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쓰고 한국어 파괴의 현장이라고 읽는다
사람이 살면서 치과처럼 가기싫은 곳이 또 있을까. 어쨌든 갔다. 접수를 하고나니 자리에 앉아 기다리란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잠깐 앉아서 기다리시께요"
머리끝이 찌릿했다. '~시께요'라는 표현은 최근 한국어 문법이 광범위하고 '핫'하게 파괴(오남용 아니라)되는 대표적 유형이다.
"이쪽으로 오시께요"
"자리에 앉아 머리 뒤에 기대시께요"
"아~~ 하시께요"
"따끔할 수 있습니다. 좀 참으시께요"
잇몸을 찌르는 마취주사도, 이빨을 갉아내는 드릴소리와 냄새도 다 고통이지만 '~시께요'는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쫌만 참으시께요"라는 말과 함께 이빨을 갉아낼 때 고통은 정점에 다다랐다.
그랬다지? "커피나오셨어요"라는 표현이 커피를 높이는 것으므로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하자 '커피 한잔 값이 그걸 나르는 알바 시급보다 높으니 커피는 존칭을 받을 만하다'고. 그래, 그럼 그건 그렇다고하자. 도대체 '이쪽으로 오시께요'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는 것인가. '오는' 행위(그 동사적 사태)도 존칭을 받아 마땅한 것인가.
"이쪽으로 오세요", "자리에 앉고 머리 뒤에 기대세요", "아, 하세요"... 이 (정상적인) 표현들이 무엇이 문제길래 저토록 문법파괴적인 과잉의 존칭어법을 사용하는 것일까. ('그러는 너는 얼마나 우리말을 잘 사용하길래 지적질이냐'고 빈정거릴 수 있다. 맞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지적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마도 전현직 국립국어원장들 정도 밖에는 없을 것이다. 내가 잘못하니 말할 자격이 없다면 우린 결국 이 세상의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단 한마디도 뻥끗할 수 없을 것이다.)
며칠간 치과에 다니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커피나오셨어요'가 보여주는 우리나라 갑을문화의 언어적 반영일까.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하듯이 말도 변한다. 하지만 그게 지금의 어법파괴 현상을 정당화 시켜줄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학교에서 문법을 배우고 가르치는 행위는 바보짓이다.
이 글을 읽고 여러분도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실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