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에 대하여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연말에 서울시향을 이끌고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연주한다는 뉴스를 접하니 옛날 생각이 났다. 오래전 읽었던 한수산의 글이었다. 기억을 떠올려 내용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1980년대 초, 한수산은 모 일간지에 소설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고 있었다. 그저그런 통속적 소설이었는데 소설의 어떤 표현이 문제가 되어 한수산은 '기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다. 군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였다. 물론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트집이었다. '한수산 필화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은 당시 신군부의 야만성과 천박함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차마 말로 옮기기 힘든 수모와 고문을 겪고 한수산은 풀려나 제주로 내려갔다.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을 쓰던 정신은 망가졌고 그가 존숭하던 세계는 허물어졌다. 술이 아니면 견딜 수가 없었다. 연락이 되지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그때만 해도 제주도가 그렇게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게 술로 세월을 보내던 어느날, 우연히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연주를 들었나보다. 한수산이 당시를 회고하며 쓴 에세이는 이랬다.
피아노 소나타 K331 그 1악장이 다가왔다. 연기처럼, 희고 가느다란 연기처럼.
그리고 나는 오래오래 울었다. 소리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라산에 조금씩 어둠이 걷혀가고 있었다. 새벽 산정이 뿌옇게 빛으로 감싸이고 있었다. 가슴 어딘가에서 봄날의 땅을 비집고 올라오듯 새싹이 하나 올라오는 것 같았다. 속눈썹을 간지럽히며 눈병이 나듯이. 그 조짐처럼.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들려주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그 1악장 앞에 무릎을 끓으면서 나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음악이었던가, 신의 소리, 생명의 소리, 그 찬가였다.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1967년 베를린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 녹음한 그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나를 껴안으며 들려주고 있었다. 아직 이 땅에는 네가 살아가며 사랑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네가 모르는 가치가 얼마나 많으며 네가 모르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은지를 너는 아느냐.
<이 세상의 모든 아침>, 한수산
그 후 한수산은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당시 '기관'에서 그를 취조하고 고문했던 자들의 일원으로부터. 그곳을 떠나 새롭게 살기로 했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결혼과 함께 새출발하겠다는 그 젊은이를 한수산은 용서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름답다"
한수산의 이 일화는 오랜 세월 동안 내 가슴에 '용서'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용서'라는 말을 내 삶과 화해시키고 있지 못한 듯 싶다. 지금 같아서는 끝내 해결되지 않을 것도 같다.
올 한 해도 이렇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