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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Sep 02. 2017

창조론과 창조과학은 다르다

정말 아무나 국무위원을 시킬 참이냐

이번 만큼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의, 그러므로 대통령의 판단에 대해. 종교를 과학과 혼동하고, 뒤섞고, 그걸 굳건한 신념으로 내면화하는건 건전하고 정상적인 멘탈이라고 볼 수 없다. 교수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라도 마찬가지다.


창조론은 종교의 영역이다.

종교는 법정적 진실이나 과학적 진실의 검증 의무를 면제받는, 혹은 떠나 있는 영역이다.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는 남자랑 잔 적도 없는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고 말한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커서 물 위를 걸어다니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자신도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주장한들 다 오케이다. 그걸 믿고 안믿고는 순수한 개인의 양심에 따른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남자랑 자지않아도 여자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 - 즉 인간도 무성생식이 가능하다, 이는 과학적인 진실이다, 이렇게 말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렇게 주장하려면 그에 대한 증거를 과학자들이 반복적으로 관찰가능하도록 제시하여야 한다. 그래서 다른 과학자들도 오, 인간도 무성생식이 가능하군, 해야 그 주장은 과학적 사실이 되어 학술지나 교과서에 실릴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어떤 책에서 그렇다길래 그렇다는거다"고 해서야 말이 안된다.


창조과학이라는게 바로 그렇다. 어떤 전능자가 단 며칠간의 작업을 통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건 개인의 자유다. 이 세상을 시바신이 창조했고 그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커다란 코끼리인데 그 코끼리는 더 큰 거북의 등에 올라타 있다고 말해도 종교의 영역 안에서는 다 허용된다. 하지만 그게 과학적으로도 진실이라고 말하려면 수많은 과학자들이 반복적으로 코끼리와 거북을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개인적 소신이나 취향의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다.(당신들의 대통령이 '이 세상은 시바신이 창조했고 그 세상은 코끼리가 떠받치고 있는데 그 코끼리는 더 큰 거북이 떠받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공개적으로도 그런 신념을 표명한다면, 그래서 그 신념에 부합하는 어떤 정치적 행위를 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냥 놔두겠는가? 응?)

어떤 현상이 과학의 측면에서 다루어져야할지 말지는 개인의 소신이나 취향, 혹은 여론이나 투표로 결정될 일이 아니다.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주장과 그게 과학적으로도 사실이라는 주장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전자는 주장에 대한 증명의 의무가 없지만 후자는 주장에 대한 증명의 의무가 있다. 물론 증명되지 않았다. 그게 증명되었다면 누구보다도 과학자들이 열렬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교과서에서 가르칠 수 있는게 아니다.(게다가, 지구상의 어느 문명권에도 창조론은 다 있는데 어떤 창조론을 교과서에서 가르치자는 거냐. 불교,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마야종교, 잉카종교, 아마존 밀림 소수 부족의 창조론, 대만 고산족 종교의 창조론... 어떤 창조론? 그거 다?)


문제는 (특정인의 멘탈은 젖혀두고라도) 문제를 대하는 청와대의 자세이다. 그 누구보다도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 사고방식을 지녀야할 집단이 청와대 아닌가. 창조과학은 반지성주의의 극치이고 무지와 독선 그 자체일 뿐이다. 이런 신념을 가진 자를 '응, 그 사람은 그냥 공돌이라서 그래'라고 치부하고 넘어간다면 그건 이 나라 공학자들에 대한 모욕이요, 공학교육에 대한 모욕이다. 게다가 그런 자를 등용해놓고 다양성 운운하는건 정말... 지지를 철회할 정도의 후안무치한 일이다. 그건 아니다.


반지성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반지성주의는 맹신, 독선과 동의어다. (북한이나 과거 소련 같은 특이한 예외들은 있지만) 대개 민주주의가 발달한 곳은 과학도 발달하는 법이다. 민주주의와 과학은 공히 '열린 자세'와 '오류수정가능성'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칼 포퍼같은 과학철학자가 열렬한 민주주의 신봉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하지만 그 개인은 꽤 독선적이었다는게 함정)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도 자기가 틀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종교는 없다. 그래서 종교는 민주주의나 과학과는 친화될 수 없다. 민주주의와 과학은 항상 자기가 틀릴 수도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IS같은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을 보라. 그들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며 과학도 경멸한다. 첨단 무기는 사용하면서.)


그래서 청와대의 인식이 염려스럽다. 위장전입자나 군기피자는 거기에 비하면 훨씬 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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