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뿐인 인생.. 그게 뭐 어떻다고?
너무도 뻔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인 이 말이 왜 요즘 회자되는 것일까. 다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최근, 어떤 계기로, 갑자기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깜짝들 놀랐다는 말인가.
이런 정도의 뻔한 사실은 가령, '해는 동쪽에서 뜬다', '나무는 식물이다', '북극은 춥다'... 처럼 끝없이 많다. 근데 왜 유독 '인생은 한번 뿐'이란 사실이 모두를 흔드는 것일까.
a. 인생은 한번 뿐이다. 그러니 저축 따위는 필요없다.
b. 인생은 한번 뿐이다. 그러니 저축을 해야한다.
위 두 명제중 어떤 명제가 맞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기도 하고 둘 다 틀리기도 하다. 아니, 저렇게만 놓고 보아서는 어느게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저축이 필요하고 안하고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한번 뿐이란 사실로부터, 오직 그 한가지 사실로부터는 저축의 당위성이나 부당성은 도출되지 않는다. 낭비벽이 심한 사람은 인생이 한번 뿐이건 말건 낭비를 할 것이고 근검한 사람은 마찬가지로 인생이 한번 뿐이건 말건 저축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다음주쯤 저가항공을 타고 해외여행을 다녀올지 말지는 나의 주머니 사정, 스케쥴, 지금의 나의 스트레스 정도/휴식욕구가 결정할 일이지 인생이 한번뿐이고 아니고는 관련이 없다. 동쪽에서 해가 뜬다는 사실이 내가 지금 당장 모든 걸 내려놓고 인도로 떠날 인과적 이유가 될 수 없듯이 말이다. (혹시 모르지,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마음에 무언가 느낀 바가 있어 모든걸 정리하고 인도로 떠난 사람들이 실제로는 꽤 있을지도.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단순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 저는 모든 걸 정리하고 인도로 갈 결심을 했어요" 왜? 왜?)
착하게 살건, 악하게 살건, 근검절약하며 살건, 낭비하며 살건 인생은 한번 뿐이다. 내 믿음은 이렇다. 인생이 한번 뿐이건, 한번 더 있건, 혹은 영원히 반복되건 낭비하는 놈은 계속 낭비하고 근검하는 놈은 계속 근검할 것이며 우울한 놈은 계속 우울하고 유쾌한 놈은 계속 유쾌할 것이다.
저가 항공을 타고 해외여행을 줄창 다니건, 틈만 나면 술만 퍼먹든 그 모든건 인생이 한번뿐이라서 그런게 아니다. 그때 내가 망설임 끝에 펜더 기타를 지른건 결국 하고 싶은걸 한 것 뿐이지 인생이 한번이다, 두번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는 아니란 말이다. 승려가 되고 사제가 되는 사람들이나, 화끈하게 한탕하고 교도소에 가는 사람들이나 동기는 다 똑같다. 인생은 한번 뿐이라서다. 그러므로 '인생은 한번 뿐'은 그 무엇도 설명하지 못하는 말이다. 혹은 그 모든 걸 다 설명하는 말이다. 그러니 굳이,
너의 아무 생각없음과, 낭비와, 즉흥성을 인생은 한번뿐이란 말로 호도하지는 말아라. 정말 인생이 한번 뿐이고 그 말이 그토록 사무친다면 너는 그렇게 살아선 안된다.