. 그래, 너의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말들이 나를 흔든다. 


너의 말을 듣고 싶고 그 말들을 믿고 싶어서, 나는 또 수십 번, 수백 번 되뇌었던 다짐을 잊는다. 


너와의 끝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이 끝이 내가 만든 끝인지 아니면 정말 타당하고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지금의 나는 그 무엇 하나도 알지 못하겠다. 모든 것이 모호하고 모든 것이 헷갈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덩그러니 놓여있다. 눈을 감으면 너의 따뜻한 목소리가 생각나고, 귀를 막으면 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래서 다시 한번 흔들리게 된다. 나는 이렇게나 나약하고 의지박약 해서 나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네가 밉고 너를 마음에 담은 내가 싫다.



내내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했다. 


대화를 하다가 네가 내 의자가 있는 쪽 구석 바닥에 와서 쭈그려 앉았다. 쭈그려 앉아서 나를 올려다보고 내 발끝을 가만가만 만지는데 그 모습을 보니까 약해지는 마음을 잡기가 힘들었다. 결국 나는 너의 머리를 쓰다듬고, 너를 위로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너에게 웃어줬다. 


밤이 늦어 내가 집에 가겠다고 일어서자 네가 갑자기 저 멀리 걸어가 문으로 들어갔다. '나 갈게'라고 말하자 네가 문을 살짝 열고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그 모습이 또 안쓰럽고 귀여워서 나는 한숨이 나왔다.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자, 십 초 준다,라고 얘기하자 네가 냉큼 와서 폭 안겼다. 너는 내게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진짜 잘할게,라고 말했다. 나는 너를 뒤로하고 그곳에서 나왔다. 




나는 너를 믿고 싶었다.


너의 말을 믿고 싶었다.


네 눈빛을 믿고 싶었다.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우리는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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