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일까.
대학에 막 들어간 신입생들이 교양수업에서나 마주칠 법한 이 질문은 그러나, 감히 말하자면 인간실존의 전체 무게가 달린 질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 질문이 그토록 중차대한 질문이란 뜻은 아니다. 인간사에 있어 중요한 일들은 널렸다. 소설가 김훈에 따르면 경제, 국방, 상하수도, 교통 따위가 인간의 삶에 있어서는 당장, 절박한 문제이다. 집에 단 며칠만 물이 안 나오고 전기가 안들어오고 쓰레기를 내다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보라. 그것보다 더 끔찍한 재앙은 없다. 그런거에 비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은 한가롭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말이다, <동주>는 그 한가롭기 그지없는 것들이 때론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고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지를 윤동주와 그의 이종사촌 송몽규가 죽음으로 관통해낸 식민지 삶을 통해 보여준다.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청년 송몽규는 묻는다. '문학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문학은 무엇에 복무해야 하는가'
하지만 윤동주는 그의 질문에 가령, '문학이란 순수한 것이다'라거나 '문학은 무엇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다'라거나 하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윤동주에게 있어 문학은 부끄러움이다. 식민지에 살고 있는 부끄러움, 언어를 빼앗긴 부끄러움, 시를 쓰는 부끄러움... 하지만 바로 그 부끄러움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동주>는 역설한다. 부끄러움은 바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것이며 문학이 시작되는 근원이고 양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암흑천지의 세상에서 양심적인 인간만큼 위태롭고 위험한 것은 없다. 목숨은 빼앗을 수 있어도 부끄러움은 빼앗을 수 없다. 거기에 문학의 치명적인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 위험성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가. 문학은 바로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 양심으로 축조된 세계이다. 시인의 모국어 위에 세워지는 그 세계는 대동아공영이니 아시아해방이니 하는 허깨비같은 말들로는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세계이며 그 어떤 제국의 야망과 통치로도 빼앗을 수 없고 짓밟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시인이 위험하고 불순하지 않겠는가.
영화의 끝부분, 일제 순사와 심문조서에 서명하는 문제를 두고 벌이는 언쟁 장면은 젊은 청년 송몽규와 윤동주가 식민통치의 본질과 그 야만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언쟁의 핵심도 부끄러움이다.
시인이 죽기까지 사랑했던 그의 언어로, 해방된 날 아침에 이 글을 쓴다. '남의 나라'가 아닌 내 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