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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Oct 03. 2016

<용의자 X>

아름다움에 관하여

많은 수학자들은 플라톤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수(數)'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수는 존재한다. 하지만 어떻게? 수는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마음 속에? 마음 밖 어딘가에?

플라톤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수는 저 높은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한다. 그 이데아의 세계는 존재의 원형들이 모인 완벽한 진선미의 세계이며 이 지상은 그 세계의 그림자이거나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수학은 예술의 언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음악처럼 수학도 추상의 세계에 거주하며 완벽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수학자들은 과학자보다는 예술가에 가깝다.


하지만 그 이데아의 세계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고통이다. 누구는 실성하기도하고 누구는 세상을 버린다. 수학자들을 미치게하는 그 아름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증명'이다. 어떤 수학의 아름다움도 증명되지않으면 허깨비일 뿐이다. 증명이 곧 아름다움이다. 우아함, 간결함, 화려함 따위의 수식은 고급 드레스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수학의 증명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증명하지 못하는 수학자는 수학자가 아니다. 수학자는 증명을 통해 아름다움을 입증한다. 그러기 위한 댓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이 영화를 보는 방식이다. 이 세상에는 수학의 아름다움과 본질적으로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증명해 내는 것, 자기 자신을 내던져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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