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행동이란 무엇인가
테러리스트들이 어느 가옥에 모여 자살테러 조끼를 착용중이다. 저 조끼를 입고 쇼핑몰같은 곳에서 스위치를 누르면 상상도 하기싫은 피해가 예상된다. 놈들이 가옥을 벗어나기 전 미사일 공격이 시급하다.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등을 검토한 끝에 지휘부는 공격을 결정한다. 이 모든 상황은 현장의 요원이 조종하는 무인드론기로부터 실시간 전송된다.
그런데 작전요원이 미사일 발사 버튼을 막 당기려는 순간 타겟 지점에 작은 소녀 하나가 포착된다. 소녀는 가옥의 담벼락에 좌판을 깔고 빵을 팔기 시작한다.
당황한 작전요원은 버튼 누르기를 거부하며 지휘부에 공격의 재검토를 요청한다. 작전책임자는 작전요원에게 버튼을 누르라고 다그치지만 작전요원은 자신의 권한을 내세워 공격의 재점토를 요청한다. 작전책임자는 지휘부에 공격여부에 대한 판단을 요청한다.
지휘부는 혼란에 빠진다. 저 아이가 지나가면 공격하자, 한시도 기다릴 수 없다, 소녀 하나를 살리자고 무수한 인명을 포기할 것인가, 법무장관, 외무장관, 그 누구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법적 정당성, 도덕적 정당성, 작전의 합리성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진다. 작전의 최종 승인자라고할 총리마저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라'는 말만할 뿐 당장의 공격여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책임지려하지 않는 상황이고 시간은 다급하다... 어째야 하는가.
<Eye In The Sky>가 보여주는 이런 도덕적 딜레마의 문제는 이미 몇가지 버전으로 우리에게 제시되었다.
a-1. 통제력을 상실한 열차가 달리고 있다. 이쪽 선로에는 5명이 작업하고 있고 저쪽 선로에는 1명이 작업하고 있다. 당신은 버튼을 조작해서 열차의 진행을 어디로든 바꿀 수 있다. 어디로 바꿔야 하는가.
a-2. 1명이 작업하는 선로의 일꾼이 당신의 어머니라면?
b-1. 통제력을 상실한 열차가 달리는데 다리위에서 어느 사람을 밀어 기차의 선로를 방해하면 대참사를 막을 수 있다. 그렇게 하겠는가.
b-2. 버튼을 눌러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하겠는가.
c. 조난된 배에 사람들이 타고있다. 거기엔 병들어 죽을 것이 확실한 사람이 하나 있다. 그 사람의 인육을 나눠먹으면 나머지 모두는 살 수 있다. 그래야 하는가.
d. 테러리스트가 핵폭탄을 작동시켰다. 인류멸망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그를 고문하여 비밀번호를 알아내면 작동을 멈출 수 있다. 그를 고문해야 하는가.
영화내내 당사자들이 벌이는 논쟁은 누구를 딱히 옹호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다.
"지금 공격하면 저 아이가 죽을 것은 확실하지만 쇼핑몰에서 테러리스트들이 폭탄을 터뜨릴 것이란 사실은 아직은 가정에 불과하다" 그러자, "그래서 공격을 늦추었고 그 덕분에 테러리스트들이 인구밀집지역에서 폭탄을 터뜨렸다면, 알고 보니 저 소녀 하나를 살리자고 머뭇거리다가 테러를 막지 못한것이 밝혀진다면 그 책임은 당신이 질 것인가"
이런 문제를 다루는 표준적인 메뉴얼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동서고금의 지혜서들을 아무리 참고해도 표준적인 지침 따위는 만들기 힘들 것이다. 왜 그런가?
인간의 도덕적 행동은 대부분 도덕적 직관에 의존한다. 그것은 상황에 대한 분석적 판단이나 합리적 추론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도덕적 직관은 즉각적이지만 정교하지는 못하다. 그래도 직관은 이성적 추론보다 재빠른 판단을 요하는 상황에서는 그런저럭 쓸만하지만 도덕적 딜레마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다.
도덕적 딜레마란 도덕적 직관과 도덕적 추론이 상충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위의 사례들이 그렇다. 당장 눈앞의 소녀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직관이다. 하지만 차후에 희생자들이 더 많을 것이란 사실은 추론이다. 추론은 느리고 희미하지만 정확하고 직관은 빠르고 강력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여기에서 딜레마가 오는 것이다.
이런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나이스한 솔루션 따위는 없다. 그때그때 다르다. 이땐 이랬고 저땐 저럴 것이다. 싱겁다고? 도리가 없다. 그래서 부단히 역사를 참고하지만 우리에게 닥치는 문제는 늘 새롭다. 새로운 문제는 새로운 고민을 하게 한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